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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전학생은 명탐정] 부엉이 아저씨를 물리쳐라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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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나혁진] 학교 옆문에서 우리가 다시 만난 시간은 무려 밤 10시였다. 다겸이 이 시간에 만나자고 해서 침대에서 자는 척을 하다가 몰래 빠져나왔다. 문을 열고 나올 때는 부모님한테 걸릴까 봐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영지도 나랑 비슷한 방법으로 부모님을 속였단다. 영지는 몰래 나간 걸 들키면 2학기에도 신문을 못 내는 벌을 받을 거라고 울상이었다. 하지만 탐정 일이라면 뭐든지 허락한다는 엄마를 둔 다겸은 희희낙락, 전혀 긴장한 표정이 아니었다.

시간이 시간이니만큼 옆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아, 이 짓을 또 해야 한다니. 작고 홀쭉한 다겸이 먼저 가볍게 바닥을 기어서 통과했고, 영지 또한 손쉽게 성공이었다. 마지막 차례를 앞두고 나는 배를 쓰다듬으며 잔뜩 긴장했다. 하지만 저번처럼 크게 애먹지 않고 학교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어, 용재 뱃살 빠졌나 보다."

영지의 말에 기분이 좋았다. 아무래도 사자상 사건으로 몇 주 마음고생을 해서 저절로 다이어트가 된 모양이다. 이 체중을 유지하려면 계속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나?

"빨리 가자!"

다겸은 내 뱃살 따위는 관심이 없는지 손을 휘저으며 우리를 재촉했다. 다겸의 성화에 못 이겨 우리는 걸음을 재촉해 학교 건물의 왼쪽 길을 따라 어느새 사자상이 있는 뒤편으로 나왔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늘 그 자리에 서 있는 사자상은 오늘 밤도 변함이 없었다. 사자상에 가까이 다가가자 괜히 반가웠다. 졸린 눈에 멍청한 표정, 요 녀석을 보고 내가 기절할 정도로 겁에 질렸다는 게 우습기까지 했다.

"이 사자상도 일본 군인들이 만들었겠지. 우리나라 사람들 몰래 숨겨둔 보물 창고인데, 눈에 확 띄게 입구를 만들 순 없잖아. 이건 사자상으로 위장한 보물 창고의 입구 버튼이었어."

다겸이 사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러고는 할머니의 편지에서 본 대로 사자의 혓바닥을 세 번 꾹 누르고, 양쪽 눈동자를 순서대로 눌렀다.

"버튼을 누르는 방법이 이렇게 복잡하니까 그 긴 세월 동안 애들이 만지거나 타고 놀아도 열리지 않았던 거야. 하지만 옛날에는 부엉이 아저씨의 아버지처럼 우연히 이 사자상이 움직이는 모습을 본 사람들이 몇 명 있었어. 그 사람들이 남긴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떠돌다 오늘날까지 남아 움직이는 사자상 전설로 굳어졌겠지."

설명을 마친 다겸이 뒤로 몇 발짝 물러났다. 드르륵, 땅바닥에 끌리는 소리를 내며 사자상이 서서히 돌아갔다. 사자상이 왼쪽을 보는 방향으로 90도 완전히 회전한 후, 편지에서 읽은 것처럼 쿠르릉 하고 땅이 진동하는 소리가 났다. 곧바로 사자상 옆의 계단 아랫단 여섯 개가 위로 들리기 시작했다. 다겸이 다급하게 말했다.

"이제 작전을 개시하자, 얘들아!"

베이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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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방에서 무선조종카를 꺼냈다. 원래는 흰색인 자동차가 지금은 회색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까 다겸이 부탁해서 영지가 내 무선조종카 전체에 모자 뜨기용 회색 털실을 둘둘 감고, 앞쪽에는 반짝이는 단추를 두 개 붙여 눈까지 만들어놓았기 때문이다. 다시 봐도 자동차가 아니라 완전히 커다란 회색 쥐 같은 모양이었다. 내가 왜 멀쩡한 남의 자동차를 쥐 꼴로 만들어놓느냐고 따졌을 때 다겸은 이렇게 말했다.

"부엉이 아저씨를 쫓아내려면 아저씨가 제일 무서워하는 걸 보여줘야지. 아저씨는 쥐를 무서워하니까 무선조종카를 쥐처럼 꾸며서 움직이면 틀림없이 겁에 질려 도망갈 거야."

"아저씨가 쥐를 무서워하는 걸 어떻게 알아?"

"두 가지 단서가 있어. 낮에 너랑 수위실에 갔을 때 부엉이 아저씨는 책상 위에 올라가서 덜덜 떨고 있었지. 근데 그때 수위실 근처에 무서워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잖아. 그렇다면 아저씨를 놀라게 한 건 우리 눈에 잘 안 띄는 비교적 작은 것이었을 거야.

아마 아저씨는 땅바닥에서 갑자기 뭔가 홱 지나가니까 놀라서 책상 위로 후다닥 올라갔겠지. 난 그게 바퀴벌레 같은 게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아저씨 집에 가보고 쥐라는 걸 확실히 알았어."

"아저씨 집에 뭐가 있었는데?"

"한 마리도 아니고 두 마리도 아닌, 무려 열 마리의 고양이. 단지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기엔 너무 많잖아. 아저씨는 쥐를 지나치게 무서워해서 쥐를 잡아줄 수 있는 고양이를 열 마리나 갖다놓은 게 분명해."

우리는 사자상 옆의 그늘에 숨었다. 사자상의 덩치가 엄청 커서 우리 셋을 완벽하게 가려주었다. 준비가 끝난 내가 조종기를 양손으로 쥐고, 쥐로 위장한 무선조종카를 움직였다. 때맞춰 영지가 스마트폰을 꺼내 쥐가 나오는 만화에서 미리 녹음해놓은 쥐 소리를 커다랗게 틀었다. 소리를 녹음하고 틀 수 있는 기능도 있을 줄이야. 나는 오늘 세 번째로 스마트폰을 가진 영지가 부러웠다.

커다란 '찍찍’ 소리가 자동차에서 나오는 소음을 덮어주었고, 자동차는 무사히 열려 있는 비밀 통로 안으로 들어갔다. 채 10초나 지났을까. 비밀 통로 안쪽에서 어마어마한 비명과 함께 쿵쾅거리며 이쪽으로 뛰어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으악, 거대 쥐가 나타났다! 쥐다, 쥐!"

곧바로 비밀 통로의 입구 밖으로 부엉이 아저씨가 쏟아져 나왔다.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정신없이 뛰는 모습을 보니 다겸이 말한 대로 쥐를 무서워하는 게 틀림없었다. 아저씨는 사자상 그늘에 숨은 우리를 보지 못하고 저쪽으로 사라져 갔다. 저렇게 겁에 질렸으니 오늘 밤은 다신 나타나지 못할 것이다. 다겸이 선언했다.

"부엉이 아저씨는 사라졌어. 자, 들어가자."

*소설가 나혁진은 현재 영화화 진행 중인 「브라더」(북퀘스트, 2013년)를 비롯해 모두 네 편의 장편소설을 출간했다. 조카가 태어난 걸 계기로 아동소설에도 관심이 생겨 '전학생은 명탐정'을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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