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6 (화)

[이 전시] 임선구 '종이 위의 검은 모래'展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파이낸셜뉴스

임선구 '우리는 검은 산의 귀퉁이에 모여' 종이에 흑연, 혼합재료 (2019)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림 속의 숲은 과연 실재하는 곳일까. 그의 그림속의 나무와 숲은 중심에서 외곽으로 갈 수록 이지러져 있다. 마치 흑백으로 가득한 꿈 속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한 때는 선명했던 기억이 어느샌가 알 수 없는 곳으로 지워져 가는 순간을 표현한 것 같다. 임선구 작가는 이 순간을 "현재의 상황들이 자신의 머릿 속 어딘가의 기억과 맞닿는 순간"이라고 명명했다. 우물 바닥에서 물을 긷듯 올라온 그 기억은 때론 내가 평상시 인지하고 있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그 기억들이 붕 떠오르듯 지금 현재에 투영되면 일상 또한 회오리치듯 변주된다. 과거와 현재가 머릿 속에서 뒤섞이면서 평범한 일상은 또 다시 낯설어진다.

서울 종로구 북촌로 갤러리조선에서 진행 중인 그의 첫 개인전 '종이 위의 검은 모래'전은 임선구 작가가 바라보는 현재의 풍경 속에 과거의 기억과 감상이 마주치는 순간들을 관람객들에게 소개한다. 작가 자신이 무의식 중에 들었던 이야기와 어릴 적 창고 같은 집에서 굴러다녔던 낡은 책의 이름들, 과거 자신을 스쳐지나갔던 누군가의 잔상이 일상을 살아가던 중 갑자기 떠올랐을 때의 이미지를 연필드로잉과 콜라주로 표현했다. 순간적으로 회상되는 과거의 기억들은 어쩌면 과거의 사실이 아니라 환상에 가까울 수도 있다. 임 작가는 "자신의 오래된 기억들을 바탕으로 의식 깊은 곳에 숨어있는 감정의 모양을 그려나갔다"고 밝혔다.

감정이 더해진 풍경은 실사와는 다르게 어딘가 변형되고 뒤틀려져 간다. 그는 이러한 잔상을 종이 위에 한 겹 한 겹 쌓아가듯 드로잉 했다. 어지럽게 움직이는 기억의 모양을 전혀 다른 시점과 크기로 그래내기 위헤 종이의 방향을 정하지 않고 그림을 그려나갔다. 위 아래가 없이 그림이 그려지다 보니 마치 무중력 상태에 놓인 것과 같은 느낌이다. 얇고 굵은 연필의 선, 시간이 만들어내는 흑연의 번짐과 우연히 생긴 지우개 자국은 그의 심연 속에 있는 기억을 향해 나아간다. 임 작가는 "오늘의 풍경을 접했던 감정에 과거의 기억들이 흩뿌려지면서 모양새가 변화함을 느낄 수 있다"며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소재들이 튀어나오고 그것이 드로잉의 재료가 됐다"고 밝혔다.

그는 작업 초기부터 재료의 혼합과 재배치를 통해 서사를 화면 위에 결합시키는 방법을 실험해왔다. 최근에는 종이 위에 종이를 쌓고, 그림 위 에 그림을 덧대는 콜라주 작업을 하면서 그림 안의 내용과 성질을 여러 갈래로 확장시키고있다. 임 작가는 "나의 경험이 어떻게 경험이 되고, 기억은 어떻 게 기억 되는지, 내가 그리는 것이 다시 현실적으로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을지에 대해 질문하는 그림을 그려 나가고자 한다"고 밝혔다. 전시는 28일까지.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