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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정치인의 가족으로 산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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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금태섭의 국회의원이 사는 법

17. 정치인과 가족

정치인 가족 비판 둘러싼 논란

“연좌제 연상케 하는 인권침해다”

“본인 연관 가능성 검증해야” 맞서

당사자보다 더 관심 끄는 경우도

‘가족 건드리면 절대 참지 않겠다’

생각했지만 현실에선 간단치 않아

고민 끝 “감수하는 수밖에” 결론

나라도 공격 소재 삼지 말자 다짐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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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당시 집권당 중진 정치인의 사위가 전과 문제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이 사람은 마약 투약으로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일이 있는데 그 뒤에 정치인의 딸과 결혼했다는 얘기였다. 언론에서는 “마약 상습 투약 유력 정치인 인척 봐주기 논란”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났다. 여러차례 투약을 했는데도 실형이 선고되지 않고 집행유예를 받았는데 검찰이 항소도 하지 않은 점에 의혹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보기에는 조금 의아한 기사였다. 이미 유력 정치인의 딸과 결혼한 뒤에 마약 사건을 일으켰는데 검찰이나 법원에서 이례적으로 가볍게 처리했다면 당연히 문제가 된다. 그 정치인이 직접 개입한 증거가 없다고 해도 언론에서는 의혹을 제기할 수 있다. 수사나 재판 과정에 별다른 이상이 없는 경우라도 정치인의 사위가 마약범으로 처벌받았다는 것은 가십 뉴스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결혼 전에 전과가 있었다는 것이 어떻게 뉴스로 보도될 수 있나? 문제된 사람이 매우 부유한 집안의 아들이기는 했지만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것이 지나치게 가벼운 것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마약을 투약했는지 여부는 검사를 하면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지만, 몇차례 투약했는지 정확하게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한 경우도 많다. 실제로는 수십회 투약을 하고도 한번만 했다고 주장하는데 다른 증거가 없어서 1회 투약으로 기소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이 때문에 마약 투약 사범이 초범이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당사자의 진술에 관계없이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것이 통상적이다.

민주당 지지자로서 당시 집권당에 강력히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정치인의 가족이라고 해서 이런 일로 비난받는 것은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라도 민주당이 이 일로 상대 정당 정치인을 공격한다면 오히려 불합리하다는 평가를 받지나 않을까 걱정이 들었다. 사위가 결혼 전에 전과가 있는 것이 정치인의 책임은 아니지 않은가. 오히려 권력자의 딸이 전과가 있는 사람과 사랑해서 결혼했다는 것은 일종의 미담이 될 수도 있지 않나. 나는 페이스북에 ‘초범인 마약 사범이 집행유예를 선고받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고 검찰이 징역 3년을 구형한 사건에서 법원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하면 검찰 실무 기준상 항소할 사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나의 오산이었다. 내 페이스북 글은 언론에도 많이 보도가 되었는데 민주당 지지자로 보이는 사람들로부터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당신 글에 종편들 엄청 좋아하네요?” “아, 진짜 아군 등 뒤에 비수 꽂는군요. 참 한가하십니다. 만년 야당 하겠네요”와 같은 비판이 쏟아졌다. 가족 문제를 소재로 당시 집권당을 공격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민주당 대변인은 “전형적인 눈치 보기 수사에 봐주기 판결이다. 이러니 유전무죄, 무전유죄, 돈 없고 백 없는 사람만 감옥 간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라는 논평을 했다. 트위터에는 “상습 마약 투약 하는 준재벌 아들도 이상, 이를 알면서도 결혼을 고집한 여교수도 이상, 상습 마약범을 집행유예로 내보내준 판사도 이상, 항소하지 않은 검사도 이상, 이를 다 몰랐다는 장인도 이상”이라고 정치인과 그 딸까지 모두 비난하는 글이 올라왔다. 결국 그 정치인은 기자회견을 자청해서 “사위의 마약 전과를 알게 된 후 결혼을 반대했다. 자식은 못 이긴다. 사랑한다고 울면서 결혼 꼭 하겠다는데 방법이 없었다”고 딸 결혼에 반대했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공개해야 했다.

