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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석이 말을 건네는 순간, 그 모든 것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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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유 퀴즈 온 더 블럭>... 우린 단 1초도 주인공이 아닌 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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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N 드라마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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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 솔직히 말하자면 난 이 프로그램의 본방송을 본 적이 없다. 심지어 본 방송 시간이 언제인지조차 몰랐다.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 보니 1년여 전 서울 광화문 출근길에서 촬영을 하고 있던 유재석과 조세호를 본 적도 있다. '아, 유재석이다. 아, 조세호도 있네.' 혼자만의 소회를 짧게 남긴 채 참으로 무미건조하게 그 옆을 지나갔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의 첫인상은 '재방송 엄청 많이 하네' 정도가 전부였다. 그저 채널을 돌리다 얻어걸린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나도 모르게 웃고 울게 만드는 프로그램이었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아래 <유퀴즈>)에서는 '큰 자기' 유재석과 '아기자기' 조세호가 전국 방방곡곡을 걸어 다니며 우연히 만난 일반 시민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시민이 퀴즈를 맞히면 무려 1백만 원의 상금을 그 자리에서 지급한다. 다양한 각도로 화면을 예쁘게 담아내는 카메라 앵글, 참신하고 귀여운 그래픽, 가끔씩 내 배꼽을 훔쳐 가는 센스 만점 자막까지 나무랄 데 없다. 더불어 말이 필요 없는 국민MC 유재석과 '구박데기' 귀여운 조세호의 찰떡궁합은 마치 40년 전통의 '불광' 장인처럼 프로그램에 반짝반짝 윤기가 돌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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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N 드라마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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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무엇보다 이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는 진짜 주인공은 평범한 시민들이다. 어느 초등학생은 1백만 원을 상금으로 준다고 해도 "그건 됐고, 5만 원만 달라"고 당당하게 말해 배꼽을 잡게 만든다. 퀴즈를 맞히지 못한 할머니는 공짜로 줘도 안 가질 법한 해괴망측한 물고기 쿠션을 선물로 뽑고는 "이런 건 선물이라고 부르지 마라"고 역정을 내기도 한다. 또 어느 사회 초년생은 회사 상사 때문에 괴롭다는 이야기 끝에 본인도 모르게 실명을 부르짖으며 "그렇게 살지 마"가 튀어나와 어쩔 줄 몰라 했다.

자식들을 너무 엄하게 키워 그게 후회된다며 "다음 생에도 나의 아들, 딸로 다시 태어나 달라"던 양장점 어머니는 가슴을 찡하게 만들었고, 퀴즈를 풀어 맞히면 1백만 원을 받을 수 있다고 했더니 "나는 중학교밖에 못 나와서 못한다"고 손사래를 치다가도 정작 문제를 맞히자 까만 손을 흔들며 기뻐하던 아버지도 있었다. 그곳에는 너와 나의 이야기,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인생이 있다.

<유퀴즈>에서 특히나 나의 마음을 찡하게 울리는 포인트는 우리 부모 세대들의 이야기다. 멋모르고 철없던 시절, 고백하자면 난 '억척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그들의 인생을 낮잡아보곤 했었다. '저렇게 억척스럽게 사니 인생이 고단하지. 난 저렇게 안 살 거야.' 가족을 위해 희생만이 강요된 삶, 먹고 살기 위해 우악스러워도 부끄러움도 모르는 인생, 어릴 적 지독히도 가난했던 시간들에 갇혀 있는 사고방식이 싫었다. 어릴 땐 그 모든 게 참으로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아주 조금 철이 든 지금,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들의 인생이 조금은 안쓰럽고, 가끔은 마음 아프고, 그리고 많이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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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N 드라마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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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어머니들이 담담히 들려주는 그들의 이야기에는 인생의 희로애락을 견디며 살아낸 그들만의 시간이 응축되어 있다. 가끔은 본인들이 꿈꾸던 인생대로 살지 못한 아쉬움이, 힘든 시절을 무던히 견뎌낸 당신들에 대한 대견함이, 인생의 고비마다 옆을 지켜주던 가족에 대한 고마움이 그 시간에는 묻어 있다. 고단하고 싶은 인생이 어디 있으며, 힘들게 굽이굽이 넘고 싶은 인생이 어디 있을까. 그분들은 그저 묵묵히 당신들의 방식대로 당신들의 인생을 걸어오신 거다. 옆에서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유재석과 조세호는 호들갑스럽지 않게, 충분히 마음이 전달될 수 있는 위로와 응원을 건넨다. 그걸 지켜보고 있노라면 나도 그분들의 삶이 충분히 박수받아 마땅한 인생이라고 조용히 위로를 건네고 싶어진다.

사실 하루하루 살다 보면 나 살기도 바빠, 타인의 인생에 귀와 마음을 내어줄 여력을 잃고 만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이 프로그램은 나의 심장에 콩콩 노크를 한다. 이름만 들으면 다 아는 대단한 셀러브리티는 아니어도, 떡 하니 내세울 만한 이력 한 줄 없는 인생이어도 세상에 하찮은 인생은 없다고 우리를 다독여주는 것만 같다. 어떤 일을 하든, 어떤 지위에 있든, 나이가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눈이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는 유재석과 조세호의 거리낌 없음이 그래서 더 감사하다.

아무리 호기롭게 세상을 호령하리라 열정을 불태우던 사람이라도 살다 보면 우리는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이 세상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었구나.' 그것을 깨닫는 좌절과 실망의 순간에조차 우리는 묵묵히 삶을 이어간다. 수천만 명의 조연 중 한 명으로 살아가다 길 위에서 만난 유재석이 말을 건네는 순간, 신기하게도 우리들은 우리 삶의 주연이었음을 다시금 깨닫는다. 내 인생의 주인공, 평범한 소시민들에게 말을 건네며 충실히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고, 우리의 삶을 공감하며 응원해준다. 이 세상의 주인공은 아닐지언정, 우리는 모두 단 1초도 내 인생의 주인공이 아니었던 순간이 없었다는 걸 잊지 말라는 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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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N 드라마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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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방송인 건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본방송을 사수하는 일은 아마 없을 거 같다. 소파에 3분의 2쯤 누운 채로 리모컨을 돌리다, 그게 본방송이든 재방송이든 얻어걸리는 순간이 오면 또 울다 웃다 혼자 청승을 떨고 있겠지. 다만 작은 바람이라면 나의 소소한 일상에 한 발쯤 걸친 채로, 우리들 인생도 충분히 아름답고 의미 있다고 말을 건네는 듯한 이 프로그램을 오래도록 볼 수 있으면 한다.

PS. 유느님, 방송 중에 지금의 유느님이 20대의 유재석에게 해주고 싶은 말로 "그만 누워 있고 이제 좀 일어나라"라고 하셨죠. 그 말을 듣고 꼭 해드리고 싶었던 말이 있어요. '움직임 총량의 법칙.' 물론 과학적 근거는 없습니다. 제가 지금 만든 말이거든요. 지금 이렇게 전국을 휘젓고 돌아다니며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건 20대의 유재석이 허리가 휘어져라 누워 지내며 평생 쓸 움직임의 총량을 아껴두었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 20대의 재석이는 잘못이 없어요. 유느님도 20대의 재석이를 많이 아끼고 사랑해 주세요.

변은섭 기자(bessp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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