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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화성연쇄살인사건 범인 자백

화성 용의자 30년 전 왜 수사망에 안 걸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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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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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된 56살 A씨가 화성사건 발생 장소 일대에서 오랜 기간 거주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그가 어떻게 촘촘했던 수사망을 피할 수 있었는지에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1∼10차 사건이 벌어지는 5년 가까운 기간 내내 범행 장소 주변에 살았던 데다 당시 목격자 진술 등을 통해 용의자가 20대 남성으로 특정된 상황에서, 당시 20대였던 A 씨가 진작 수사망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은 현시점에선 매우 아쉬운 대목입니다.

경찰 등에 따르면 A 씨의 본적은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현재 화성시 진안동)입니다.

A 씨는 이곳에서 태어나 1993년 4월 충북 청주로 이사하기 전까지 몇 차례 주소지를 바꿨을 뿐 화성 일대에서 계속 살았습니다.

화성사건이 1986∼1991년 발생한 점을 고려하면 23세부터 28세까지 범행을 저지른 뒤 30세에 청주로 이사했다는 추론이 가능합니다.

A 씨는 청주로 이사한 지 9개월 만인 1994년 1월 청주 자택에서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뒤에야 붙잡혔습니다.

현재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부산교도소에 수감 중입니다.

그렇다면, 당시 사건의 심각성과 국민적 관심 때문에 화성 일대의 잠재 용의자들을 이 잡듯 뒤졌을 경찰은 왜 A씨를 잡지 못했을까요? 당시 경찰은 총 205만여 명의 경찰 병력을 투입해 화성 일대를 샅샅이 뒤졌고, 신속 해결을 주문하는 노태우 당시 대통령의 지시까지 떨어진 상황에 혹시나 이어질 추가 범행을 막기 위해 24시간 경계 근무 체제에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용의자에겐 당시 최고액인 5천만 원의 현상금이 걸렸고, 1992년 기준 누적 수사비만 해도 5억 원을 넘었습니다.

2만 1천여 명을 조사하고 4만 명의 지문을 대조했음에도 실마리가 풀리지 않자 화성경찰서 서장이 2명이나 연달아 직위 해제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정황을 놓고 봤을 때, 경찰이 당시에 추정했던 범인의 혈액형이 A 씨 것과 달라서 용의 선상에서 빠졌을 가능성이 가장 설득력 있게 제기됩니다.

최근 DNA 판독 결과 A 씨의 혈액형은 O형이지만, 화성사건 당시 경찰은 4, 5, 9, 10차 사건 범인의 정액과 혈흔, 모발 등을 통해 범인의 혈액형을 B형으로 판단했습니다.

DNA 검사의 정확성을 고려했을 때 범인의 당시의 혈액형 판단이 틀렸을 거라는 게 중론이지만, 그때는 다른 증거가 많지 않았던 데다 빠른 검거를 위해 수사대상을 압축해야 했기 때문에 혈액형이 다르다는 이유로 A씨를 지나쳤을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경찰이 A 씨를 수사대상으로 삼을 기회를 관할권 문제로 놓쳤던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옵니다.

청주에서 발생한 처제 살인사건을 접한 당시 화성사건 수사본부는 "혹시 몰라 A 씨를 한번 조사할 테니 화성으로 A 씨를 데려와 달라"고 했지만, 청주 경찰은 "여기 수사가 우선이니 필요하면 직접 데려가라"고 했다는 겁니다.

그러나 이후 화성사건 수사본부는 A 씨에 대해 별다른 조사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경찰은 현재 A 씨가 당시 경찰의 수사 선상에 올라있었는지 여부에 대해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한상우 기자(cacao@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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