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8 (목)

49일 만에 결제액 1000억 돌파… 지역화폐 전성시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아무튼, 주말]

어 너도? 야 나도? 인기끄는 지역화폐

#1. 인천시 연수구 송도동에 사는 직장인 A(28)씨는 지난달부터 주요 결제 수단을 신용카드에서 지역 화폐인 '인천 연수 e음카드'로 바꿨다. 사용 금액의 10%를 돌려주는 캐시백 기능 때문이다. 특급 호텔 발렛 주차 서비스나 워터파크 할인 같은 혜택은 없어도 10만원을 사용하면 1만원을 돌려주니 어지간한 혜택보다 유용했다. 일반 신용카드의 캐시백은 0.5~3% 정도다. A씨는 "교통카드도 되기 때문에 e음 카드 하나로 집과 회사를 오가며 중간에 밥 사먹고 커피 마시는 데 좋다"고 말했다.

#2. 경기도 시흥에 사는 주부 B(39)씨는 올해 초부터 아이들 학원비·병원비 등을 지역 화폐 '시루'로 결제하고 있다. 동네 대부분 상점에서 10% 할인이 되기 때문이다. 집 실내 장식을 위해 가구를 사거나 외식할 때도 시루가 할인되는 곳이 어딘지 동네 맘카페(지역 엄마들의 커뮤니티)에서 검색한다. 동네 카페뿐 아니라 분식점 등에서도 할인되기에 아이들 학교 데려다 주고 동네에서 떡볶이 먹고 커피 한잔 마시기 좋다. B씨는 "곧 있으면 추석인데 전통시장은 할인 폭도 크다고 해서 한번 가볼까 생각 중"이라고 했다. 시루가 대형 마트에서는 쓸 수 없지만 B씨에게 큰 불편함은 없다. 어차피 물이나 과일 같은 무거운 물건 장보기는 예전부터 온라인 배송 서비스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역 화폐 인기 요인

지역 화폐 전성시대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역 화폐를 발행한 지자체(광역·기초단체 포함)는 2016년 53곳에서 올해 177곳(예정 포함)으로 세 배 넘게 늘었다. 이는 전국 243개 광역·기초자치단체의 절반이 훌쩍 넘는다. 전국 지역 화폐 발행액도 2016년 1168억원에서 올해 2조3000억원(예정 포함)으로 급증했다.

지역 화폐란 국가의 공식 화폐와 달리 지역사회 구성원들 간 합의로 만들어져 통용되는 대안 화폐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확산돼 전 세계적으로 3000여곳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국내에서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 후 1999년 '송파 품앗이'의 '송파머니', 2000년 '대전 한밭레츠'의 '두루' 등이 발행됐다. 선결제 후 특정 지역 내에서만 사용 가능한 화폐다. 서울시에서 집중 홍보하는 '제로페이'는 이름만 비슷할 뿐 선결제를 하지 않고, 전국적으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지역 화폐와는 다르다.

이렇게 지자체별로 종종 발행되던 지역 화폐가 왜 갑자기 화제가 된 것일까.

①10% 캐시백

먼저 올해 5월 출시된 인천 서구 지역 화폐인 '서로 e 음'이 캐시백 10%라는 파격적인 혜택을 들고 나와 화제가 됐기 때문이다. 10만원짜리 물건을 사면 1만원을 돌려주는 것이다. 지금은 예산 문제로 규정이 변경됐지만 초기엔 한도가 없었기에 인터넷에는 '3000만원짜리 차를 사고 300만원 캐시백을 받았다' '학원비·헬스장 연간 회원비를 선결제했다' 등의 글이 올라왔다. 이어 인천 연수구도 지역 화폐를 출시하며 캐시백 10%를 내세워 또 한 번 화제 몰이를 했다.

이미 인천시에는 지난해 7월 출시된 '인천사랑 전자상품권'이라는 지역 화폐가 있었다. '공무원만 사용하는 돈'이라며 아무도 관심 없던 이 화폐는 올해 4월 인천e음카드로 변경되며 캐시백 6%의 혜택을 강조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올해 초 정부는 지역 화폐 발행액의 4%를 지원하겠다고 했는데, 인천시가 여기에 예산을 추가해 6% 캐시백을 만든 것이다. 서구·연수구 등은 추가로 지자체 예산 4%를 더해 10% 캐시백을 완성했다. 연수구 지역 화폐의 경우 발행 49일 만에 누적 결제액 1000억원, 가입자 수는 14만5000명을 넘었다.

