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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수 칼럼] 군부 쿠데타, 검찰의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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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를 똑같이 수사하면 ‘공정’한 것일까. 정치적 균형과 공정함을 찾는 건 선거를 통해 국민 위임을 받은 정치가 할 일이지, 검찰의 역할은 아니다. 검찰이 독점적 수사권으로 이걸 하겠다는 건, 군부가 쿠데타를 해서라도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지키겠다고 나서는 것과 다를 게 없다

한겨레
박찬수
논설위원실장


1961년 5월16일 새벽, 서울 도심의 중앙방송국(현 KBS)을 장악한 반란군은 아나운서에게 왜 봉기했는지를 담은 성명서를 읽게 했다. “은인자중하던 군부는 드디어 오늘 아침 미명을 기해…”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성명에서 이렇게 쿠데타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군부가 궐기한 것은 부패하고 무능한 현 정권과 기성 정치인들에게 더이상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맡겨둘 수 없다고 단정하고, 백척간두에서 방황하는 조국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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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를 주도한 박정희 소장은 장도영 육군참모총장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만약 우리가 택한 이 방법이 조국과 겨레에 반역이 된다면, 우리들은 국민 앞에 사죄하고 전원 자결할 것입니다.” 목숨 걸고 한강 다리를 건넌 쿠데타 주도세력에게 나라를 바로잡겠다는 한줄기 붉은 단심이 없었다고 보긴 힘들다.

한때 ‘군사혁명’으로 칭송되던 반세기 전의 군사반란을 떠올린 건, 지금 윤석열 검찰총장 심정도 그때 그 청년 장교들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정국은 혼란스럽고 여야는 갈라져 싸우고 국민 여론은 분열됐는데, 법과 정의를 수호해야 할 검찰이 가만있어서 되겠는가, 수많은 의혹과 논란에 휩싸인 사람이 법무부 장관으로 가는 게 정당한가, 이런 나름의 사명감이 국회 인사청문회가 끝나기도 전에 대대적 압수수색에 나서고 한차례 조사도 없이 후보자 부인을 기소하는 전격적인 행동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물론, 군부 쿠데타와 검찰의 행동을 단선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다. 쿠데타는 ‘헌정질서 유린’이지만, 검찰은 ‘헌법’에 근거해 수사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군부가 총칼로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결정할 수 없듯이,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으로 ‘법과 정의’의 심판자가 되려는 건 오만한 생각이다. 때론 명분이 있는 것 같고, 국민 지지를 받을 수도 있지만, 결국은 민주주의 기본인 ‘국민주권’을 심각하게 해치는 것으로 귀결되기 십상이다. 민주주의 체제가 민간 정부에 대한 군부의 항명을 용납치 않고 문민 통제를 엄격하게 확립한 이유가 여기 있다. 우호적인 것처럼 보이는 여론이 국민의 위임을 뜻하지는 않는다. 1961년 군사 쿠데타 직후에도 여론의 반응은 매우 호의적이었다. 그 시절 학생단체 가운데 군부를 지지하는 성명을 가장 먼저 낸 건 서울대 총학생회였다.

군사정권은 막을 내렸지만, 검찰은 여전히 국민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고비고비마다 국민 관심이 많은 사건을 전광석화처럼 수사하며 영향력을 유지해왔다. 대통령 인사권과 국회의 인준 권한을 침범한 검찰은 이제 칼끝을 야당으로 돌리고 있다. ‘정치적 균형’을 맞추기 위해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몇몇을 치고, 그렇게 국민 지지를 얻으며 논란을 잠재우려 할 것이다. 최근 윤석열 검찰총장이 대검 간부들에게 “검사가 정치적으로 편향된 건 부패한 것과 마찬가지다. 검사는 중립을 지키면서 본분에 맞는 일을 하면 된다”고 말한 건 그런 뜻으로 읽힌다.

여야를 똑같이 수사하면 ‘공정’한 것일까. 정치적 균형과 공정함을 찾는 건 선거를 통해 국민 위임을 받은 정치가 할 일이지, 검찰의 역할은 아니다. 검찰이 독점적 수사권으로 이걸 하겠다는 건, 군부가 쿠데타를 해서라도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지키겠다고 나서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여야를 넘나들며 ‘균형’을 맞추고 그래서 정치적 편향 시비에서 벗어나는 걸 용인하면, 최후의 승자는 언제나 검찰일 수밖에 없다.

현대사의 마지막 쿠데타는 1979~80년 무렵의 12·12와 5·17이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군사 쿠데타의 위협에서 완전히 벗어난 건 그로부터 20년이 지나서다. 1990년대 초반 김영삼 정부가 경복궁에 주둔하던 수방사 30경비단의 해체를 추진할 때만 해도, 군 장성들이 청와대 상황실로 전화를 걸어 ‘니들 배엔 총알이 안 박히냐’고 노골적인 협박을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12·12와 5·17 주역인 전두환·노태우 등이 군사반란과 내란 혐의로 중형을 선고받은 1997년 이후에야, 비로소 우리 주변을 휘감고 있던 쿠데타의 그림자는 사라졌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가 무너지고, 비록 쿠데타에 성공해 집권하더라도 결국 정치적·법적 심판을 면할 수 없으리라는 인식이 군 지휘관들에게 뿌리내렸기 때문일 것이다.

검찰의 과욕을 뿌리 뽑으려면 아마도 비슷한 경로를 거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취임 이후에도 외줄타기하듯 아슬아슬한 조국 법무부 장관이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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