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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삶의 목표는 없어도 괜찮다, 그러나 호기심을 꼭 가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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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강명주의 비긴어게인(13)



뜨거운 여름날이다. 그런데도 학생들이 모였다. 취업의 열기는 무더운 여름보다 더 뜨겁다. 채용 뉴스나 채용 관련 사이트들을 찾아가며 어떻게 취업을 준비해야 하나 늘 고민하고 걱정하고 있는 학생들이다. 불볕더위도 취업준비를 위한 열정을 막지 못한다. 나를 만나는 이유도 그러하다. 특히 외국기업이나 금융권 취업에 조금이라도 더 유익한 정보를 얻고자 귀를 기울인다.

“요즈음 학생들은 질문이 없어요” 어느 교수님의 안타까운 말이다. 학생들 강의나 모임에 가면 의외로 질문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늘 강의시간에 질문을 의도적으로 유도한다. 면접을 잘 보는 방법의 하나도 질문을 잘하는 것이다. 질문도 해봐야 는다. 금융기관 면접 시 마무리에 하는 질문이 있다. “끝으로 물어볼 질문이 있나요?”라는 질문이다. 어떤 질문을 하느냐에 따라 면접 승패를 결정짓기도 한다.

오늘은 사전에 질문을 받았다. 궁금한 사항을 미리 파악하고 답을 해주기 위한 배려다. 그래도 혹시나 추가 질문이 있을까 기대해본다. 누군가 손을 번쩍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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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손을 번쩍 들어 질문했다. [일러스트 강경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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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에서 어떻게 보험사로 이직하셨나요?” 반가운 질문이다. 용기 있는 질문이다. 취업과는 직접 관련 없는 질문이지만 용기 있게 질문을 하는 자세가 옛날 나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다소 보수적이라는 금융권에서 여성으로서 은행, 증권, 보험업계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근무한 경력이 호기심을 자극했나 보다.

벌써 20년 전이다. 1999년 초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 후배로부터 연락이 왔다. 외국계 손해 보험사에서 다이렉트 마케팅 한국 책임자를 뽑는다고 한다. 보험사 경력도 좋지만, 은행경력자도 함께 보고 있다고 한다. 문득 선배가 떠올라 추천하겠다고 한다. 다른 쟁쟁한 보험업계 후보자도 있지만 한번 도전해보라고 강력히 추천한다.

우리나라 보험사는 크게 생명보험, 손해보험사로 구분되어 있다. 손해보험사는 일부 화재보험사로 표시하기도 한다. 후배가 추천한 보험사는 외국계 손해보험사다. 미국 재보험사가 인수해 기존 한국 상해보험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새로운 인물을 물색하고 있었다.

그 당시 보험영업의 전통적인 채널은 개인 설계사나 보험 대리점을 통한 영업이다. 이 전통영업 방식에서 벗어나 향후 대안 채널로서 고객과 직접 영업하는 채널 즉 다이렉트 마케팅사업을 한국에서 키우기 위해 적임자를 찾고 있었다.

보험사는 꿈에도 생각 못 했다. 게다가 영업이다. 그것도 보험 영업이다. 거기에 새로운 다이렉트 마케팅영업이다. 호기심이 발동한다. 보험업계다. 그 새로운 세계가 궁금해진다.

보험이란 무엇인가? 은행과는 어떻게 다른가? 기존의 틀을 깬 새로운 채널 다이렉트 마케팅이란 무엇인가? 이 새로운 채널을 통해 영업을 높이는 방법은 무엇인가? 어떠한 보험상품을 판매할 것인가? 관련법규들은 무엇인가? 전산시스템은 어떠한가? 고객데이터 분석 방법은 무엇인가? 향후 도입될 방카슈랑스는 무엇인가? 시장 선두 주자는 누구인가? 등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증폭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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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과 다이렉트 마케팅, 방카슈랑스 등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나 자신에게 질문했다. [일러스트 강경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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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 나 자신에게 질문해본다. 과연 나는 할 수 있을까? 나의 장점은 무엇인가? 반면에 약점은 무엇인가? 이 업무를 수행할 역량을 갖추었는가? 나의 의지와 자세는 어떠한가? 어떻게 보험영업을 잘할 수 있겠는가? 이 보험사에서 나의 비전은 무엇인가? 그리고 나만의 차별성은?

