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30 (토)

이슈 '브렉시트' 영국의 EU 탈퇴

英의회 존슨 제안 3번연속 `퇴짜`…브렉시트 리더십 치명상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4일(현지시간)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운데)가 런던 의사당에서 진행된 취임 후 첫 번째 `총리 질의응답`에서 답변하고 있다. [EPA =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영국 의회가 유럽연합(EU)과 합의 없이 EU를 탈퇴하는 '노 딜' 브렉시트를 차단하는 데 성공했다. 보리스 존슨 총리는 이는 EU에 대한 '항복 법안'이라고 반발하며 10월 15일 조기 총선을 치르겠다고 으름장을 놨지만 이 또한 의회에서 좌절됐다.

4일(현지시간) 영국 하원은 노동당 소속 힐러리 벤 브렉시트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제출한 EU법에 대해 표결을 실시해 찬성 327표, 반대 299표로 가결했다. 해당 법안은 EU 정상회의 다음날인 10월 19일까지 정부가 EU와 브렉시트를 합의하는 데 도달해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어 '노 딜 방지 법안'으로 일컬어졌다. 내각 출범 50일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세 번 연속 의회에 무릎을 꿇으면서 존슨 총리는 궁지에 몰렸다. 전날 하원에 의사 일정 주도권을 넘겨주면서 취임 6주 만에 첫 패배를 당한 존슨 총리는 노 딜 브렉시트를 저지하기 위한 초당파 의원들의 공격에 속수무책이었다.

심지어 보수당 내에서도 반란표가 쏟아졌다. 이에 존슨 총리는 '조기 총선' 카드를 꺼내 들었으나 이마저도 물거품이 됐다. '죽기 살기로(do or die)' 브렉시트를 달성하겠다는 존슨 총리의 강경한 행보가 의회에서 잇달아 제동이 걸리면서 그는 막다른 골목에 몰린 처지로 전락했다.

이번 법안은 존슨 총리가 EU와 새로운 합의에 다다르지 못하더라도 10월 31일로 예정된 브렉시트 기한에 무슨 일이 있어도 탈퇴를 강행한다는 방침을 고수하자 이를 막기 위해 고안됐다. 법안에 따르면 EU와 최종 합의안을 마련하지 못하면 정부는 하원에 노 딜 브렉시트에 대한 승인을 얻어야 한다. 하원 승인이 없으면 영국 총리는 EU 측에 브렉시트를 내년 1월 31일까지 3개월 추가 연기를 요청해야 한다. EU에 더 이상 양보는 없다는 존슨 총리 태도에 비춰보면 사실상 브렉시트가 3개월 미뤄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노 딜 방지 법안 가결은 예견된 결과였다. 앞서 전날 하원이 방지 법안 가결에 절차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정부에서 의사 일정 주도권을 가져오는 결의안을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영국 의회에서 어떤 법안을 논의할 것인지 등을 결정하는 의사 일정 주도권은 당초 정부가 갖고 있었다. 하원 표결에서 해당 결의안이 328표 대 301표로 가결되면서 존슨 총리에 대한 하원의 반감을 드러냈다. 특히 노동당 등 야당뿐만 아니라 보수당 의원 21명도 이 투표에서 찬성표를 던졌다.

매일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존슨 총리는 이날 노 딜 방지 법안이 통과하자 예고한 대로 조기 총선 동의안을 하원에 즉각 상정했으나 또다시 패배를 맛봤다. 10월 15일 조기 총선을 실시하는 동의안은 전체 의석 중 3분의 2 이상인 434명이 찬성해야 하지만 찬성 298표, 반대 56표로 과반(320석)에도 미치지 못하고 부결됐다. 노동당 의원 대부분은 투표를 무산시키기 위해 기권했다. 이로써 조기 총선으로 정국 장악력을 높이려던 존슨 총리의 마지막 한 수도 무산된 셈이다.

이날 표결에 앞서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는 조기 총선 동의안을 두고 "백설공주에게 독사과를 건네는 마녀처럼 '노 딜'이라는 독을 건네는 것"이라고 거절 의사를 밝혔다. BBC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 노동당 인사를 인용해 "코빈 대표가 현재 탈퇴 예정일인 10월 31일 이전에 치르는 조기 총선에 반대할 것"이라고 전했다.

하원에서 연속으로 패배하면서 존슨 총리의 국정 수행 동력이 사실상 끝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보수당 의원은 "존슨 총리가 총리 관저가 있는 다우닝가에 갇혔다"고 말했다. 현지 언론들도 한목소리로 존슨 총리의 패배를 다뤘다. 일간 가디언은 "하원에서 패배하면서 총리가 코너에 몰렸다"고 지적했다. 데일리미러지는 "영국 역사상 최악의 총리"라고 혹평했다. 존슨 총리가 꾸린 내각에서도 반발이 나오고 있다.

또 존슨 총리가 전날 표 대결에서 당론을 어긴 의원을 상대로 한 출당 조치와 관련해서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마이클 고브 영국 브렉시트부 장관 등 내각 인사들은 전날 강행한 보수당 의원 21명에 대한 제명을 철회하라고 총리에게 요구하고 있다. 의원 100여 명이 참여하고 있는 당내 그룹 '원 네이션'은 성명을 통해 존슨 총리의 출당 결정을 '원칙적으로 잘못된 나쁜 정치 관행'으로 규정하고 '모든 보수적 견해에 문호를 개방하는' 지도력을 보여줄 것을 촉구했다. 존슨 총리는 조기 총선 개최를 위한 표결을 또다시 추진할 예정이다. 제이컵 리스모그 하원 원내대표는 5일 하원에서 오는 9일 조기 총선 동의안을 상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노 딜 브렉시트 위험이 줄어들자 유럽 증시는 일제히 상승했다. 이날 영국 FTSE100 지수는 전일 대비 0.59% 오른 채 마감했고, 범유럽 주가지수인 스톡스유럽600은 전날보다 0.89% 상승한 채 거래를 마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의리를 지켰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들에게 "보리스는 이기는 법을 알고 있다. 걱정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김덕식 기자 / 류영욱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