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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새 콘크리트는 일상의 풍경을 바꿀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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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임진영·염상훈의 앙성집 짓기
⑫건축 재료의 특징


건축은 그 시대 재료와 기술 반영

새 재료 나오면 새 구조 시도돼

최근 철근콘크리트 가장 많이 쓰여

‘슈퍼콘크리트’ 얇으면서도 강해

섬세하고 유려한 공간 표현 가능

비싼 가격이 문제…차차 낮아질 것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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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조가 주를 이루는 유럽의 중세 도시나, 목조로 지어진 동아시아의 도시처럼 건축 재료와 기술의 발달은 우리가 살고 있는 ‘건조 환경’(건축물을 설계하는 환경)의 특징을 만들어왔다. 건축은 문화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산업 재료와 기술을 반영한다. 재료와 기술이 그 시대의 건축 문화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배경이라는 의미다. 구하기 쉬운 재료, 이를 구축하는 기술, 축적된 노하우가 반복되면서 한 시대의 풍경이 만들어진다.

그 과정에서 건축가는 새로운 기술과 재료를 탐색한다. 상상하지 못한 영역으로 나아가는 길목에는 건축의 구조를 결정하는 재료와 기술이 있다. 근대 이후 철과 유리가 등장했고, 철골 구조와 철골 콘크리트 구조를 통해 더이상 벽이 힘을 받지 않아도 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수평창(가로로 긴 창)이 나왔다. 이처럼 건축은 산업의 변화를 감지하고 재료를 적극적으로 도입해 새 구조를 시도하며 새로운 집의 유형과 형식을 만든다.

한옥 미학 뒤엔 그 시절 나무 사정

널리 알려진 구조 방식은 목구조, 철근콘크리트 구조, 조적조 구조(돌, 벽돌, 콘크리트블록 등을 쌓아 올려 벽을 만드는 건축구조), 철골 구조 등 다양하지만, 집에는 주로 경량 목구조와 철근콘크리트 구조가 쓰인다. 가격 경쟁력이 있고, 시공 방식이 보편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적인 한옥은 중목조다. 주춧돌 위에 나무를 세울 때, 불규칙한 돌의 표면에 맞추어 나무를 깎아내는 ‘그랭이질’만으로 기둥을 세우고, 이를 들보로 연결한 뒤 지붕을 얹는다. 굵은 나무의 구조를 위에서 힘으로 누르듯 흙으로 잔뜩 이고 기와를 덮은 습식 지붕이 특징이다. 화려한 공포(처마 무게를 떠받치기 위한 나무)와 도리(서까래를 놓는 나무)는 다소 무거운 지붕의 힘을 기둥에 분산시키고 깊은 처마를 만들기 위한 일종의 장치이다. 전봉희 서울대 교수(건축학)는 이러한 쌓는 방식이 “목재 사정이 좋지 않은 우리의 상황에서 큰 집을 짓기 위해 내놓은 해결책”이라고도 설명한다. 흔히 한옥의 지붕 곡면, 처마 등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지만, 그 미학에는 그 시대의 목재 보급과 재료의 길이, 두께, 강도 등이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반면, 기성복에 가까운 서양식 목구조도 있다. 규격화된 자재와 구조 방식을 통해 산업화된 목구조 방식이다. 목재를 여러 켜로 압착한 집성재(가공목재)인 ‘글루램’이 서양식 중목조라면, 2×4로 알려진 경량 목구조도 있다. 글루램은 변형이 적고 강도가 높아 대형 건축물이나 고층 건물에도 쓸 수 있고, 미국과 캐나다에서 보편화된 경량 목구조는 2×4, 2×6인치 등으로 규격화된 목재를 활용한 좀 더 가벼운 목구조 방식이다. 목재의 장점은 살리면서도 중목조보다 값이 싸고 시공하기 쉽다. 친환경적인 재료이면서 시공 기간이 짧다는 장점도 있다.

철근콘크리트 구조는 가장 저렴하면서도 보편화된 구조 방식이다. 환경 문제, 에너지 효율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전세계 구조물의 80%를 차지하는 방식이다. 목구조가 기본 모듈을 통해 공간의 구성을 결정할 수 있다면, 철근콘크리트는 공간 구성이 자유롭다.

흥미로운 것은 이 구조 방식을 해석하는 건축가들의 아이디어다. 건축가 민성진은 레이크힐스순천 클럽하우스, 금강산 아난티클럽하우스에서 글루램을 활용해 한옥의 구조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냈다. 현대적인 관점에서 한옥의 진화를 모색한 건축가 황두진은 목재 안에 철재를 넣은 목철 합성 구조를 통해 좀 더 경쾌한 비례를 가진 구조물을 선보이기도 했다. 재료의 특성과 구조 방식의 핵심을 파악하고 해석하면 새로운 시도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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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성집 긴 지붕을 위한 재료는

앙성집의 경우 원형 담은 좀 더 저렴하게 쌓는 방식이 없을까 고민 중이지만, 기본 얼개는 철근콘크리트 구조가 적합했다. 문제는 지붕이었다. 14m를 가로지르는 전면 지붕은 실내에 빛을 차단하는 차양이기도 하고, 안에서 밖으로 뻗어가는 현대적인 처마이기도 했다. 보통 집의 내부는 단열층이 들어가기 때문에 천장이 좀 더 낮아지는데, 이렇게 전면 유리가 있을 때는 그 단면의 변화가 아쉬울 때가 있다. 천장면이 그대로 외부로 뻗어나가면서 만드는 공간의 명쾌함과 내외부 경계의 모호함에서 공간의 묘미가 살아나기 때문이다.