보험경력은 전무했지만, 용기를 가지고 지원했다. 다행히 서류심사를 통과해 몇 차례 인터뷰도 거쳐 최종 리스트 3인에 올랐다. 마지막 인터뷰만 남았다. 아시아지역 총괄사업대표와 인터뷰다. 장소는 한국이 아니다. 아시아지역 총괄사업본부가 있는 일본 동경이다. 아침 비행기로 출국하여 당일 오후 2시에 면접이다. 모든 것이 준비됐다.

새벽잠을 설치며 주어진 비행기 표와 여권을 갖고 공항카운터에 설레는 마음으로 도착했다. 여권과 비행기 표를 내밀고 좌석 배정을 기다리는데 공항 직원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을 건넨다.

“출국할 수 없습니다.” “아니 왜요?” 일본 비자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앞이 캄캄했다. 해외여행은 했지만, 일본은 처음이었다. 몰랐다. 이웃 국가인데도 일본여행은 비자가 있어야 했다. 인터뷰를 준비했던 보험사 직원도 미처 챙기지 못했다.

오늘 아니면 인터뷰는 못 한다고 한다. 나와 인터뷰가 예정된 아시아지역 총괄사업대표가 다음 날 미국으로 떠난다고 한다. 미국 본사로 승진 영전하게 되어 내일 출국한다고 한다. ‘ 아. 이렇게 끝나는가….’ 인터뷰는 동해 저 멀리 비행기와 함께 물 건너 가버린 거 같았다.

공항에서 돌아오는 길에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도저히 이대로 물러설 수 없었다. 한국 보험 지사에 연락을 했다. 이미 오후 2시에 일정이 잡혀 있으니 그 시간에 대면 면접은 못 하지만 전화로라도 인터뷰하자고 제안해보라고 했다.

마침내 오후 2시 전화인터뷰가 성사됐다. 요즈음은 화상 인터뷰가보편화됐지만 20년 전에는 아니다. 휴대폰은 물론 일반전화 스피커폰도 귀한 시절이다. 오후 2시 드디어 전화가 연결됐다. 스피커폰에서 물 건너갔던 상대방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긴장되는 순간이다. 영어로 얼마나 노력하고 준비한 인터뷰인가. 아침 사건은 잊자. 자신감을 가지고 차분하게 여유 있게 하자.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마음을 되잡는다.

내 이름을 소개하며 인사한다. 지금 뽑으려는 자리가 텔레마케팅영업도 총괄하는 다이렉트 마케팅자리이니 전화로 하는 다이렉트 인터뷰가 더 의미가 있을 수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웃는 목소리가 스피커폰을 통해서 나온다. 우리는 웃으면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나는 보험경력이 없음을 밝히고 이 자리는 보험 경력보다는 더 중요한 요소가 무엇인지 물었다. 그리고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궁금했던 나의 질문은 계속됐다. 30분 예상했던 면접이 2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얼마 후 연락이 왔다. 함께 일하자고. 입사 3개월 후에 그분과 만났다. 전화인터뷰 후 처음이다. 악수하는데 사뭇 놀라는 표정이다. 계속되는 질문과 당당한 목소리에 체격이 꽤 큰 줄 알았나 보다. 나는 반짝이는 눈망울로 답을 했다. 나의 열정은 나보다 훨씬 더 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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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도 호기심을 기반으로 나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며 새로운 도전을 하려고 노력한다. [일러스트 강경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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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나는 보험업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보험경력도 없는 사람에게 기회를 준 회사에 감사했다. 최선을 다해 혁신적인 신규채널 개발과 영업실적으로 보답했다. 아직도 나는 호기심이 많다. 끊임없이 나에게 질문을 한다. 그 질문을 통해 나의 틀을 깨려고 노력한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근원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나는 호기심이라고 이야기한다.

취업 대란이라는 현실, 우리 청춘들 아주 어렵다. 참 힘들다. 삶의 목표는 정하지도 못한다. 삶의 목표? 굳이 없어도 된다. 나도 없었다. 하지만 호기심만큼은 가져보자. 호기심은 궁금증을 자아낸다. 그 궁금증은 질문을 만든다. 그 질문은 답을 찾게 해준다. 그리고 용기도 준다. 그 호기심이 바로 나를 성장시키고 나 자신에게 활력을 불어 넣어줄 것이다.

강명주 WAA인재개발원 대표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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