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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이슈 [연재] 중앙일보 '김식의 야구노트'

[김식의 야구노트] KT 상승세 이끄는 ‘부드러운 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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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 밑에서 6년 간 감독 수업

귄위 내려놓고 선수들과 소통

“자존심 없다. 실수 인정한다”

데이터로 설득하며 신뢰 얻어

중앙일보

KT는 젊은 선수들과 베테랑이 가장 잘 조화된 구단으로 꼽히고 있다. 이강철 감독 부임 후 팀이 단단해졌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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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수원KT위즈파크. 이강철(53) KT 감독을 찾아온 한화 외야수 이성열(35)이 “안녕하십니까”라고 큰소리로 인사 한 뒤 악수를 청했다.

“안녕하기는. 너 어제 홈런 쳐놓고 놀리려고 인사 왔어?”

“감독님, 5위에서 밀리시더니 예민하신 것 같습니다.”

이성열의 능청스러운 이 말에 이 감독은 허허 웃기만 했다. 둘은 2013~14년 넥센(현 키움)에서 한솥밥을 먹었다. 당시 이 감독은 수석코치였다. 이 감독이 선수들과 얼마나 신뢰를 쌓아왔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게 꼴찌 후보였던 KT가 올 시즌 가을 야구를 꿈꾸는 힘이다.

6위 KT는 최근 4연승을 달리며 5위 NC를 1경기 차로 뒤쫓고 있다. 지난달 이 감독은 “나는 자존심이 없다. 안 되는 게 있으면 빨리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이 말이 나온 배경이 궁금해서 이 감독을 다시 만났다.

Q : 자존심이 없다고 선언하는 감독은 처음 봤다.

A : “나도 선수 때는 자존심이 강했다. 그러나 지도자는 고집을 부리면 안 된다. 내 실수를 인정해서 팀이 나아질 수 있다면 뭐든 해야 한다.”

Q : 어느 순간 자존심을 버린 건가.

A : “외부에서 봤던 KT는 공격력이 좋은 팀이었다. KT 감독이 된 뒤 3루수였던 황재균을 유격수로 돌리고, 윤석민을 3루수로 썼다. 공격력을 더 강화하기 위해서였지만, 결과는 내 예상과 다르더라. 잘못을 인정한 것이다.”

이 감독이 황재균을 3루로 다시 보낸 건 개막 후 불과 2주일 만이었다. 심우준을 유격수로 기용하는 등 수비 위주의 라인업을 짰다. 반발력을 낮춘 새 공인구 때문에 장타자들의 생산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아울러 젊은 투수들의 성장세를 감안해 수비력을 강화했다. 이 감독은 “포지션만 바꾼 게 아니다. 처음에는 타자들을 믿고 맡겼다. 그러다 작전을 많이 내기 시작했다. 작전 성공률이 높아지고, 승리를 경험하면서 선수들이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자존심이 없다고 말하는 건 자존감이 높다는 뜻이다. 두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비슷하지만, 보통은 자존감을 자신감과 비슷한 의미로 쓴다. 자존심이 없다는 이 감독에게서 자신감을 읽을 수 있다.

이 감독의 자신감은 전문성과 탈(脫) 권위로부터 나온다. 이 감독은 2005년 은퇴한 뒤 7년 동안 KIA 투수코치를 지냈다. 그는 2012년 말 평탄한 길을 뒤로하고 넥센 수석코치로 갔다. 연고가 없는 팀에서 광주일고 2년 후배 염경엽 감독(현 SK 감독)을 보좌한 것이다. 이 감독은 “넥센에서 타격코치, 수비코치들로부터 많은 얘기를 들었다. 다른 시각으로 야구를 볼 기회였다. 감독이 각 분야 코치에게 ‘몰라서 속는 것’과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것’은 다르다”고 말했다.

2017년 두산 수석코치로 갔을 때는 1년 후배 김태형 감독 밑이었다. 이 감독은 “후배 감독들을 모시면서 다양한 경험을 했다. 부드러워야 하고, 권위를 내려놔야 젊은 선수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53세의 이 감독을 ‘젊은 감독’으로 볼 수 없다. 그러나 선수들에게 문자메시지도 하고, 스스럼없이 사우나도 함께 하는 건 분명히 기존 감독과는 다른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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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철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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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시즌 진출 여부와 상관없이 올해 KT는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다. 김민(20)·배제성(23)·김민수(27) 등이 선발투수로 성장했다. 김재윤(29)에 이어 마무리를 맡은 이대은(30)을 비롯해 주권(24)·정성곤(23)은 불펜에서 자리 잡았다.

이들 대부분은 보직을 바꿔서 더 좋은 성적을 거둔 경우다. 이 감독의 눈썰미로 젊은 투수들에게 어울리는 역할을 찾은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 감독은 상세한 데이터를 제시하며 선수들에게 보직 변경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야수진도 두터워졌다. 지난달 주축 선수인 황재균·강백호가 부상으로 빠지자 박승욱(27)·조용호(30) 등이 활약했다. 이 감독은 “신생팀인 우리는 1군 엔트리 26명은 물론 퓨처스(2군) 선수들까지 총동원해야 한다. 젊은 선수들이 부담을 갖지 않도록 실수해도 동료들이 만회해준다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젊은 선수들이 성장하면 베테랑들은 위협을 느낀다. 부진한 선수를 선발에서 빼고, 2군으로 내리는 일이 감독에게 가장 어렵다. 이 감독은 “충분히 기다리고 누구나 납득할 때 결단한다. 그 과정이 합리적이라면 팀은 흔들리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감독은 1989년부터 16년 동안 152승 53세이브 33홀드를 기록한 한국 최고의 잠수함 투수였다. 버드나무처럼 부드러운 폼으로 던지는 그의 공은 빠르지는 않았다. 그러나 포수 미트에 정확하게 꽂혔다. 감독이 된 지금의 모습도 예전과 다르지 않다.

김식 야구팀장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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