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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글로벌 복합불황 ④] `노딜 브렉시트` 공포에 떠는 유럽…"경기침체 가능성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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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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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 현상이 뚜렷해지면서 복합불황에 대한 염려가 커지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공급망이 위축되는 충격과 함께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등 유럽 중추 국가들이 정치의 난맥상을 보이며 불황을 막기 위한 경제 정책을 펴는 데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이라는 외부 요인과 더불어 역내 정치 불확실성이라는 악재가 겹쳐 유럽 경제는 '내우외환'에 시달리는 신세가 됐다. 특히 정치 불안정으로 미래가 불확실해지면서 기업들은 투자를 기피하고 개인은 소비를 줄이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수차례 금리를 낮추고 돈을 풀었지만 성장률이 떨어지고 경제는 살아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ECB는 12일 통화정책회의에서 올해와 내년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경제성장률 전망을 현행 1.2%, 1.4%에서 1.1%, 1.2%로 각각 하향 조정했다. 물가는 2021년까지 하락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돼 디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유로화 가치도 올해 들어 3.5% 빠졌다.

유럽 경제가 둔화를 넘어 침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진단도 나왔다. 모하메드 엘 에리언 알리안츠 수석경제자문은 영국 언론 파이낸셜뉴스에 "유럽이 성장 모멘텀을 빠르게 상실하고 있다"며 "침체에 빠질 확률이 70%에 이른다"고 말했다.

유럽을 강타하는 가장 큰 불확실성은 영국이 아무런 합의 없이 유럽연합(EU)을 이탈하는 '노딜 브렉시트' 공포다. 2016년 브렉시트가 영국 국민투표에서 결정된 이후 3년이 넘도록 단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브렉시트 합의 실패로 21세기 '철의 여인'을 꿈꾸던 테리사 메이 총리가 결국 물러났고 뒤를 이어 총리직에 오른 보리스 존슨도 '죽기 살기로(do or die)' 브렉시트 강행을 외쳤지만 의회에서 완패를 당하며 정치적 입지가 좁아졌다.

존슨 총리는 17일(현지시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통화하며 브렉시트 합의에 대한 의지를 다시 한번 밝혔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이날 미국 뉴욕에서 개막한 유엔 총회에서 양 정상은 추가 논의를 이어갈 전망이다. 존슨 총리는 유엔 총회에서 메르켈 총리 외에도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 주요 EU 지도자와 별도로 만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영국과 EU가 서로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헐크'처럼 강력히 브렉시트를 완수하겠다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는 존슨 총리지만 내각에서는 노딜 브렉시트가 발생하면 재앙 수준의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 영국 내각은 노딜 브렉시트 대비 계획을 담은 기밀 문서를 이달 11일 의회에 제출했다. 영국 정부는 노딜 브렉시트가 현실화하면 대형 화물트럭이 영불해협을 건너 영국 켄트에 도달하는 시간이 1.5∼2.5일 지연될 수 있고, 이에 따라 브렉시트 후 물동량이 현재의 40% 수준으로 감소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또 신선식품과 필수의약품 등의 공급 부족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브렉시트 난맥상은 영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유럽 최대 통상단체 연합체인 비즈니스유럽도 "노딜 브렉시트는 재앙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 성명을 15일 발표했다. 자동차, 식음료, 의약품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무질서한 브렉시트로 인한 공급망 붕괴의 심각성을 우려하고 있다. EU집행위원회도 최근 노딜 브렉시트에 따른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7억8000만유로(약 1조원) 규모 기금을 마련했다.

브렉시트 공포에 따른 혼란은 외식업에서도 나타났다. 한 해 동안 영국 레스토랑 1400여 곳이 파산했다. 영국 회계법인 'UHY 해커 영'에 따르면 작년 6월부터 올해 6월 말까지 파산 상태에 빠진 레스토랑은 1412곳으로 지난해 대비 25% 증가했다. 이는 2014년 이후 가장 많은 파산이며 파운드화 가치 붕괴로 인한 비용 상승과 브렉시트 우려에 따른 소비 지출이 감소한 탓이라고 분석했다고 가디언이 전했다.

유럽 정치 불안은 영국에만 그치지 않는다. 스페인에서는 4월에 이어 해가 넘기도 전에 11월 다시 총선을 치르게 됐다. 4년 사이에 무려 네 번째 총선이다. 과도내각을 이끌고 있는 페드로 산체스 총리가 17일 "11월 새 선거를 치를 것"이라고 말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영국 소재 컨설팅 업체 테네오의 안토니오 바로소 분석가는 CNBC에 "새로운 선거는 또 다른 분열을 가져올 것"이라며 "올해 말 이전엔 정부가 수립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연정의 한 축인 민주당이 분당 위기에 놓였다. 2014∼2016년 이탈리아 총리를 지낸 마테오 렌치 상원의원이 탈당과 신당 창당을 공식화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초 극우 정당 동맹의 마테오 살비니 대표가 오성운동과의 연정 붕괴를 선언하며 초래된 정국 위기가 새로운 연정 출범으로 가까스로 수습되자마자 또다시 안갯속에 들어간 셈이다.

[김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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