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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홍기영칼럼] ‘디플레이션 공포’ 막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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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

추석을 앞두고 초대형 태풍 ‘링링’이 한반도를 강타했다. 정치권은 ‘조국 사태’를 놓고 사활을 건 주도권 다툼을 벌였다. 표리부동의 이중성을 가진 권력 실세의 민낯이 드러났다. 분노한 민심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타락한 지도층의 도덕성에 젊은 세대는 배신감을 느꼈다. 국민의 정치 환멸은 최고조에 달했다. 사회 전반에 불신이 확산하고 국론이 분열되는 큰 후유증을 남겼다. 이 와중에 경제는 만신창이가 됐다. 일본의 경제보복에 미중 무역전쟁 파고는 수출에 치명상을 입혔다.

마이너스 물가는 우리 경제가 과거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현상이다. 8월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동기보다 0.04% 하락했다. GDP(국내총생산) 디플레이터는 3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수요 둔화로 물가 수준이 장기간에 걸쳐 하락하는 ‘D(디플레이션)의 공포’가 엄습한다. 농수축산물과 석유 가격의 하락 등 공급 측면의 요인 때문이라지만 소비자가 지갑을 닫고 제품이 팔리지 않아 재고가 쌓이는 것이 문제다. 자칫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처럼 경기 침체와 저물가가 장기화할 수 있다.

저물가는 기업 투자를 위축시키는 요인이다. 반기업 정서, 경제정책 불확실성에 기업 투자는 갈수록 움츠러든다. 대한상의 보고서에 따르면 민간투자의 국내총생산 성장 기여도는 갈수록 추락한다. 2017년 2.8%에서 2018년 -0.8%로 떨어졌다. 올해 상반기에는 -2.2%까지 추락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상반기(-2.7%)에 육박했다. 투자 부진이 성장률을 갉아먹는 셈이다. 경제가 총체적인 무기력증에 빠졌다. 제조업 생산능력이 역대 최장인 12개월 연속 하락하고 수출 증가율은 9개월째 마이너스 행진이다. 경기 부진 국면에서 소비심리는 꽁꽁 얼어붙었다. 7월 소매판매액도 전달보다 0.9% 줄었다. 이러다간 올해 경제성장률이 2%에 못 미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원화가치 하락까지 감안하면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유지도 힘들 전망이다. 저물가·저성장의 수렁에 깊이 빠져들면 헤어나기 어렵다.

게다가 소득 분배는 갈수록 악화된다. 밀린 우윳값 25만원을 내지 못한 대전 일가족 4명 사망 ‘비극’은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을 연상시키며 또다시 충격을 던졌다. 우리 사회의 허리인 중산층이 무너진다. 올해 2분기 소득이 중위소득의 50% 이상 150% 미만에 해당하는 가구 비중은 58.3%로 집계됐다. 중산층 비중은 지난해보다 1.9% 낮아진 것으로 사상 최저 수준이다. 이는 2015년 67.9%를 기록한 이후 4년 연속 하락했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양질의 일자리 감소, 자영업자 몰락으로 중산층이 줄어든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역설이다. 소비 주체인 중산층이 무너지면 내수 기반이 약화하고 기업 매출이 줄어드는 악순환이 증폭된다.

정부는 경제에 먹구름을 드리우는 디플레이션 위험 요인을 선제적으로 제거하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 무엇보다 침체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노력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우선 가계와 기업이 소비와 투자에 적극 나설 수 있도록 정책 불확실성을 제거해야 한다. 시장 기능을 훼손하는 과도한 개입은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그 대신 기업의 수출 경쟁력을 배양하는 데 지원을 집중해야 한다. 또한 디지털 전환의 시대에 신산업 진입장벽을 과감히 제거해야 한다. 부실기업 정리를 비롯한 산업 전반의 구조조정에도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10월 중 한국은행의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이 제기된다. 일본의 경우, ▲제로금리 ▲양적완화 ▲재정지출 확대 ▲법인세율 인하 ▲규제 완화 등 경기 회생 대책을 총동원한 ‘아베노믹스’ 덕에 디플레이션과 엔고 현상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정부는 경제정책 대전환으로 금융·재정·세제·규제개혁 등 모든 역량을 결집해 위기를 앞둔 경제 살리기에 올인해야 할 때다.

[주간국장·경제학 박사 kyh@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25호 (2019.09.18~2019.09.2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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