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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행 좇아 기계처럼 찍어내다간 다 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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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 100년의 그늘] [하]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한국 영화 점유율 수년째 하락… 드라마로 플랫폼 옮기는 감독들

압도적 영상미와 사운드·CG 등 극장에서만 구현될 독창성 부족

넷플릭스 등 OTT 직격탄에 맞설 다이내믹한 콘텐츠를 개발하라

한국 관객은 전 세계 어디보다 영화에 열성적으로 반응한다. 마블 영화를 북미·중국 다음으로 가장 많이 봐서 '마블 민국'이라 불리고, 올 상반기엔 월트디즈니컴퍼니가 만든 영화를 열광적으로 봐서 '디즈니 천하'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 정작 올해 100년을 맞은 한국 영화는 이런 관객들을 극장으로 불러내지 못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국민 1인당 영화 관람 횟수는 연평균 4.2회. 아이슬란드에 이어 세계 2위다. 마음에 드는 영화는 'N차 관람'을 주저하지 않고, 스포일러를 당할까 봐 개봉일 즈음엔 소셜미디어도 끊는 관객들인데, 한국 영화의 관객 점유율만 계속 떨어지는 중이다. 전문가들은 "극장에 오고 싶게 만드는 콘텐츠가 없는 탓"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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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 영화 '신과 함께' 시리즈는 한국형 판타지 세계관을 표현하기 위해 영화 88%에 해당하는 장면에 특수 효과를 사용했고, 다양한 환경 효과를 적용한 4DX 버전을 선보여 극장에서 영화 보는 재미를 높였다.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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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에서만 얻는 경험 주지 못하면…"

"올해 디즈니 영화 보면서 배 아팠죠. 4DX, 스크린X, 3D아이맥스, MX상영관까지 다 돌면서 영화를 몇 번씩 보는 관객들을 보면서요." 리얼라이즈 픽쳐스의 원동연 대표는 특별 상영관의 힘을 다시금 체험했다고 했다. 그가 제작한 1000만 영화 '신과 함께'도 특별 상영관 덕을 본 경우다. "국내는 물론 동남아 전역에서 똑같은 영화를 효과나 버전이 다른 상영관을 돌면서 관객들이 여러 번 보는 걸 목격했으니까요. 극장에서만 얻는 경험을 주지 못하면 관객은 오지 않을 겁니다."

넷플릭스의 전 세계 가입자 수가 1억5100만명을 넘어선 지금 한국 영화도 이런 새로운 환경에서 날아오는 직격탄을 그대로 맞기 시작했다. 최근 본지가 롯데시네마와 2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21%가 "한국 영화를 (극장이 아닌) VOD나 OTT로 본다"고 대답했다. 외국 영화를 VOD나 OTT로 본다고 대답한 건 14%로 한국 영화보다 상대적으로 적었다. '한국 영화를 선호하지 않는 이유'는 '새롭거나 신선하지 않아서(37%)' '다양한 선택지가 없어서(30%)' 등이 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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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다운 영화'가 강조되는 역설도 이래서 나온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지나치게 상업적인 영화만 골라 틀수록 상영관 영화는 망하게 된다"고 했다. 작품성이 뛰어난 영화, 영상이나 사운드가 압도적이어서 극장에서만 구현되는 영화여야만 관객이 극장을 찾는다는 얘기다. CGV 김대희 부장은 "이미 극장은 변신하고 있다. 영화 보는 맛을 살리기 위해 IMAX관, 바람·안개·번개 효과 구현이 가능한 특수 환경 장비와 모션 체어를 결합한 4DX 상영관 등을 빠르게 확대하는 추세다. 여기에 걸맞은 콘텐츠가 나와줘야 할 때"라고 했다.

기계처럼 찍어내면 다 죽는다

유능한 창작자들도 이미 OTT에 걸리는 드라마로 속속 건너가고 있다. 영화 '터널'의 김성훈 감독은 넷플릭스의 '킹덤'을 만들고 있고, 영화 '극한직업'의 이병헌 감독은 드라마 '멜로가 체질'을, 영화 '사라진 밤'의 이창희 감독은 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를 찍었다. 손익분기점에 맞추기 위해 대중적 코드에 영화를 끼워 맞춰야 했던 극장 영화의 한계와 답답증에 지친 감독일수록 한결 자유로운 드라마 플랫폼으로 갈아타는 추세다. 정지욱씨는 "영화판이 독특한 장르나 작품 세계를 보여주는 감독들을 발굴하고 지원하지 않으면 이런 변화는 가속화될 것"이라고 했다. OTT 업계에서도 이 같은 현상을 주시하고 있다. 왓챠의 허승 PR매니저는 "OTT는 극장의 대체재가 아니다. 사람들을 극장으로 불러들일 다양하고 매력적인 콘텐츠가 생산되지 못한다면 OTT를 포함해 영화 생태계 전반이 위기에 놓일 수 있다"고 했다.

요즘 미국에서 가장 트렌디한 영화사로 불리는 A24의 성공은 의미심장하게 읽힌다. '더 랍스터' '문라이트' '레이디버드' '유전' 등을 만든 이 회사는 모든 영화 제작 과정을 창작자의 '자율'에 맡긴다. 팔리는 상품이 되든 안 되든 간섭하지 않고 실험을 허락한다. '유전'의 아리 애스터 감독은 "A24는 희한하다. 스타일이 없는 게 스타일이다. 내가 '이상한 영화'를 만드는 걸 다 허락한다. 그래서 이곳과 일한다"고 했다. 기계처럼 찍어내지 않는 영화만이 디지털 시대의 파고(波高)를 넘을 수 있다는 얘기다.





[송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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