정치인은 누구나 가족에게 미안한 감정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후보자의 가족과 관련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에게는 드물지 않게 있는 일이지만 그때마다 논란이 뜨겁다. 한편에서는 배우자나 자식이 정치를 하거나 공직에 임명되는 것이 아닌데 가족 관련 일을 문제 삼는 것은 너무한 것 아니냐, 연좌제를 연상케 하는 인권침해다, 라는 비판이 나온다. 반대쪽에서는 가족의 일이라고 해도 본인과 연관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면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 설혹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공인이라면 당연히 감수해야 한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말도 못 들어봤느냐, 라는 반박이 나온다. 지금 상황과 관련해서는, 앞서 말한 것처럼 민주당도 예전에 가족 문제로 상대방을 공격하지 않았느냐는 ‘내로남불’ 얘기도 쏟아진다.

그러나 논리야 어떻게 되든 현실세계에서 가족 문제는 정치인 본인의 얘기보다도 대중의 관심을 끄는 일이 많다. “○○○ 의원 아들이 포르셰 타는 오렌지족이래”라는 식의 말처럼 귀에 쏙 꽂히는 ‘디스’는 찾기 힘들다. 효과가 좋은 만큼 진보든 보수든 그런 공격의 유혹에 쉽게 빠진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이 가족 문제로 곤경을 당할 때 부당하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사람도 상대 진영의 정치인 가족과 관련한 추문에는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는 경우를 흔히 본다.

물론 가족 때문에 항상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선거운동에 뛰어든 후보자의 배우자나 자식들이 독특한 아이디어나 활발한 활동으로 지지자를 끌어모으는 데 톡톡히 공을 세우기도 한다. 대선에 후보로 나섰던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의 딸, 재보궐 선거에서 ‘랜선효녀’라는 이름으로 위트 넘치는 트위터 계정을 운영한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딸 등의 활약은 다른 정치인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나는 의원이 된 뒤 미국 대학에서 초청을 받고 탄핵과 촛불혁명에 대해서 강연을 한 적이 있는데 탄핵 때 의경으로 복무하던 큰아이와 시위 현장에서 만난 일화가 많은 관심을 받았다. 자식 덕을 본 셈이다. 물론 배우자들이 음으로 양으로 정치인을 돕는 경우는 너무나 흔하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면, 정치인의 가족으로 살아가는 일은 간단치 않다. 대통령의 아들, 딸은 항상 언론의 주목을 받는다. 사소한 실수로 엄청난 비난을 받기도 한다. 사생활이 침해받는 것은 당연히 감수해야 할 일로 여겨진다. 국회의원의 배우자들이 모이는 친목 모임이 있는데 그곳에서 자주 나오는 얘기는 지역구 활동이나 선거운동 때문에 고생했다는 한탄이라고 한다. 남편 혹은 아내가 낙선하면 집안 전체에 그늘이 지는 상황에서 ‘앞치마를 걸치고 경로당에서 국을 퍼주는 국회의원의 배우자’가 칭송받는 현실을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다. 참석해야 하는 행사가 많은 자치단체장의 배우자는 주말에도 남편 혹은 아내가 참석하지 못하는 행사에 쫓아다니면서 축사를 해야 한다. “○○○ 구청장의 아내입니다. 오늘 남편이 다른 일정 때문에 참석을 못 해서 죄송합니다”라고 아무 잘못도 없이 사과를 하는 모습을 보면 안쓰러운 생각이 절로 든다. 결혼을 했다고 해도 각자의 인생이 있는 법인데 왜 자기 삶과 경력을 포기하다시피 하고 동네를 돌아다녀야 하는지 의문이 들지만 정치권에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

