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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환경부 ‘부동의’로 끝내 백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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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 “환경 악영향 … 재논의 없다” / 백두대간·유네스코 보전지역 가치 / 양양군 계획으론 보호 불충분 판단 / 상부 정류장 상위 1% 산양 서식지 / 발전기 소음 등 생태 파괴 우려 / 경관 복원·시설안전 대책도 못내

세계일보

5년을 끌어온 설악산 국립공원 오색 케이블카 사업이 백지화됐다. 환경부는 이 사업이 멸종위기종 보호, 소음저감, 경관훼손 최소화, 시설 안전 등 7가지 우려 사항 가운데 어떤 것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고 최종 판단했다. 사업을 추진해온 양양군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16일 환경부 원주지방환경청은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설치사업 환경영향평가 보완서’에 대해 사업시행 시 부정적인 영향이 우려되고, 환경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아 ‘부동의’한다고 밝혔다. 이 보완서는 양양군이 2016년 환경영향평가서를 낸 뒤 원주지방환경청으로부터 ‘보완하라’는 통보를 받고, 2년6개월에 걸쳐 수정해 지난 5월16일 다시 제출한 것이다. 원주지방환경청은 이해관계자와 전문가가 참여하는 ‘환경영향갈등 조정협의회’(갈등협의회)를 운영해 논란이 되는 쟁점을 들여다봤다.

이에 지난달 16일 갈등협의회가 사실상 ‘부적정하다’고 의견을 모아 좌초되는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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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래 환경부 장관(왼쪽 사진)과 김진하 강원도 양양군수가 16일 각각 서울 세종로 정부세종청사와 양양군청 대회의실에서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환경영향평가 관련 결과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세종·양양=뉴시스·뉴스1


조명래 환경부장관은 이날 브리핑을 열고 “국립공원 조성과 삭도(케이블카) 설치, 백두대간 등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심대히 위반하는 사안이 드러났다”며 “이번 협의는 추가 논의를 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진행됐기 때문에 마지막 협의라고 보면 된다”며 사실상 사업이 백지화됐음을 분명히 했다.

환경부는 갈등의 장기화를 방지하고, 지역발전에 도움이 되는 대안을 적극 발굴·논의할 계획이다.

강원도와 양양군은 부동의 결정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하는 한편, 앞으로 행정심판이나 소송 등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강구해 강력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환경부 “지역발전 대안 논의 추진”

설악산 국립공원에 있는 탐방로를 이어 붙이면 110㎞가 넘는다. 강변북로를 두 번 왕복할 수 있는 거리다.

‘이미 탐방로가 거미줄처럼 깔린 국립공원에 케이블카를 놓는 것이 타당한가.’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를 둘러싼 논란은 이런 물음에서 출발한다.

강원도와 양양군은 지역 발전을 꿈꾸며 케이블카를 추진했지만, 반대 진영에서는 설악산 케이블카가 놓이는 순간 다른 국립공원에도 우후죽순 들어설 것을 우려했다. 16일 환경부의 결정은 ‘국립공원에 무분별한 케이블카 설치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함과 동시에 지역경제를 위한 친환경적인 대안을 찾아보자는 의미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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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이자 천연기념물 217호인 산양.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 강원행동 제공


◆“산양·아고산 수목 지키기 어려워”

설악산은 환경부가 지정한 국립공원일 뿐 아니라, 환경부·산림청의 백두대간 보호지역, 문화재청 천연보호구역, 산림청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도 지정돼 있다. 그만큼 보전가치가 크다는 의미다.

양양군의 사업계획으로는 이와 같은 생태환경적 가치를 제대로 지키기 어렵다는 게 환경부의 판단이다.

케이블카 상부 정류장 일대는 설악산에서도 상위 1%에 해당하는 산양 서식지다. 케이블카가 운영되면 탑승객과 발전기 소음으로 산양이 머물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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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군은 ‘미네랄블록’(산양 영양식)을 뿌려 산양을 다시 불러들이겠다는 대책을 내놨지만, 미네랄블록은 동물의 야생성 유지나 전염병 확산 예방에 도움이 되지 않아 국립공원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또, 야생동물은 10㏈(데시벨) 이하의 소음에도 번식과 행동에 영향을 받지만 환경영향평가 보완서에는 가축피해 소음기준인 60㏈을 적용해 소음 저감 대책을 수립했다.

