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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여성칼럼] 반전이 없는 드라마는 아무도 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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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수영 작가


영어에는 'shit happens'라는 표현이 있다. 직역하면 '똥 같은 일도 일어나지'라는 뜻이다. 가끔 길을 걷다 보면 남의 똥을 밟을 때도 있듯이 때로는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또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나 환경에 의해 깊은 나락으로 빠질 때도 있다. 자신이나 가족의 투병이나 교통사고, 사랑하던 사람과의 이별, 직장에서의 정리 해고, 생각지도 못한 소송 같은 일들이 생기면 처음에는 분노하다가 나중에는 지쳐서 자포자기하고 싶을 때도 많다. 하지만 이런 시련들 역시 우리 삶의 과정인 만큼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위기가 왔다고 해서 스스로를 폄하하고 인생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나 역시 그리 길지 않은 인생을 살아왔지만, 정말 최악이라고 생각한 경험들이 때로는 삶의 원동력이 되고 나를 강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평생 빚에 허덕인 부모님 밑에서 돈에 쪼들려본 경험은 무슨 일을 해서든 먹고살 생존 능력을 키워줬다. 스물다섯 살에 암 진단을 받고 죽음과 맞닥뜨린 경험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 계기를 마련해줬다.


물론 이는 고난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린 문제다. 만일 내가 "난 왜 지지리도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고, 세상은 왜 이 모양이며, 하늘은 왜 날 가만두지 않는 걸까"라고 세상을 원망했다면 지금의 삶을 살고 있지는 못할 테니까.


런던에서 알고 지낸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친구 빅토리아는 어느 날 갑자기 멀쩡히 다니던 직장에서 해고당했다. 누구보다 성실한 데다 영업 실적도 무난했지만 직속 상사와의 껄끄러운 관계가 정리 해고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처음엔 좌절과 분노로 정신을 차릴 수 없던 그녀는 지난 7년간 일에만 몰두해 자신이 정작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동안 저축한 돈과 정리 해고 위로금을 가지고 1년 정도 쉬면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찾아보기로 결심했다.


시간적 여유가 생긴 그녀에게 주변에서 다양한 제안을 해왔다. 그녀는 레스토랑 오픈을 준비 중이던 친구의 부탁을 받고 성공적으로 개업하도록 도와줬다. 번역 일도 하게 되면서 빅토리아는 회사에 다닐 때보다 훨씬 자유롭게 일하면서도 더 많은 돈을 벌게 됐다. 여유가 생긴 그녀는 짬짬이 심리학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심리학 석사 과정을 시작했고 카운슬러라는 새로운 꿈을 이루게 됐다. 그녀는 "돌이켜보니 영업 일을 열심히 하긴 했지만 좋아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 정리 해고당한 건 정말 내 인생 최고의 사건이었어.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을 알게 됐거든!" 하고 활짝 웃었다.


시련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우리를 강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시기와 형태는 다르지만 인생에 걸쳐 겪는 고통의 합은 비슷하다는 '고통정량' 이론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당신이 지금 겪고 있는 시련은 더 큰 시련이 왔을 때 당신이 무너지지 않도록 단련시켜줄 것이다. 혹시나 지금 당신이 겪는 시련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다면, 좋은 뉴스가 있다. 이 시련을 바탕으로 당신은 훨씬 큰 사람으로 성장할 것이고 앞으로 웬만한 시련에는 담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상황이 견디기 어렵다면 내 인생이 한 권의 책이라고 생각해보라. 매 순간이 글로 쓰인다면, 당신의 삶은 어떤 내용의 책이 되겠는가? 무난하게 태어나 무난하게 살아가는 스토리의 명작은 없다. 처절한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다시 일어나 승리를 거둘 때 우리는 그 반전에 환호한다. '때문에'라는 변명의 단어 대신 '그럼에도'라는 반전의 단어를 우리 인생의 책에 써보자. 이것이 하나의 스토리라고 생각하면 지금의 시련이 힘들수록 미래의 성취는 눈부실 것이다. 지금 당신은 어떤 스토리를 쓰고 있는가?


김수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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