이래저래 정치인이면 누구나 가족에게 미안한 감정을 지니게 되고 가족에 대한 비난이나 공격에 민감하다. 특히 결혼을 통해서 그나마 선택의 기회(?)라도 가졌던 배우자가 아닌 자식에 대한 공세에는 극도로 예민해진다. 고소나 소송도 불사한다. 예전에 대선 캠프에서 상황실장을 맡아서 언론에 자주 등장하던 때가 있었는데 일베에 당시 중학교에 다니던 작은아이가 친구들과 다툰 얘기가 구체적으로 나온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그리 나쁜 내용은 아니었지만 소름이 쫙 끼쳤다. 나야 스스로 선택한 길이고 정치에 뛰어들면서 여론의 표적이 될 수도 있다고 각오했지만 왜 가족을 건드리는가. 나에 대한 비판은 얼마든지 받아들이겠지만 가족을 걸고넘어지는 것은 절대 참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그게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미국의 정치 상황을 묘사한 미국 드라마 <웨스트 윙>에서 주인공인 미국 대통령은 기자들이 자녀들에게 접근하는 것에 대해서조차 격분할 정도로 가족의 사생활을 존중하려고 노력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런데 그는 다발성경화증이라는 난치병을 가지고 있다. 유권자들에게 건강 상태가 알려지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의사인 아내가 몰래 주사를 놓아주곤 한다. 가족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따져보면 엄연히 의료 관계법 위반이다. 의료기록을 작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야당은 청문회를 열어서 맹공을 퍼붓는다. 대통령의 아내가 아닌 평범한 사람의 아내였다면 애초에 문제 삼을 사람도 없었겠지만 결국 영부인은 그 일로 의사 경력을 포기하게 된다. 누구보다 가족의 사생활을 지키려 했던 대통령은 의회의 비판 결의문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빠진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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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참고 소리 지르기도

가족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오랜 고민 끝에 나는 가족들이 나 때문에 겪어야 하는 일을 감수하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것이 옳기 때문은 결코 아니다. 가족을 공격하는 것만큼 비겁한 일이 어디 있는가. 자신에게 그런 일이 닥치면 참기도 어렵다. 페이스북에 아이와 관련된 포스팅을 했다가 비판받은 일이 있는데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전화를 해서 “자식 교육 좀 잘 시켜라” 하는 말을 듣고는 그만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른 일도 있다. 그런데도 대응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은 반박이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논리적으로 설명을 해도 비아냥대는 목소리를 다 없애기는 어렵다. 가족 일에는 감정이 개입되지 않을 수가 없는데 그러다 말실수라도 하면 오히려 논란을 증폭시켜서 가족에게 더 피해를 주는 수도 있다. “사모님이 매일 동네 돌아다니면서 어르신들한테 인사도 드리고 하면 좋을 텐데요” 하는 사람들에게 “정치인의 배우자도 직업이 있고 인생이 있는 겁니다”라고 답을 하는 것은 결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완벽하지 않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떤 아이들은 정치인을 엄마나 아빠로 갖게 된다. 성공하는 정치인이면 다행이지만, 선거에 떨어지고 인기도 없는 정치인이 더 많다. 꼰대스러운 말이겠지만, 그런 것도 아이들의 운명이다. 정치인의 가족으로서 어려움도 겪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배우는 것도 있고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성장의 계기로 삼을 수도 있다. 언론에 등장하고 드물지 않게 욕을 먹는 아버지를 지켜보는 자식들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으로 마음을 달래려고 노력한다. 적어도 나는, 당사자 본인이 직접 관련된 일이 아닌 이상 다른 진영에 속한 정치인이라고 해도 가족 문제를 공격의 소재로 삼지 않겠다는 다짐도 한다. 그러나 가족들이 떠오를 때마다 미안한 감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항상 미안하다.

▶ 금태섭 : 국회의원(서울 강서갑). 더불어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 대변인을 지냈다. 검사 시절 ‘현직 검사가 말하는 수사 제대로 받는 법’을 <한겨레>에 연재하다가 ‘윗선’의 반대로 좌절한 경험이 있다. 천직으로 여겼던 검사도 그만둬야 했다. 그러나 여전히 “할 말은 하고 산다”가 인생의 모토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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