양양군은 상부정류장 건설로 잘려나가는 1267그루의 수목에 대한 보호대책도 내놓지 못했다. 이 일대 식물은 저지대 식물과는 전혀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지만, 일반적인 수목 이식에 쓰이는 방법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 밖에 경관 복원, 기존 탐방로 회피, 시설 안전 등 쟁점이 되는 사안에 대해서도 뾰족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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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반 논쟁 매듭지어질까

설악산 케이블카를 둘러싼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짧게는 2012년, 길게는 1982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82년 당시 건설부와 강원도는 케이블카 건설을 위해 설악산 천연보호구역의 현상변경 허가를 신청했지만 문화재위는 두 번이나 돌려보냈다. 2012년과 2013년에도 강원도와 양양군이 시범사업안을 환경부에 제출했지만 역시 부결됐다.

이날 환경부가 부동의한 환경영향평가 보완서는 2014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힘을 실어줬다. 이듬해 8월 국립공원위원회가 사업을 조건부 승인하며 본궤도에 올랐지만, 또다시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가 제동을 걸었다. 양양군은 행정심판에 나섰고, 국민권익위원회 소속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2017년 6월 양양군의 손을 들어줬다. 이렇게 문화재청의 문턱을 넘었지만 결국 환경영향평가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이로써 환경부는 ‘수십년간 지속돼온 찬반 논쟁을 매듭지었다’고 밝혔지만, 양양군은 행정소송 등 법적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밝혀 갈등의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양양군은 그동안 케이블카가 설치되면 984억∼1520억원의 막대한 경제적 파급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환경부가 이날 서둘러 ‘지역 발전을 위한 논의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조명래 환경부 장관은 “환경부가 1년에 수천건의 환경영향평가 협의를 하기 때문에 부동의할 때마다 대안사업을 강구해주지는 않는다”면서도 “이 사업은 워낙 오래 갈등을 빚어왔고, 지역에서 초미의 관심을 갖고 있는 데다 강원 지역이 발전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대안사업이 필요하다면 적극 검토해서 사업으로 추진하고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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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케이블카 조감도. 양양군 제공


◆강원도·양양군 “소송 등 법적대응 불사” 강력 반발

설악산 국립공원 오색 케이블카 사업에 대한 환경부의 ‘부동의’ 결정에 사업을 추진한 강원도와 양양군은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강원도 관계자는 16일 “오색 케이블카 사업은 강원관광뿐만 아니라 한국관광에 구심점이 될 사업이어서 한국 산악관광과 해양관광이 연계되는 시너지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됐는데 무산돼 아쉽다”며 “도민 숙원을 좌절시키는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고, 소송 등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정준화 친환경 설악산오색케이블카 추진위원장도 “지난 정권에서 조건부 승인해 군민 모두 하나 돼 열심히 준비했는데, 이번 정권 들어서 갑자기 반대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이번 결정으로 군민 모두가 공황상태에 빠졌다”고 말했다. 그는 “부동의 결정을 내린 것은 양양 주민을 무시하는 처사”라며 “양양 지역에 있는 오색 등산로 입구인 남설악 진입로를 폐쇄하고 주민 자발적으로 한 산불 진화, 산악구조 활동, 쓰레기 수거 등 설악산과 관련된 모든 활동을 당분간 중단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양양군은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사업이 전 정권의 ‘적폐 사업 몰이’의 연장선상에서 좌초된 것으로 보고 있다.

양양군은 이날 군민 입장문을 통해 “왜곡된 잣대로 검토하고 평가한 검토기관의 신뢰성을 탄핵한다”며 “법원과 중앙행정심판위원회의 판단을 능멸하고 법치주의를 무시하는 환경부는 즉각 환경영향평가 결정을 철회하라”고 주장했다. 또 “공정해야 할 환경영향갈등조정협의회를 불공정한 인사로 규정하고 편파적으로 운영한 것은 부동의를 전제로 한 회의 운영이므로 무효”라며 “이번 결과를 초래한 김은경 전 장관,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 원주지방환경청장 등 관련자를 형사고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반대로 케이블카 설치 백지화를 요구해온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은 환영 논평을 냈다. 이들은 “이 사업이 국립공원위원회 부대조건을 충족할 수 없고, 환경영향평가서의 심각한 부실과 자연경관 훼손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확인했다”며 “매우 합리적이고 의미 있는 결정”이라고 밝혔다.

윤지로 기자·박연직 선임기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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