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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크리스마스에 죽을뻔했다, 이 예쁜 강아지가[체헐리즘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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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편집자주] 지난해 여름부터 '남기자의 체헐리즘(체험+저널리즘)'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뭐든 직접 해봐야 안다며, 공감(共感)으로 서로를 잇겠다며 시작한 기획 기사입니다. 매주 토요일 아침이면, 자식 같은 기사들이 나갔습니다. 꾹꾹 담은 맘을 독자들이 알아줄 땐 설레기도 했고, 소외된 이에게 200여통이 넘는 메일이 쏟아질 땐 울었습니다. 여전히 숙제도 많습니다. 그래서 차마 못 다한 이야기들을 풀고자 합니다. 한 주는 '체헐리즘' 기사로, 또 다른 한 주는 '뒷이야기'로 찾아갑니다.



[반년만에 전하는 '강아지 5마리 구조' 후기…쓰레기더미 버려졌던 까망이도 새 가족 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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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월9일, 팅커벨프로젝트와 함께 강릉 유기견보호소에서 구조해온 보니(스피츠)는 새로운 가족을 만났다. 오랜만에 보니의 사진을 봤다. 행복해보였다./사진=팅커벨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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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니야, 오랜만에 네 사진을 봤다. 새 가족을 만났더라. 산책도 나갔더라. 널 예뻐해주는 이의 다리 위에 살포시 앉았더라. 활짝 웃고 있더라. 웃는지 어떻게 아냐고? 보면 안다. 17년을 함께 살다, 무지개다리로 떠나 보낸 아롱이가 너처럼 웃었었거든. 맘이 좋더라. 네가 이리 예뻐져서, 주인 품에서 웃고 있는 게. 기사 쓰는 것도 잠시 까먹고, 네 얼굴을 물끄러미 봤다.

올해 3월9일, 강원도 강릉 유기견보호소에서 널 처음 봤다. 하얀색 고운 털에, 사막 여우처럼 귀가 쫑긋하고, 눈이 동그랗더라. 그리고 힐끔힐끔 날 보더라. 구하러 간 건데, 넌 많이 겁 먹은 표정이더라. 네 친구 하니랑 꼭 붙어있었어. 세상에 믿을 건 그 체온 뿐이라는듯. 그러고도 바들바들 떨고 있더라. 따스해지는 봄날인데, 너만 여전히 겨울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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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유기견보호소로 구조하는 길에 보니(왼쪽)와 하니(오른쪽)의 사진을 봤다. 안락사 공고 기한이 한참 지나, 빨리 구조해야 했고, 구조해왔다. 보니와 하니는 잔뜩 움츠리고 있었다. 새 가족을 만난 위의 사진, 그리고 아래 사진과 표정이 다른 게 느껴지는지./사진=남형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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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한다. 그 계절은 네게 참 혹독했었다. 지난해 12월24일, 크리스마스 이브날. 남들은 설레서 케이크도 사고, 거리엔 캐롤도 흘러나오고, 연인들은 손을 잡고, 가족들은 함께하고. 근데 네겐 아니었다. 공고를 하는 마지막 날이었다. '널 데려가달라고, 안 그러면 죽는다고'. 그날이 지나면 안락사를 당하는 거였어. 짧은 목줄에 묶여, 보호소에서 떨고 있었을 게다. 많이 무서웠을 것 같다.

기다렸겠지, 널 버리고 간 너의 주인을. 한 살도 안 된, 작은 체구의 널 산책로에 버렸다고 들었다. 밤은 깊어오고, 먹을 건 없고, 날은 추워지고, 참 막막했을 것 같다.

널 데리고 오던 날이 기억난다. 지쳤을텐데 잠도 안 자고 긴장하더라. 그런 널 토닥였었다. "니들 고생 다 했다. 조금만 참아라"하고. 그리고 병원에 갔었지. 아픈 데가 없어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모처럼 기도를 했었다. 꼭 좋은 주인 만나게 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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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니는 새 가족을 만나 이렇게 편안한 표정을 지을 수 있게 됐다./사진=팅커벨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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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니야, 그 바람이 이뤄져서 다행이다. 새 가족과 지내는 얘길 들었다. 언니 몸에 가만히 머릴 올려놓고 있더라. 털도 깔끔해지고, 얼굴도 깨끗해졌더라. 이리 예쁜 걸 대체 누가 길에 버렸나 싶더라. 무엇보다 많이 편해 보이더라. 괜스레 울컥하더라. 애견 카페에 가서도 친구들하고 잘 논다면서.

