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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가난이 부른 죽음… 쪽방·공사장 등 ‘폭염 취약층’ 보호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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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서 건강권 보장 토론회 / 2018년 폭염사망 48명 중 절반 무직 / 온열질환자 74%가 야외서 발생 / 건설노동자 생계 힘들어 일 나가 / 쪽방 노인 ‘무더위 쉼터’ 이용 기피 / 집주인 난색 냉방기 설치 어려워 / “실효성 있는 예방적 지원책 절실”

대구의 한 여관에서 가족이나 친척 없이 홀로 살고 있던 B(60)씨는 폭염이 극에 달한 지난해 7월 자신의 여관방에서 탈진해 쓰러졌다. 다행히 여관 주인이 B씨를 발견해 병원에서 치료받고 구조될 수 있었다. B씨가 살고 있던 여관방은 3㎡ 남짓한 공간으로 에어컨은커녕 선풍기조차 없었다. 선풍기가 있어도 환기 자체가 안 되는 구조였다. B씨는 지자체가 마련한 무더위 쉼터가 있지만 “다리가 아파서 멀리 나가기 불편해 이용하지 않게 된다”며 “인근 공원을 가는 게 편하다”고 말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 고온과 폭염 현상이 점차 심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온열 질환에 노출되기 쉬운 이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세계일보

서울에 폭염경보가 내려진 지난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에 거주하는 조모(70)씨 방 안 온도가 35.8도까지 올랐다.


21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된 ‘폭염으로 인한 주거 취약계층의 온열 질환 현실과 건강권 보장을 위한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와 시민 단체 관계자는 주거 취약계층과 농업 및 건설 노동자 등을 폭염에 대한 1차적인 취약계층이라고 규정하고 이들이 폭염으로 겪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서울대보건대학교 황승식 교수가 발표한 ‘2018년 폭염에 의한 건강피해 심층조사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온열 질환으로 사망한 48명 가운데 52.1%(25명)가 무직이었다. 농림·어업숙련종사자가 18.8%(9명)로 그 뒤를 이었다. 지난해 온열질환자 발생 장소를 보면 실내가 1202명으로 26.6%를 차지했고 실외가 3324명으로 73.4%였다. 세부적으로 보면 실내는 집이 51.9%(624명), 실외는 실외작업장이 38.3%(1274명)로 온열질환자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공간으로 나타났다. 쪽방촌이나 여관을 전전하는 고령 홀몸노인과 폭염에도 작업량을 줄이지 못하고 장시간 일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이 온열 질환에 노출될 위험이 높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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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교수는 “온열질환자를 심층 인터뷰한 결과 쪽방 주민들은 거리가 멀어서 또는 민폐 끼칠까 봐 이용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농업 종사자는 휴식장소 부족한 데다 폭염 기간 작업을 피하라는 정보제공이 잘 안 되고 있었고, 소규모 공사현장의 경우는 공사 기간을 맞춰야 하다 보니 폭염에도 무리하게 일을 한다”고 지적했다.

쪽방은 폭염 대비 방안이 거의 없다는 게 현장 활동가들의 목소리다. 대구쪽방상담소의 장민철 소장은 “(쪽방에) 냉방기 설치를 시도했으나 전기료, 누진세 등 여러 이유로 인해 집주인이 반대하면 설치가 불가능하다”며 “냉방하더라도 노후한 건물 특성 때문에 냉방이나 단열이 오래 유지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쪽방 주민 상당수가 건설현장에서 생계를 이어가는데 폭염일수록 일이 줄어들어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사후 대처가 아니라 사전 예방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폭염 취약집단에 대한 폭염 전 대책은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황 교수는 “에너지바우처, 무더위 쉼터 제도를 단순히 운영하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이용자를 대상으로 효과에 대한 평가를 반영해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녹색병원 인권치유센터 이보라 소장은 “폭염으로 인한 사망은 사회적 죽음”이라며 “관계기관이 이런 사회적 문제에 책임감을 갖고 협력을 통해 후속 대책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남혜정 기자 hjn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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