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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이란 女배구 선수들, 남자 감독과 하이파이브 안하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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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여자배구선수권

이슬람 율법에 따른 행동… 손바닥 대신 보드 건드려

아시아여자배구선수권 조별리그 A조 이란과 홍콩의 경기가 열린 20일 오후 서울 잠실학생체육관.

홍콩전을 앞두고 코트에 들어서던 이란 선수들이 동료와 손바닥을 마주치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하지만 이들은 남자 감독 샤마미 자바드 메흐레간 감독에겐 손 대신 그가 든 흰 전술 보드를 손으로 쳤다. 가족 관계가 아닌 남성과 신체 접촉을 해선 안 된다는 이슬람 율법에 따른 것이었다. 외신에선 이를 '할랄(이슬람에서 허용되는) 하이파이브'라 부른다.

조선일보

이란 여자 배구 선수들이 20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 홍콩전에서 전술 보드를 손으로 건드리고 있다. '가족이 아닌 남성과 신체 접촉을 해선 안된다'는 이슬람 율법에 따라 감독과 하이파이브를 하는 대신 보드를 친 것이다. /이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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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선수들은 이날 연습 때부터 수녀(修女)처럼 머리에 흰 천을 두르고, 검은색 긴팔과 긴바지 차림으로 눈길을 끌었다. 이 역시 여성은 외부에서 얼굴과 손을 제외한 모든 신체 부위를 가려야 한다는 이슬람 경전 '코란'에 따른 것이다.

냉방장치를 가동했음에도 몸을 풀던 이란 선수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반대편 코트에서 짧은 반바지에 러닝 유니폼 차림으로 몸을 풀던 홍콩의 쯔얀펑은 "우리처럼 가벼운 복장을 하고도 경기 도중 땀을 흘리는데, 이란 선수들은 얼마나 덥겠느냐"며 신기한 듯 바라봤다.

하지만 경기는 복장과 관계 없이 이란이 세트 스코어 3대0(25―20 25―15 25―15)으로 완승을 거뒀다. 이란은 1승1패로 한국에 이어 A조 2위로 8강에 오르면서 대회 8위까지 주어지는 2020 도쿄올림픽 대륙 예선 출전권도 확보했다. 메흐레간 감독은 경기 후 "오늘 승리가 결코 마지막은 아니다. 우리 팀의 목표는 4강"이라고 말했다.

이란 여자 배구는 1966년 아시안게임 때 동메달을 땄다. 하지만 1979년 이슬람혁명을 계기로 폐쇄적인 종교 환경 때문에 여성 스포츠가 침체기에 빠졌다. 아시안게임에는 1978년 태국 방콕대회부터 지금까지 출전하지 않고 있다. 대신 격년으로 열리는 아시아선수권은 2007년부터 참가했고, 지금까지 8위가 최고 성적이다.

이날 홍콩전에서 양팀 최다인 15점을 기록한 마에데 보르하니(31)는 이란 17세 이하 남자 축구 대표팀에서 뛰었던 친척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축구·농구·배구 등의 스포츠를 비교적 쉽게 즐겼다고 말했다. 보르하니는 "이란에서 여자 운동선수로 산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만 국가 차원에서 여성 스포츠 진흥을 위해 지원을 조금씩 늘리고 있다"며 "언젠가 여자 축구와 여자 배구도 남자 대표팀처럼 선전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네다 참라니안(25)은 "히잡을 쓰고 긴팔 복장으로 경기를 하는 건 전혀 문제없다. 내 화장이 조금도 지워진 게 없지 않으냐"며 웃었다.



[포토]모든 신체 가린채 경기…이란 女배구 선수들, 이슬람 율법에 땀 뻘뻘

[윤동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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