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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여년 만에 동료 유골 찾자 한 맺힌 눈물이… [잊힌 자들의 머나먼 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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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현장 참여한 故 지옥동 씨 / 홋카이도 끌려가 비행장 건설현장 노역 / 병마에 생사 헤매다 깨보니 시체보관소 / 주검이 된 동료 2명 철길 옆 어딘가 묻어 / 무덤도 없이 버려진 조선인 아직도 많아

“빨리 고향에 데리고 가.”

2009년 일본 홋카이도 아사지노 비행장의 유골 발굴 현장에 참여한 지옥동(생전 사진) 할아버지는 세월의 흔적에 가려져 있던 조선인 유골이 드러나자 눈물을 흘렸다. 지난 세월만큼의 연륜도 흘러나오는 ‘한(恨)’을 막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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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시골 마을의 한적한 땅 속에는 그의 옛 동료들이 한데 묻혀 있었다. 할아버지가 이 끔찍한 현장을 다시 찾은 이유는 직접 묻어준 동료를 찾기 위해서였다. 민족문제연구소의 기록과 영상에 따르면 연구소가 생존 피해자들에게 동행을 요청했을 때 대부분 “다시는 그곳에 가기 싫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지 할아버지에게는 데려와야 할 동료들이 있었다. 그는 가해자의 땅에 묻고 온 동료들을 평생 잊지 못했다.

일본은 1942∼1944년 식민지 조선 청년들을 끌고 와 홋카이도에 비행장을 건설했다. 처참한 노역과 굶주림, 전염병으로 89명의 조선인이 이곳에서 사망했다. 지 할아버지도 전염병에 걸려 생사를 오가던 중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떴을 때 죽은 사람들과 함께 시체보관소에 버려져 있었다. 시쳇더미를 헤쳐나오며 이미 주검이 된 2명의 동료를 데리고 나왔다. 철길 옆 어딘가에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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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여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흙 위에는 풀이 돋아나고 마을은 변해갔다. 지 할아버지의 기억 속 무덤은 남아 있지 않았다. 당시 비행장을 건설한 전범기업 ‘단노구미’만이 여전히 해당지역에서 사업을 영위하고 있을 뿐이었다. 단노구미 사장은 발굴 주최 단체인 ‘동아시아워크숍’의 사죄 요구에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라며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홋카이도를 비롯한 일본 곳곳에는 조선인 유골이 묻혀 있거나 사찰에 모셔져 있지만, 대다수 일본인은 과거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의 땅에는 여전히 처참한 역사가 묻혀 있다.

지 할아버지는 10대 시절 자신이 노역을 보탰던 단노구미의 목재 철길을 지팡이로 두드리며 물었다. “이게 그때 그건가.” 할아버지의 기억이 흐릿해질 만큼 시간이 지났고 그런 지 할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났다. 발굴 현장에 참여했던 민족문제연구소 김영환 대외협력실장은 발굴 당시의 이야기를 담은 책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에 이렇게 적었다. “무덤도 없이 버려져 떠돌고 있는 넋들이 당신에게 묻습니다. 나는 지금 해방되었습니까.”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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