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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앙코르! 향토극단] 속초 연극의 파도와 바람 그리고 열정 '파ㆍ람ㆍ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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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창단 30주년 '관객의 웃음이 예술이다' 모토로 재탄생 준비

대한민국연극제 금상 수상…"실향민 문화 등 속초만의 정체성 담아내고자"

(속초=연합뉴스) 이종건 기자 = 낮 기온이 35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이 이어지던 8월 중순 어느 날 저녁에 찾아간 극단 '파·람·불' 사무실.

지하실 계단을 타고 내려온 한낮의 열기가 가득 찬 사무실 안에서는 10여명의 단원이 벽걸이 선풍기 2대에 의지한 채 탁자에 둘러앉아 두툼한 대본을 손에 들고 연습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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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아니다 2' 연습 중인 단원들
[극단 파ㆍ람ㆍ불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날 단원들이 호흡을 맞춘 작품은 다음 달 18일 속초문화회관 무대에 올릴 예정인 청소년 극 '혼자가 아니다 2'.

지난 2015년 무대에 올렸던 '혼자가 아니다 1'의 후속작으로 청소년 문제를 함께 고민해 보자는 목적으로 기획했다. 이번 공연에는 파ㆍ람ㆍ불 단원은 물론 원주와 횡성 등 타지역 극단의 단원들도 참여한다.

파ㆍ람ㆍ불.

연극인, 연극인이 아니어도 연극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두 번은 이름을 들어봤을 극단이다.

속초는 물론 강원도 연극계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왕성한 활동력을 보이는 파ㆍ람ㆍ불.

속초의 파도를 의미하는 '파'와 바람을 의미하는 '람', 그리고 연극에 대한 단원들의 열정을 의미하는 '불'의 집합체인 파ㆍ람ㆍ불은 1989년에 창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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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회 대한민국 연극제 시상식 단원들
[극단 파ㆍ람ㆍ불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설악고등학교(당시 속초상고) 교사였던 조수현(작고) 씨를 중심으로 연극에 빠져 사는 사람들이 단원으로 참가했다.

창단 기념작 '칠수와 만수'를 시작으로 꾸준한 작품활동을 해온 파ㆍ람ㆍ불의 첫 결실은 1991년에 찾아왔다.

제8회 강원연극제에서 '한씨연대기'로 대상을 받은 데 이어 제9회 전국연극제에서는 같은 작품으로 대통령상을 품 안에 안았다.

하지만 이후 파ㆍ람ㆍ불은 이런저런 이유로 휴지기에 들어가 한동안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러던 파ㆍ람ㆍ불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14년.

사실상의 재창단으로 활동을 개시한 파ㆍ람ㆍ불은 제31회 강원연극제에서 '가족오락관'이라는 작품으로 동상과 최우수연기상을 받았다.

이어 이듬해인 2015년에는 소시민의 삶을 다룬 '전명출전평전'으로 제32회 강원연극제에서 대상과 최우수연기상을 받고 제33회 전국연극제에서는 같은 작품으로 대통령상과 연출상, 우수연기자상을 받는 쾌거를 이룩했다.

이후 2017년 한국연극 베스트작품상, 2018년 제35회 강원연극제 은상과 연기자상을 받은 파ㆍ람ㆍ불은 올해 또 한 번의 사고(?)를 쳤다.

지난 3월 동해시에서 열린 제36회 강원연극제에서 작품 '고래'로 대상과 연출상, 최우수연기상, 우수연기상 등 상을 싹쓸이 하다시피한 한 뒤 지난 6월 서울 대학로 일대에서 열린 37회 대한민국연극제에 강원도 대표로 참가해 금상(서울시장상)을 거머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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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회 대한민국연극제 시상식
[극단 파ㆍ람ㆍ불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야말로 '파ㆍ람ㆍ불'은 극단 이름이 담고 있는 속초의 바람과 파도처럼 강원 연극계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파ㆍ람ㆍ불의 대한민국 연극제 금상 수상은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극제 참여를 두달여 앞두고 연습에 박차를 가하던 지난 4월, 고성에서 발생한 산불이 소품 창고를 덮치면서 파ㆍ람ㆍ불은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

연극제 참여가 불투명했다.

하지만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강원도 내 연극인들의 도움의 손길과 단원들의 노력으로 아픔을 추스른 파ㆍ람ㆍ불은 연극제에 참가해 금상 수상이라는 영예를 안았다.

2014년부터 극단을 이끄는 석경환 대표는 "정말로 까마득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는 "소품 모두가 불에 타 없어져 잿더미가 되다 보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며 "다행히도 주변의 도움에 용기를 내 밤새워 세트를 제작하고 소품을 준비해서 연극제에 참가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파ㆍ람ㆍ불의 전속 단원은 현재 7명.

작품을 할 때마다 다른 극단에서 배역에 맞는 배우를 섭외해 호흡을 맞춘다.

이러다 보니 파ㆍ람ㆍ불 단원이 다른 극단의 작품에 참여하는 경우도 많다.

파ㆍ람ㆍ불 단원들도 전업 배우들이다 보니 대부분의 지역극단 배우들처럼 생활이 넉넉지 못하다.

낮에는 예술 강사 등으로 활동하고 밤에 모여 호흡을 맞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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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고래' 연습 중인휘 단원들
[극단 파ㆍ람ㆍ불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석 대표는 "나 또한 그렇듯이 단원 모두가 연극에 대한 열정 하나로 버티며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말했다.

고교시설 은사이자 극단 대표였던 조수현 선생의 영향을 받아 연극을 시작한 그는 "대부분 사람이 연극은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관객이 극장을 잘 찾지 않는지도 모른다"며 "관객이 좋아하는 연극, 즉 소비자가 원하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소신"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창단 30주년을 맞은 '파ㆍ람ㆍ불'은 '관객의 웃음이 예술이다'를 모토로 재탄생을 준비하고 있다.

석 대표는 이와 관련 "극단의 사회적 역할을 위해 청소년과 어린이를 위한 작품을 비롯해 다른 분야의 예술과 연극을 접목하는 작업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지역 극단은 그 지역의 정체성을 작품에 담아내려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속초는 실향민 도시인 만큼 실향민 문화 등 속초만의 정체성을 담아낼 수 있는 극단이 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남상진 한국연극협회 속초지부장은 "속초지역 극단 배우들의 실력은 전국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다"며 "이런 배우들이 안정적으로 실력을 발휘 할 수 있는 시립극단 창립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남 지부장은 "연극도 관광콘텐츠의 한 분야로 활용할 수 있는 만큼 이에 대한 속초시의 지혜가 필요하다"며 "지난 1992년에 시립극단 창립에 필요한 조례까지 제정해 놓고 예산 문제로 아직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mom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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