보통 콘크리트 구조체는 두께 250㎜ 정도지만 단열재를 덧붙이면 내부의 지붕 두께는 450㎜가 되었다. 여기에 복병도 있었다. 14m에 이르는 긴 지붕이 힘을 버티려면 두께가 600㎜는 되어야 했다. 내부의 지붕 두께가 외부로 그대로 뻗어가게 한다면 상당히 두꺼운 지붕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작은 집의 규모에서 보면 상당히 둔탁한 비례다. 이 둔탁함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고민이었다.

콘크리트를 얇게 만드는 것에 대해 고민할 즈음, 건축가 김찬중 더시스템랩 대표의 두 프로젝트가 떠올랐다. 하나은행 플레이스 원과 울릉도 코스모스 호텔이다. 형태가 주는 아름다움과 독창성 덕에 화제를 모았지만, 이 두 프로젝트의 핵심은 얇고 유려하게 빚어낸 콘크리트의 미학에 있었다. 그리고 이를 기술적으로 해결하는 데에는 유에이치피시(UHPC, Ultra-High Performance Concrete), 즉 초고성능 콘크리트라는 새로운 재료가 있었다.

‘슈퍼콘크리트’라고도 불리는 이 재료는 일반 콘크리트보다 강도가 10배 정도 강하다. 초고강도, 고내구성을 가진 새로운 시멘트 복합체는 철근 없이도 고강도를 유지해 얇은 구조물을 만들어내고, 형상 제작을 통해 자유로운 형태를 구현할 수 있다. 물론 단점도 있다. 일반 콘크리트의 10배에 가까운 비싼 가격, 수축에 약해 철근을 배근하기 어렵다는 점, 그래서 인장 강도(하중을 견디는 정도)에 약하며, 신재료이다 보니 구조에 대한 충분한 기준이 쌓이지 않았다는 점 등이다.

주로 토목에서 쓰이던 이 재료를 건축의 구조체로 실현한 것이 바로 하나은행 플레이스 원과 울릉도 코스모스호텔이다. “이 재료는 우리가 알고 있던 콘크리트의 굳건하고 육중한 구축적 체계와는 감성적으로도 다르다. 핵심은 그 물성이다. 콘크리트 건물을 다른 방식으로 만들 수 있다는 차이를 보여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김찬중) 콘크리트를 감성적으로 표현할 얇은 구조물을 만들기 위해, 김찬중 건축가는 이를 구조체로 실현하는 데 도전했다. 더시스템랩의 주도로 다양한 엔지니어링 협업체가 꾸려졌고, 세계적으로 시도된 적 없었던 현장 타설 방식으로 구조체가 만들어졌다. 플레이스 원에서는 풍력과 휨에 버티는 두께 8㎝의 거대한 패널을, 울릉도 코스모스호텔에서는 두께 12㎝의 단일 구조체를 만들어낸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던 콘크리트의 육중한 이미지가 사라지는 순간이다.

여전히 비싼 재료, 보편화되지 않은 이 기술은 우리의 일상과는 먼 이야기일까? ‘슈퍼콘크리트’라는 한국 고유의 브랜드를 개발하고 기술을 연구, 개발해온 김병석 한국건설기술연구원 단장은 유에이치피시(UHPC)의 보급이 멀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이미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서는 고강도 슈퍼콘크리트보다 강도를 단계별로 낮춘 보급형을 개발하고 있다. 재료비를 낮추면 가격 경쟁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만약 앙성집의 지붕을 슈퍼콘크리트로 만든다면 구조체는 15㎝까지 가능하다고 했다. 그렇게 한다면 천장면을 그대로 뻗어가게 하면서도 작은 집에 어울리는 섬세한 구조물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처짐이 생길 수 있는 앙성집의 긴 지붕 구조는 슈퍼콘크리트의 특성에 합리적인 방식은 아니었다. 결국 얇은 구조체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지붕 중간을 받쳐줄 벽체를 더하기로 했다. 이 벽체 덕에 외부 공간이 더 아늑해졌으니 아쉬움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슈퍼콘크리트가 지금의 철골콘크리트만큼 보편화된다면, 콘크리트가 만들어내는 우리의 도시 풍경은, 집의 모습은 확연히 달라질 것이다. 좀 더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보급된다면, 우리의 집은 내구성이 더 좋으면서도 섬세하고 유려한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을 거다. 에펠탑의 철골 구조가 당시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구조체였던 것처럼 말이다.



임진영은 건축저널리스트이자 기획자다. 건축전문지 <공간> 편집팀장을 지냈고, 현재는 <마크> <도무스> 등에 글을 쓰며 건축물 개방 축제인 ‘오픈하우스서울’을 기획하고 있다. 남편인 염상훈은 연세대 건축공학과 교수이자 건축가다. 움직이는 파빌리온 ‘댄싱 포레스트’ 등을 설계했다. 부모님과 함께 쓸 ‘앙성집’을 짓는 과정을 통해 사람들과 좋은 공간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싶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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