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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사설]경찰, 이런 안이한 태도로 수사권 갖겠다고 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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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몸통시신 사건’ 피의자 ㄱ씨가 지난 17일 새벽 서울 종로경찰서에 자수하기 전 서울경찰청을 먼저 찾아갔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서울청 야간 당직자는 방문목적을 묻는 질문에 ㄱ씨가 “강력형사에게 얘기하겠다”고 하자, 종로경찰서로 가라고 안내했다고 한다. ㄱ씨가 자수했으니 망정이지, 마음을 바꿔 도주라도 했다면 상황이 지금보다 훨씬 복잡해졌을 가능성이 높다. 이와 같은 경찰의 초기 부실수사 사례는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다. 전남편 살해·유기 혐의로 구속 기소된 ‘고유정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실종신고 이틀이 지나서야 단서가 포함된 폐쇄회로(CC)TV 자료를 확보했다. 범행장소 확인이 늦어지면서 현장 보존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고, 부실한 압수수색 때문에 졸피뎀 등 증거물도 현재 남편이 제출해서야 확보할 수 있었다고 한다. 얼마 전 서울 동작구의 한 빈집에서는 2015년 실종신고된 20대 남성 백골시신이 발견되기도 했다. 시신이 발견된 곳이 숨진 남성이 살던 바로 옆집이었는데, 경찰은 4년간 이웃집조차 살펴보지 않은 것이다.

경찰의 안이한 수사는 시민에게 큰 피해로 돌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크다. 지난해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폭력의 가·피해 정도를 따져 격리 등 상응조치를 했더라면 살인에까지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최근 경찰청에 진정한 사건에서도 이혼한 전남편의 폭력과 협박에 시달리던 여성 ㄴ씨는 3차례나 112신고를 통해 도움을 요청했음에도 경찰의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해 결국 살해됐다. 경찰청 통계를 보면, 가정폭력 112신고 건수는 지난해 25만건 가까이 됐지만 수사에 공식 착수한 경우는 17%에 불과했다.

정부가 최근 확정한 검경 수사권 조정안의 핵심은 경찰이 모든 사건의 1차 수사·종결권을 갖는 것이다. 검찰 지휘 없이 수사를 하고, 검찰이 독점해온 ‘기소 결정권’까지 행사하게 되는 것이다. 수사권 조정안이 정부안대로 시행되면 경찰이 수사한 사건 10건 중 4건은 검찰 송치 전 무혐의 종결될 것이란 분석도 있다. 그런데 초동수사에 대한 처리가 이 모양이라면 과연 1차 수사·종결권을 경찰에 맡겨도 될지 강한 의문이 든다. 경찰은 이번 사건을 단순실수로 그냥 넘어가서는 안된다. 환골탈태의 심정으로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치안은 허술해지고 검경 수사권 조정 취지도 무색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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