마음을 열었다가도, 새 가족들을 보며 때론 숨는다고 하더라. 관심을 주면 스트레스 받을 때도 있다면서. 네게 아픈 일이 있었던 것만큼, 아마 시간이 필요하겠지. 매일 산책도 하고, 밥도 먹고, 가만히 몸을 기대기도 하고. 그런 추억들이 켜켜이 쌓이다보면 나쁜 기억도 밀어내겠지. 더 많이 예뻐하다보면 널 미워했던 이의 얼굴도 조금씩 흐릿해지겠지. 정(情)이 든다는 건 그런 거라 믿는다. 많은 유기견들이 그렇다더라. 또 버려질까 무서워하고, 겁을 내기도 한다더라. 너만 그런 건 아니라더라. 그러니 혹여나 자책하진 말았으면 한다.

보니야, 얼마 전에 동네 펫샵을 지나가는데 한 아이가 작고 하얀 포메라니언을 보면서, 부모한테 떼를 쓰더라. "강아지 사줘! 강아지!"하면서. 오지랖이 넓은 게 또 내 특기잖아. 그래서 가만히 다가가 아이에게 물었다. 강아지를 왜 사고 싶냐고. 그러니 "예쁘고 귀여워서"라고 하더라. 그래서 이렇게 말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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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유기견보호소에서 구조해왔던 슈슈(하양이)와 샤샤(까망이). 생후 1개월만에 쓰레기더미에 버려졌었다. 두 녀석은 서로의 몸에 기댄 채 그렇게 삶을 이어갔었다./사진=팅커벨프로젝트



"강아지가 항상 예쁜 건 아니야. 똥도 싸고 쉬도 한단다. 그럼 냄새가 나거든, 잘 치워줘야 해. 가끔은 아프기도 한단다. 치료해주고 돌봐줘야 해. 집에만 있으면 답답해해서, 산책도 잘 시켜줘야해. 30분 넘게 할 수도 있어. 그리고 사람처럼 나이가 든단다. 털도 빠지고, 볼품 없어 지기도 하고, 너보다 어리지만, 너보다 빨리 나이가 든단다. 그럼 걸음도 느려진단다. 강아지를 키운다는 건, 그 모든 걸 이해해주고, 사랑해줄 수 있어야 하는 거란다. 왜냐면 이 아이는 너만 볼테니까."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더라고. 그러니 아이 엄마가 "들었지? 아무나 키우는 게 아냐"하며 "고맙습니다"하고 가더라. 그 녀석이 얼마나 알아들었는진 모르겠다. 그래도 한 가진 알았을 것 같아. 그냥 예쁘다고 막 데려오면 안 된다는 걸. 그리고 함부로 버려서도 안 된다는 것도.

말 못하는 널 대신해 얘기해주고 싶었어. 잘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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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주인을 만난 샤샤. 표정이 예뻐졌다./사진=팅커벨프로젝트




아참, 너랑 함께 왔던 슈슈, 샤샤, 하니, 포리 얘기도 궁금할 것 같네. 슈슈는 안타깝게 별이 됐지만, 샤샤는 너처럼 좋은 가족 만났단다. 걔 있잖아. 쓰레기더미에 버려졌었던. 주인 품에 안겨 있는 걸 보니 또 울컥하더라. 여전히 많이 까불더라, 그 녀석. 그래도 너처럼 예뻐지고, 웃고 있더라. 다른 아이들도 구조해줬던 뚱아저씨(황동열 팅커벨프로젝트 대표) 덕분에 잘 있단다. 정말 대단하신 분이야.

그러니까 보니야, 이젠 아프지 말고 오래오래 잘 살았으면 좋겠다. 또 좋은 소식 전해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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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에서 서울까지, 긴 구조 여정을 마치고 회복실에서 쉬고 있는 슈슈. 하지만 파보 바이러스 감염을 못 이기고, 하늘의 별이 됐다. 힘들지 않은 곳에서 편안하길, 행복하길./사진=남형도 기자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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