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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보이콧 재팬’ 열풍…시위는 OK, 구매 방해는 위법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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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뉴스분석 왜?
불매운동 역사와 법적 기준


일본 불매운동 한달 넘게 장기화

맥주, 여행, 의류…전방위 확산

지난 14일 대전 유니클로 매장에서

1인시위자, 구매 방해하다 입건돼

마이클 잭슨 공연 불매운동 손해배상

조중동 광고중단 업무방해죄 등 인정

특정 개인이나 기업에 위력 가해서

거래행위 방해하면 민형사 책임 가능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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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이 한국에 대해 반도체 소재 수출을 규제하고 백색국가에서 배제하는 조처를 취하면서 촉발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한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소비자 불매운동은 법적 허용 범위를 넘으면 민사상 손해를 배상하거나 형사상 업무방해죄 등으로 처벌될 수 있다. 불매운동의 역사와 법적 책임 기준을 알아본다.

지난 21일 서울 서초구 농협하나로마트 양재점. 주류 진열대에 ‘하나로마트는 일본산 제품을 판매하지 않습니다’라는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진열대에 일본 맥주는 하나도 없었다. 22일 발표한 관세청 자료를 보면 지난달 일본 맥주 수입액은 434만2천달러로 전달인 6월 790만4천달러 대비 45.1% 감소했다. 지난해 7월(663만9천달러)과 비교해서도 34.6% 줄었다. 일본은 벨기에, 미국에 이어 수입액 3위로 밀려났다. 일본 맥주는 2009년 미국을 밀어내고 연간, 월별 수입액 1위에 오른 뒤 올해 상반기까지 10년 동안 단 한번도 자리를 내준 적이 없었다.

지난 18일 오후 현대백화점 미아점 8층 유니클로 매장. 백화점 손님이 몰리는 일요일 오후 시간인데도 손님은 단 한명만 눈에 띄었다. 계산대에 있는 직원들의 말소리가 매장 구석에서도 들릴 정도로 한산했다. 이날 백화점을 찾은 김진아(42)씨는 “다른 사람들이 유니클로를 안 가니 왠지 들어가면 안 되는 느낌이 든다. 유니클로에서만 살 수 있는 제품이 아니라면 굳이 이런 분위기에서 갈 필요는 없지 않나”라고 말했다.

지난 14일 대전 둔산동의 한 유니클로 매장. ㄱ씨가 매장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ㄴ씨가 펼침막을 들고 1인시위를 하고 있었다. ㄴ씨는 매장으로 들어가 옷을 고르던 ㄱ씨에게 “시국이 이런데 왜 일본 제품을 사려고 합니까”라고 따졌다. 이에 ㄱ씨가 대응을 하면서 말싸움이 일어났다. 112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이들을 말렸고, ㄴ씨는 업무방해 혐의로 입건됐다. 유니클로 쪽은 영업장 안까지 들어와 구매를 방해하는 행위는 곤란하다는 입장을 경찰에 전했다고 한다.

지난달 초 일본이 한국에 대해 반도체 소재 수출을 규제하면서 시작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한달이 넘도록 이어지며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불특정 다수에게 소비자 불매운동을 전파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일본 제품을 구매하려는 특정인을 상대로 직접 불매를 독려하는 현상까지 빚어지면서 법적 다툼도 생겨나고 있다.

셸, 남양유업, 옥시…국내외 주요 사례

‘보이콧 재팬’ 여파로 일본 의류 브랜드 유니클로는 대부분 매장에 손님 발길이 끊기다시피 했다. 지난 15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태규 의원(바른미래당)이 신용카드사 8곳의 결제실적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국내 유니클로의 1주일 단위 매출액은 6월 마지막 주 59억4천만원에서 7월 넷째 주 17억7천만원으로 70% 줄었다. 일본 노선 여객 수요가 감소하면서 주요 항공사 8곳도 일본 노선을 줄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티웨이항공은 노선 14개의 운항 중단 결정을, 이스타항공은 노선 8개에 대해 운항 중단 및 감편 결정을, 에어서울은 노선 5개의 감편 결정을 했다.

