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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한쪽 눈 안보이는 김두민 “피아노만 있다면 굶어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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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예술의전당서 첫 독주회

아이큐 158, 초등 4년 때 본격 시작

3년 뒤 프랑스 명문 음대 진학

선천성 백내장 앓아 시각 장애

두 눈 감고 동선 외우는 법 터득

중앙일보

2007년 백건우의 베토벤 소나타 연주를 듣고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다는 김두민. 언젠가 베토벤을 모두 연주하는 꿈이 있 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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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후 서울 광화문. 16세 피아니스트 김두민은 성실한 고등학생 같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짧은 머리에 반바지, 운동화, 안경. 몸동작은 타고난 듯 쾌활했다. “제가 지난주에 비행기를 26시간 타고 한국에 왔거든요. 진짜 힘들었어요.” 고생스러웠지만 웃는 얼굴의 소년은 긴 시간동안 뭘 했냐고 묻자 대뜸 휴대전화를 꺼내든다. “제가 보여드릴게요. 여기 앞으로 몇 년 동안 뭘 하고 그 다음엔 뭘해야 하는지 다 적어봤어요.” 거기엔 앞으로 3년, 5년의 계획이 들어있다. 베토벤 협주곡 5곡은 3년 안에, 소나타 32곡은 5년 안에 모두 공부해 보겠다는 결심이다.

이 똘똘한 피아니스트의 소식을 처음 들은 건 3년 전이다. 2016년 13세에 프랑스의 에콜 노르말 음악학교에 입학했고 학사 학위를 받은 뒤 지금은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이듬해엔 세계적 음반사인 워너뮤직 본사에 발탁돼 전세계로 발매하는 데뷔 앨범을 냈다. 워너뮤직이 베토벤 250주년을 기념해 발매하는 음반에도 참여했다.

“본격적으로 피아노를 시작한 건 초등학교 4학년 때였어요.” 프랑스의 명문 학교에 입학하는 데 불과 3년이 걸렸다. 충청북도 청주의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피아노 학원을 찾았지만 부모는 전공을 반대했다. 김두민은 선천성 백내장으로 왼쪽 눈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때 제가 어려서 직접 말씀하시진 않았지만 아마 눈 때문에도 반대하셨던 것 같아요. 말씀은 남자가 피아노 치면 밥 먹고 살기 힘들다, 장가도 못 간다 그러셨죠.”

초등학교에 입학하며 측정한 아이큐는 158이었고, 수학 경시대회에서는 충청도 전체 1등상을 받았다. “어른들은 공부하라고 하셨지만 저는 굶어 죽어도 피아노만 있으면 좋겠고, 그러면 노숙을 해도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11세에 만난 선생님은 그가 연주하는 걸 듣고 “어머님, 두민이 피아노 치면 밥벌이 하겠어요”라고 설득해줬다고 한다.

패기 있게 시작했지만 쉽지 않았다. “서울 친구들은 참 대단해요. 네 살부터 피아노 시작하고 여덟 살인데 저보다 테크닉이 더 좋은 친구도 있더라고요. 저는 초등학교 4학년인데 모차르트 소나타 한 악장 겨우 쳤어요.” 김두민은 이 시기를 “마음은 정말 빨리 달리고 싶었는데 신발(기본기)이 없었던 때”라고 기억했다.

시각 장애도 발전을 느리게 했다. 그가 피아노 건반 앞에 앉아 한가운데 도를 누른다. “이렇게 누르면 오른쪽으로는 건반이 끝까지 보이는데 왼쪽으론 한 대여섯개 밖에 안 보여요. 실질적으로 컨트롤할 수 있는 시야는 한 옥타브(흰 건반 8개)에요.”

시야가 좁으니 소화할 수 없는 손놀림이 있다. 특히 넓은 영역을 왼손으로 정확하게 건너뛰는 기술이 그에게는 어렵다. “쇼팽이었나, 제가 잘 안 되는 패턴이 나와서 몇달동안 말썽을 부린 적이 있어요. 그럴 때는 할 수 없어요. 될 때까지 우직하게 반복 연습하는 거죠.” 나중에는 두 눈을 아예 감고 감각으로 동선을 외워버리는 방법을 터득했다. 건반을 천으로 덮고 치며 간격을 예민하게 익혀보기도 했다. “요새는 이렇게는 안 해요. 어렸을 때 뭐라도 해봐야 돼서 한 거죠.”

남들보다 어렵게 실력을 키워온 김두민에게는 스스로 고안한 연습 방법이 많다. 악보를 외울 때는 한 소절을 잘게 떼어서 외우고 다음 조각으로 넘어간다. 건반 뚜껑을 덮고 악보만 보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연주하는 상상만 하는 것도 반드시 거치는 연습 단계다. 머릿속에서 근육을 움직여보는 것이다. “문제가 안 풀리면 이것저것 해보는 거죠. 테크닉에 매달리는 성격은 아니에요. 이런 연습도 결국엔 음악적인 완성을 위해서 하는 거고요.”

행보 또한 영리하다. 데뷔 앨범은 전부 멘델스존의 작품만 골랐다. “베토벤을 하고 싶긴 한데 경험이 부족하니 공부는 할 수 있을지언정 앨범을 남기기엔 많이 이르다고 생각했어요. 어릴 때부터 작곡을 시작한 멘델스존이 저에게 맞을 것 같았죠. 아무래도 지금 제가 순수할 때인 것 같기도 하고요.(웃음)” 이른 나이에 극적으로 발탁됐지만 욕심을 내는 대신 잘 할 수 있는 것부터 연주하겠다는 뜻이다. “청주에서 체르니 조금 치다가 서울에서 쇼팽 치고 지금은 파리에서 음반까지 냈으니 많이 점프했죠. 그래도 한때는 하이든의 초기 소나타 10곡만 1년동안 세세하게 공부했어요. 기본을 다지려고요.”

지난달 나온 멘델스존 앨범에서 그의 피아노 소리는 밝고 선명했다. 음악의 흐름은 솔직했다. 몇 군데의 덜컹거림은 개의치 않은 채 음악은 당차게 달려나갔다. “실수한 부분들을 편집 과정에서 고칠 수도 있었지만 그냥 두는 편이 음악의 호흡 면에서 더 좋았다”고 했다.

그의 시야는 그의 음악만큼 환하다. “눈 때문에 불편함은 없었느냐”는 질문에 “보이다 안 보였어야 불편할 텐데 아예 안 보였기 때문에 모르겠다”고 했다. “시각 장애를 가진 피아니스트로 자꾸 거론되는 것이 싫지 않나”고 묻자 깔깔대며 이런 답을 내놓는다. “뭐, 양심에 좀 찔리긴 해요. 전 그렇게까지 불편하진 않거든요!” 김두민은 20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데뷔 독주회를 연다. 멘델스존과 베토벤의 초기 소나타들을 연주할 예정이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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