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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부디 정예병으로 키워주세요" 초대 주미공사가 미교관에게 보낸 편지 131년만에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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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박정양 친필편지의 본문, 한문과 영문으로 병기됐다. ‘지난번 우리나라에서 온 서신을 통해 귀 대인께서 우리나라 서울에 잘 도착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안도가 되었습니다. 연무공원은 이미 개설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군대의 위용이 이제부터 더욱 빛날 것입니다. 오직 바라건대 귀 대인께서 뜻과 마음을 다해 가르치셔서 정예병으로 키워주십시오. 이 모든 일을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하며 이만 줄입니다’는 내용이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리니(利尼·Lee)대인 귀하…귀 대인께서 서울에 잘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연무공원은 이미 개설되었습니다…군대의 위용이 더욱 빛날 것이니…귀 대인께서 뜻과 마음을 다해 가르치셔서 정예병으로 키워주십시요….”

1888년(고종 25년) 초대 미국공사로 부임한 박정양(1841~1905)이 워싱턴 D.C.에서 공사자격으로 작성한 친필편지가 131년만에 미국에서 발굴돼 국내로 돌아왔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지난 7월 미국 LA에 있는 한인역사박물관이 소장중인 역사자료를 조사하던 중 초대주미공사 박정양의 친필편지를 발견했다”며 “소장자(민병용 한인역사박물관장)가 기꺼이 기증의 뜻을 밝혀 무사히 환수됐다”고 11일 밝혔다.

이 편지는 1888년 6월12일 초대주미공사 박정양이 조선에 파견된 미국인 육군교사(교관) 존 G 리에게 보낸 공식외교서한이다. 약 5개월전인 1월 조선 파견을 앞둔 존 G 리 교관 등은 워싱턴 D.C의 주미공사관을 방문해 박정양 공사와 파견인사를 나눈바 있다. 박정양의 주미공사 시절을 기록한 <미행일기> 1888년 1월27일자는 박정양 공사가 워싱턴 D.C. 주미공사관 집무실에서 “미국육군교사(군사교관)인 다이(多爾·윌리엄 매캔티어 다이·60)와 검민시(커민즈·儉敏時·에드먼드 H 커민즈·60), 리니(利尼·존 G 리·30) 등이 방문해서 파견인사를 나눴다”고 기록했다. <미행일기>는 “이들 세 사람의 교관은 민회원(미국 의회) 인준까지 받아 대한제국에 파견되는 것”이며 “이들은 10여일 뒤에 우리나라(대한제국)로 떠나 우리나라 병정을 교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한제국에 교관을 파견하기에 앞서 미국 의회 인준까지 받았음을 알려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아무튼 박정양 공사는 대한제국에 파견되는 세사람의 교관에게 “잘 교습시켜달라”고 신신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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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양 친필편지 봉투 앞면. 수신 및 발신자를 각각 표기했다. ①공사관 전용지의 헤드 타이틀과 ②수신인 ③발신인이 적혀있다.|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이번 기증환수된 자료는 박정양 공사가 서울에 부임한 존 G 리 교관 등에게 재차 편지를 전해 미국 측 협조에 감사의 뜻을 전달하면서 “부디 조선의 병사들을 정예병으로 키워달라”고 당부하는 편지(6월12일)이다.

세 사람의 파견사실은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일기> 1888년 2월29일자 등과 <구한국외교문서> 제10권, 그리고 <고종실록> 1890년(고종 27년) 윤2월 26일자에도 나와있다.

즉 “미국에서 초빙해온 육군소장 다이와 육군대좌 커민즈. 육군소좌 리가 부임했다”(<통리교선통상사무아문일기>)와 “연무공원과 통위영, 장위영의 군사조련에 성과가 있었으니 교사들이 공로가 가상하다. 다이에게 병조참판(2품)의 직을 내렸다”(<고종실록>)는 등의 기사가 그것이다.

이들이 교관을 맡은 ‘연무공원’은 육영공원과 함께 고종의 야심찬 서구식 교육제도 도입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 최초의 근대적 국립학교인 ‘육영공원’이 공립외국어 전문교육이라면 ‘연무공원’은 장래 지휘관의 실전대비훈련을 위해 설립한 조선식 사관학교였다. 다이와 커민즈, 리 등은 조선정부가 장교를 양성하고 군대를 근대식으로 훈련시키기 위해 미국정부에 파견을 공식 요청한 군사교관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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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봉투 뒷면. 영문으로 수신인과 도착지가 표기되어 있다.|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고종실록> 1887년(고종 24년) 12월25일자를 보면 연무공원의 설치 의미를 잘 알 수 있다.

“무비(武備)는 나라의 중요한 일이니 또한 형식적으로 하거나 느긋하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장교의 명단에 들어간 사람들은 반드시 먼저 무술을 익숙히 단련하여야만 대오를 정리하고 군사의 위용을 엄하게 할 수 있다. 지난번에 추천한 사람들이 이제 날마다 훈련하게 되었으니, 연습장소를 연무공원(鍊武公院)이라 부르고….”

1888년 2월 문을 연 연무공원의 미국인 교관들은 부임초 훈련 방법과 내용에 모든 정열을 기울였고, 학생들도 열성을 가지고 훈련을 받았다. 이진호·이범래·남만리·이병무 등 연무공원 출신 학생들은 구한말 한국 군대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이번에 발견 기증된 편지와 연무공원 등을 살펴보면 꼭 들어맞는 것은 아니지만 얼핏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서 주 조선 미국공사관 영사대리로 파견된 유진초이(미해병대 대위·이병헌 분)가 고종의 명을 받아들여 무관학교 교관으로서 조선인들을 가르치는 장면이 연상된다.

이번 자료는 재미동포 고(故) 맹성렬씨(2014년 작고)가 2005년 온라인 경매에서 수집했고, 올 5월 맹씨의 유족이 다른 유물과 함께 미국 LA 한인역사박물관에 기증했다. 지난 7월 국외소재문화재재단과 관련전문가인 한철호 교수(역사교육과) 등이 한인역사박물관 소장자료들을 조사하다가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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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미초대 전권공사 박정양. 청나라의 간섭을 무릅쓰고 클리블랜드 미국대통령에게 신임장을 제정했다. 청나라의 압력으로 11개월만에 공사직에서 물러났다.|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이때 민병용 관장은 “한국정부가 워싱턴 D.C.에 초대주미공사관 건물을 구입·복원해서 개관한 사실을 안다”면서 “초대 주미공사인 박정양 관련 편지는 한인역사박물관보다는 한국정부 소장품이 되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재기증을 결정했다. 박정양 친필편지를 확인한 한철호 교수는 “이 편지는 당시 외교활동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현존 유일본”이라며 “초대 주미공사가 워싱턴 현지에서 활발한 서신왕래를 통해 대미 외교 노력을 기울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이 편지는 지금 국립고궁박물관에 기탁 보관 중이다.

지건길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은 “재단은 워싱턴 D.C.의 주미대한제국공사관에 박정양 친필편지의 정밀사본을 보내 전시할 예정”이라며 “이를 통해 한·미관계와 당시 박정양 초대공사의 현지 외교 노력을 널리 알리는 역사자료로 활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기환 선임기자 lk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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