광주 광덕고 학생회는 지난달 17일 전국 고등학교 가운데 처음으로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전교생이 참여한다고 선언했다. 김종서 광덕고 교감은 “학생회가 자발적으로 시작했다. 아베 신조 일본 정부가 부당한 조처를 들고나오니까 학생들이 우리도 뭐라도 하자고 나섰다. 기존에 쓰던 제품은 그대로 사용하되 앞으로 구매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 뒤 다른 고등학교에서도 불매운동 선언이 줄줄이 이어졌다. 이태봉 언론소비자주권행동 사무처장은 “마치 한일전이 벌어진 양상이다. 역사적으로 불편한 관계인데다 일본 기업인, 정치인의 실언이 잇따르며 불매운동을 부추기고 있다. 길어지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받은 불매운동 사례는 정유업체 셸 불매운동이다. 셸이 쓸모없어진 석유저장시설을 북해 심해에서 폭파할 계획을 세우자, 해양오염을 우려한 환경단체 그린피스가 이를 반대하고 나섰다. 그린피스는 1995년부터 유럽과 미국에서 셸 제품 불매운동을 벌였고, 셸은 기업 이미지 손상과 매출 하락으로 큰 경제적 손실을 보았다. 당시 그린피스는 내륙 폐기를 요구했지만 셸은 심해 폐기가 환경을 덜 오염시킨다고 맞섰다. 셸은 그린피스의 주장이 잘못됐다며 소송을 냈다. 재판 과정에서 그린피스 주장이 허위로 밝혀졌고, 그린피스가 셸 쪽에 공식 사과했다. 셸은 그린피스를 끝까지 몰아붙일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 소송을 취하했다.

소비자 불매운동이 가장 활발한 나라는 ‘소비자 권리’가 처음으로 천명된 나라인 미국이다. 존 에프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1962년 3월 ‘소비자 이익 보호에 관한 의회특별교서’에서 안전할 권리, 알 권리, 선택할 권리, 의견을 반영할 권리를 제시했다. 이는 소비자 권리에 선도적 구실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미국에는 불매운동 정보만 다루는 매체(<계간 보이콧>)가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불매운동 성공 사례는 싱클레어 방송그룹 사건이다. 2004년 미국 대선 때 보수성향인 싱클레어 방송그룹의 시사 프로그램 <도둑맞은 명예> 제작자들이 공화당의 조지 부시 후보 지지자들과 연루돼 민주당의 존 케리 후보를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누리꾼들은 이 프로그램 후원 기업 명단과 연락처를 공개하며 불매운동을 벌였고, 유명 방송인들과 변호사들도 동참했다. 이에 버거킹 등 거대 광고주들이 계약을 취소하자 싱클레어는 결국 방송 취소를 발표했다.

한국에도 크고 작은 소비자 불매운동이 여럿 있었다. 1987년 해태상사가 돼지고기 통조림을 수입하려고 하자 전국 양돈 농가가 해태가 생산하는 모든 제품의 불매운동에 나섰다. 해태상사는 이에 수입을 포기했다. 그 뒤로도 2005년 황우석 논문조작 사건을 보도한 <문화방송>(MBC) ‘피디 수첩’ 광고주 불매운동, 2013년 대리점에 제품을 강매한 영업사원의 폭언 공개로 인한 남양유업 불매운동, 2016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옥시 제품 불매운동 등이 있었다. 2016년에는 한국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배치하자 터를 제공한 롯데그룹이 중국에서 불매운동 대상이 되기도 했다.

불매운동의 형태는 크게 두가지다. 불매운동의 대상이 되는 특정 기업 상품의 구매를 거부하는 형태와, 불매운동의 대상 기업과 거래하는 제3자(혹은 기업)를 불매운동의 표적으로 삼는 형태다. 또한 과거에는 단순히 물건의 가격이나 품질에 불만을 품고 소비자 불매운동을 했지만 요즘은 기업활동 전반과 정치적, 사회적, 윤리적 이유에서도 불매운동이 벌어진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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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권과 충돌

소비자 권익 보호를 내세운 불매운동은 그 대상이 되는 개인 또는 기업의 재산권과 충돌하게 돼 법적 다툼을 일으킬 소지가 항상 존재한다.

한국에서 소비자 불매운동으로 발생한 법적 분쟁의 시초는 마이클 잭슨 내한공연 반대운동 사건이다. 공연기획사인 태원예능이 1996년 6월 미국 팝가수 마이클 잭슨 내한공연 계약을 정식 체결하자, 50여개 시민·사회·종교단체가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를 꾸려 외화 낭비, 고액 입장료로 인한 청소년 과소비 조장, 마이클 잭슨 아동 성추행 의혹 등을 이유로 공연 반대운동을 벌였다. 태원예능은 물론, 태원예능과 공연 관련 계약을 맺은 방송사, 입장권 판매 대행사 등에도 소비자 불매운동을 전개하겠다는 항의서한을 보냈다. 이에 일부 업체는 계약을 취소했다. 전형적인 ‘제3자 대상 불매운동’이 효과를 본 것이다.

