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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여름 성수기도 이젠 옛말… 흥행 가뭄에 1000만 영화 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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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영화 ‘엑시트’는 주변 사물을 이용하는 독창적인 재난 탈출기를 그려내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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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극장가에서 1,000만 영화가 실종됐다. 성수기 스크린 농사가 흉작이었음을 보여 주는 상징적 지표다. 한국 영화계는 2014년 ‘명량’ 이후로 2015년 ‘베테랑’과 ‘암살’, 2016년 ‘부산행’, 2017년 ‘택시운전사’, 2018년 ‘신과 함께-인과 연’ 등 매해 여름마다 1,000만 영화를 배출해 왔지만, 6년 만에 그 전통이 끊길 위기에 놓였다.

올해도 총제작비 100억원대 한국 영화 네 편이 7, 8월에 집중적으로 개봉했다. 그러나 ‘엑시트’를 제외하고는 세 편 모두 부진했다. ‘나랏말싸미’는 역사왜곡 논란에 부닥치면서 95만명을 불러모으고 극장에서 사라졌고, ‘사자’는 미흡한 완성도로 혹평 받으며 160만 관객이 드는 데 그쳤다. ‘봉오동 전투’도 누적관객수 442만명을 기록했지만 손익분기점(450만명)이 높아서 결코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다. 일본의 경제 보복으로 촉발된 반일 감정도, 당초 예상과 달리 흥행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사실상 유일한 흥행작은 ‘엑시트’뿐이다.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24일까지 819만 관객을 만났다. 최근 ‘분노의 질주: 홉스&쇼’와 ‘변신’ ‘광대들: 풍문조작단’ 등 신작들이 개봉했음에도 박스오피스 상위권에서 선전했다. 다만 평일 관객 8만~9만명, 주말관객 20만명 미만으로 서서히 뒷심이 빠지고 있고 극장가 화제가 다음달 추석 개봉 영화로 옮겨 가고 있어 1,000만 달성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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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봉오동 전투’는 반일 감정과 맞물려 폭발적인 화제를 모았지만 흥행은 그에 못 미쳤다. 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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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작들의 성적 부진에 전체 관객수도 예년보다 크게 줄었다. 24일까지 8월 총관객수는 2,110만명. 아직 8월이 일주일가량 남아 있지만 지난해 같은 달 3,026만명보다 무려 916만명이나 적다. 최근 일일 총관객수가 평일 45만명 안팎, 주말엔 100만명 안팎 수준에 불과해, 그 격차를 따라잡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연간 관객수가 처음 2억명대로 올라선 2013년 이후 8월 총관객수 최저 기록도 예상된다. 지난해까지는 8월 총관객수 2,900만~3,200만명을 꾸준히 유지해 왔다.

그나마 7월에는 총관객수 2,192만명으로 지난해(1,978만명)보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그 중 84.8%에 해당하는 1,858만명이 외국 영화 관객이었다. 한국 영화 총관객수는 334만명으로 2008년 이후 가장 적었고, 한국 영화 점유율은 15.2%로 2004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래저래 한국 영화에는 올 여름이 최악의 흥행 가뭄기였던 셈이다.

극장들은 “여름 영화들의 재미와 완성도가 기대에 못 미쳤다”고 입을 모은다. 온라인 게시판에도 “볼 만한 영화가 없다”는 평가가 어느 때보다 자주 올라온다. 상반기에 ‘극한직업’과 ‘어벤져스: 엔드게임’, ‘기생충’, ‘알라딘’ 등 1,000만 영화가 네 편이나 탄생한 것도 여름 극장가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리나라의 1인당 연평균 영화 관람 횟수는 4.2회. 이미 상반기에 1년치 극장 관람 수요가 충족됐다는 얘기다. 올 여름엔 이 관객들을 다시 극장으로 불러들일 만큼 빼어난 화제작이 없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한 영화평론가는 “비성수기에도 영화만 좋으면 흥행하는 데서도 보듯 이제는 성수기와 비성수기라는 개념이 희박해지고 있다”며 “액션과 사극 같은 대작 영화에만 편중된 여름 시장의 개봉 전략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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