인천시뿐 아니라 최근 출시되는 지역 화폐들은 기본적으로 충전할 때 10% 정도의 인센티브를 주고, 여기에 6~10%의 캐시백, 가맹점별로 15~20%의 할인 혜택을 준다. 급격한 확산은 당연했다. 연말정산 때 30% 소득공제도 가능하다.

②탈상품권

그동안 대부분의 지역 화폐는 상품권 형태로 농협 등 별도의 장소에서 구입해 사용해야 했다. 그러나 최근 지역 화폐는 스마트폰과 연계돼 선불신용카드나 모바일 페이 형태로 가입과 사용이 편리해졌다. 인천 e음 카드는 선불신용카드 형태로 학생증·공공기관 신분증과 연계된다. 시흥 지역 화폐 '시루'는 모바일 페이 형태로 앱을 내려받은 다음 간단한 인증 절차 후 바로 사용이 가능하다. 지난 4월 출시된 김포페이는 KT가 운영 사업자로 위·변조가 불가능한 블록체인(분산 저장)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③다양한 사용처

사용처가 많아진 것도 인기 요인이다. 지역 화폐 유사 개념이었던 '온누리상품권'이 전통시장 등 제한된 매장에서만 사용 가능한 것과 비교된다. 최근 발행되는 지역 화폐는 식당·카페·병원·학원·택시 등에서 사용 가능하다. 인천 연수구 자체 조사에서도 가장 많이 사용된 곳이 음식점과 식품점, 그다음이 학원·병원·약국 순이었다.

너도나도 발행

이렇게 인천 e음, 시흥 시루 등이 인기를 끌자 다른 지자체들도 앞다투어 지역 화폐를 발행하고 있다.

충남 공주시는 지난 16일 도내 첫 모바일 지역 화폐인 '공주페이'를 출시했다. 충남 논산시도 오는 9월부터 지역 화폐를 발행하기로 했다. 부산 동구도 부산 지역 최초의 지역 화폐 'e바구페이'를 지난 13일 출시했다.

이미 지역 화폐를 출시한 곳은 할인율이나 캐시백을 상향 조정하고 있다. 경기도 이천시는 오는 10월 31일까지 지역 화폐 '이천사랑지역화폐'의 인센티브를 6%에서 10%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1만원으로 구매한 이천사랑지역화폐로 이천 지역 가맹점에서 1만1000원 상당의 물품을 살 수 있는 셈이다. 경기도 안성·고양·의정부, 대전 대덕구 등도 일시적으로 인센티브를 10%까지 확대한다.

그러나 문제는 예산이다. 사용자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지자체 재정 부담이 커진다는 의미. 캐시백 10%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인천시 서구 'e음'도 발행 2개월 만에 무제한 10%에서 월 결제액 30만원 미만 10%로 혜택을 축소했다. 인천 연수구도 발행 한 달 만에 캐시백 혜택을 무제한에서 월 결제액 50만원까지 10%, 50만~100만원까지 6%로 대폭 축소했다.

갑작스러운 정책 변경은 불만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인천 주민들은 캐시백이 축소될 것을 예상하고 자동차나 귀금속 등 고가 물품을 산 주민만 상대적으로 많은 혜택을 보게 됐다며 반발하고 있다. '포퓰리즘 문제'도 지적된다. 현재 지역 화폐를 발행하지 않는 다른 기초자치단체들에는 "캐시백을 주는 지역 화폐를 도입해달라"는 민원이 잇따르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역 화폐는 실제 화폐라기보다 상품을 할인해주고 그 금액만큼 세금을 통해 보전해주는 형태로 지역 소비 진작을 위한 일종의 보조금"이라며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도움이 되는 정책이긴 하지만 예산과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각 지자체 상황에 맞춰 규모를 책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혜운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