1996년 10월 예정된 공연을 마친 태원예능은 공대위 대표자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태원예능은 입장권 판매 대행 계약을 맺은 은행들이 공대위 항의를 받고 계약을 취소하는 바람에 직접 직원을 뽑아 전화 예매를 받는 방식으로 바꿨는데, 직원 인건비와 광고비가 지출되는 등 재산적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이를 인정해 “공대위는 태원예능에 46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태원예능을 상대로 한 공대위의 소비자 불매운동은 태원예능의 영업권에 제한을 가져온다고 해도 입장권 구매 결정을 소비자들의 자유로운 판단에 맡겼기 때문에 허용된다고 봤다. 하지만 공대위가 태원예능과 거래 관계에 있는 은행들(제3자)을 압박해 계약 파기로 이어졌다면 그 계약에 따른 태원예능의 경제적 이익이 침해된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에 정당화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마이클 잭슨 내한공연 불매운동 사건의 대법원 판례가 민사적으로 소비자 불매운동의 허용 한계를 설정했다면, 이른바 ‘조선·중앙·동아일보 광고 중단 불매운동’(이하 조중동 불매운동) 사건은 소비자 불매운동의 형사적 허용 범위가 형성되는 계기가 됐다.

조중동 불매운동 사건은 2008년과 2009년 두차례로 나뉜다. 2008년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확대 조처를 발표하자 포털사이트 다음의 한 인터넷카페 운영진과 회원들은 조중동이 정부를 옹호하는 기사를 싣는다고 판단했다. 이에 불매운동을 할 목적으로, 조중동에 광고를 게재하는 광고주들에게 지속적, 집단적으로 항의 전화를 하거나 누리집에 항의 글을 게시했다. 검찰은 2008년 8월 카페 운영진 등을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했다. 대법원은 2013년 3월 조중동의 광고주를 공격한 피고인들의 행위가 조중동에는 직접적인 위력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지만, 광고주들에게는 업무방해죄의 위력에 해당한다며 유죄 판결했다. 대법원은 업무방해죄에서 위력은 ‘사람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거나 혼란하게 할 만한 일체의 세력을 말하고, 유형적이든 무형적이든 상관없으며, 폭행과 협박은 물론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지위와 권세에 의한 압박을 포함한다’고 전제했다.

2009년 사건은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 대표 김아무개씨가 ‘광동제약이 조중동에 광고를 편중했다’며 불매운동을 선언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김씨는 광동제약 쪽 관계자를 만나 “불매운동 대상 업체로 선정됐다”며 다른 신문들에도 동등하게 광고를 집행하고, 이런 사실을 회사 누리집에 공지하라고 요구했다. 광동제약은 이를 실행에 옮겼다. 검찰은 2009년 7월 공갈·강요 혐의로 김씨 등을 재판에 넘겼다. 대법원은 2013년 4월 김씨의 행위가 강요죄와 공갈죄의 협박에 해당한다며 유죄 판결했다.

법원의 가이드라인

2008년과 2009년 대법원 판결을 요약해보면, 집단적·지속적 항의 전화 등의 행위는 불매운동 대상 기업에 대한 업무방해에 해당한다. 또 불매운동을 한다는 사실과 함께 특정 사항을 요구하는 행위는 대상 기업을 위축시켜 의사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이 된다. 소비자 불매운동 자체는 헌법(124조)이 보장하는 소비자 보호의 하나로 인정되지만, 그 과정에서 상대방이 자유로운 판단에 따라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면 재산권 등 기본권을 침해해 위법성이 인정된다는 의미다. 소비자가 특정 기업 제품을 구매할지는 전적으로 자유의사에 속한다.

결국, 특정 기업의 제품을 대상으로 소비자 불매운동을 펼칠 때 구매하지 말자고 주장하거나 신고된 집회·시위를 하는 건 괜찮지만, 특정 개인이나 기업에 위력을 가해 거래 행위를 방해하면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게 우리 법원의 태도다. 유니클로 매장에서 발생한 업무방해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둔산경찰서 관계자도 “기소 의견으로 경찰에 송치할지, 불기소할지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ㄴ씨를 업무방해 혐의로 입건한 건 일본 불매운동 때문이 아니라, 매장 안에서 손님의 물건 구매를 방해한 행위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정필 기자 fermat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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