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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히토 일왕, 패전 7년 만에 재군비·개헌에 의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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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박종환 기자

노컷뉴스

히로히토(裕仁·1901~1989년) 일왕. (사진=연합뉴스 제공)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할 당시 항복을 선언했던 히로히토(裕仁·1901~1989년) 일왕이 패전 후 7년 만에 재군비(再軍備)와 개헌의 필요성에 의욕을 보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NHK는 18일 초대 궁내청(왕실 담당 부처) 장관 다지마 마치지가 히로히토 일왕과의 대화를 기록한 '배알기(拜謁記)'의 내용을 공개했다. 다지마는 1948년부터 5년간 궁내청 장관을 맡았는데, 배알기에 600회, 300시간에 걸쳐 히로히토 일왕과 나눈 대화를 기록했다.

이 기록에 따르면, 일본의 전쟁 책임을 묻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조인 후 불과 5개월이 지난 1952년 2월 히로히토 일왕은 "헌법 개정에 편승해 밖에서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해 부정적이었지만, 지금은 다른 부분은 다루지 않고 군비에 대해서만 공명정대하게 당당히 개정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같은 해 3월에는 "침략이 없는 세상이면 무장이 필요하지 않겠지만, 침략이 인간사회에 있는 이상 군대는 부득이하게 필요하다"고 말했고, 5월에는 "재군비에 의해 군벌이 다시 대두하는 것은 절대 싫지만, 침략을 받을 위협이 있는 이상 방위적인 새로운 군비가 없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이는 히로히토 일왕이 1948년 태평양전쟁 일본인 전범을 단죄한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에서 전쟁 책임을 추궁당하지 않고 일왕의 자리를 유지한 뒤 불과 4년 뒤의 발언으로, 승전국인 미국의 입김으로 '전쟁 포기'와 '전력(戰力) 보유 불가'가 명시된 헌법이 만들어졌지만, 일찌감치 이를 바꿀 의사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히로히토 일왕은 재군비와 헌법 개정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당시 총리인 요시다 시게루(吉田茂·1878∼1967)에게 전하려 하기도 했다. 다지마 장관은 이에 대해 "헌법상 그런 말은 할 수 없다. 최근의 전쟁에서 일본은 침략자로 불렸다. 그건 금구(禁句·금지된 말)다"라고 말했다.

NHK의 이런 보도는 공교롭게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전후 첫 개헌을 통해 자위대의 존재를 헌법에 명기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가운데 나왔다.

아베 총리는 자신의 임기 중 전쟁 포기와 전력 보유 불가가 명시된 헌법 9조(평화헌법 조항)에 자위대의 존재를 명기하는 개헌에 성공한 뒤, 9조의 기존 조항을 손보는 개헌을 다시 하는 '2단계 개헌'을 통해 일본을 '전쟁가능국'으로 변신시키려 하고 있다.

'배알기'에는 또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발효를 기념해 1952년 5월 열린 '일본 독립 회복' 축하 행사에서 히로히토 일왕이 일제가 일으킨 전쟁에 대해 '후회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하려 했지만 요시다 당시 총리의 반대로 해당 언급이 인사말에서 빠진 사실도 드러났다.

히로히토 일왕은 1952년 1월과 2월에 걸쳐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발효 기념 행사의 발언에 대해 "나는 아무래도 반성이라는 글자를 넣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군도, 정부도, 국민도 모두가 하극상이나 군부의 전횡을 놓친 것을 반성해 나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을 넣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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