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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동성 커플·싱글녀에 인공수정 허용”…들끓는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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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얼렸어”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말했다. 얼마 전 프랑스 파리로 출장을 와 함께 저녁을 먹던 자리에서다. 30대 싱글 여성인 그녀는 몇 달 전 병원에서 난자 동결 시술을 받았다고 했다. 비용은 7백만 원 정도. 이른바 전문직으로 맹렬히 경력을 쌓아온 친구는 '마음이 맞는 짝을 만나면 언제든 결혼할 준비가 돼 있다’는 '사랑꾼'이지만, 현실적으로 결혼이 늦어지고 있는 만큼 '훗날을 도모'하기 위해 결심했다고 말했다.

“내 난자는 나보다 훨씬 어리대. 의사 말로는 배란도 잘 돼서 출산력도 좋을 거라나? 언제 애를 낳을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걱정은 덜었어”

뉴스로만 접했던‘미혼여성의 난자 동결’소식은 놀랍게도 불과 며칠 뒤, 또 다른 친구로부터도 들려왔다. 굳이 결혼은 하지 않더라도 언젠가 아이는 꼭 낳고 싶다고 말해왔던 그다. '비혼을 택할지언정 임·출산에서 난임이나 불임은 피하고 싶은 마음에, 또 이왕 임신할 거면 생물학적으로 한살이라도 젊은 나이에 난자를 얼려두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단다. 여전히 결혼 제도 밖의 임신과 출산을 터부시하는 한국사회에서 난자 냉동 이슈만큼은 그 터부를 빠르게 벗어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당장 불임이나 난임 문제를 겪고 있지 않은 미혼 여성들까지도 난자 동결이 유행처럼 번지는 한국과, 인공 수정 확대 법안과 관련해 ‘동성 결혼 합법화’ 이후 젠더 이슈를 놓고 가장 뜨겁게 찬반 여론이 들끓고 있는 프랑스의 현 사회상이 절묘하게 겹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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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인공수정’ 홍보 포스터(좌)와 찬성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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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 "모두를 위한 인공수정"…동성 커플·미혼 여성에 허용〉

현재 프랑스 상원에서 논의되는 생명윤리법 개정안, 이른바 ‘모두를 위한 인공수정’ 법은 그야말로 인공수정을 통해 임신, 출산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공공의료보험 혜택을 준다는 내용이다. 의학적으로 인공수정과 체외수정은 다른 개념이지만, 프랑스에서는 이를 ‘의학적 도움을 받은 생식’(PMA, La Procréation médicalement assistée)으로 명명하며 자연적 임신의 반대 개념을 통칭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모두를 위한 인공수정’법은 결혼이나 법적 효력을 인정받은 동거 등 이성 커플에 한해 불임과 난임 치료 명목으로 적용됐던 기존 혜택을 동성 커플과 미혼 여성에게 확대하겠단 것이다. 인공수정과 체외수정의 검사와 시술에 드는 비용을 의료보험을 통해 환급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법안의 골자인데, 이는 마크롱 대통령의 2017년 대선 공약일 뿐 아니라 이미 그 전임인 올랑드 정부 때부터 개정을 추진해 온 바 있다.

〈동성 결혼 허용 '모두를 위한 결혼법' 후속탄…출산권 초점〉

2013년 당시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동성 커플의 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모두를 위한 결혼’ 법을 추진했고 프랑스 사회는 일대 격랑에 휘말렸다. 자유로운 연애관, 사생활에 대한 극도의 존중 문화 등으로 일견 개방적으로 보이는 프랑스 사회의 법과 제도는 상대적으로 보수적이다. 2001년 네덜란드를 시작으로 이미 2000년대 초반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유럽 이웃 국가들보다 10여 년 늦게 동참한 것도, 여타 다른 국가들보다 더욱 극심한 진통을 겪은 것도 이를 보여준다. 이번 ‘모두를 위한 인공수정’ 법안과 관련해 찬반 여론이 격돌한 것도 이 법안이 ‘모두를 위한 결혼’법의 후속편이기 때문이다. 동성 결혼 합법화에 나선 올랑드 정부는 동성 커플에게 출산권까지 부여하는 법안까지 추진했고, 특히 레즈비언 커플과 미혼 여성을 대상으로 한 인공수정 허용을 검토했지만 이미 동성결혼 허용 자체를 두고 격렬히 충돌한 찬반 여론과 사회적 갈등의 후유증을 넘어서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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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 커플에 인공 수정 허용 반대’ 집회(좌)와 “엄마, 나는 왜 아빠가 없는거야?” 문구가 적인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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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녀, 프랑스에선 '얼릴' 수 있나요?"…법안 개정 시 가능〉

6년 전 동성 간 결혼을 법제화한 프랑스 정부의 논리는 '권리'의 확대에 초점을 뒀다. 이미 제도적으로 결혼과 거의 동일한 효력을 갖는 동거 제도, 즉 팍스(PACS)에도 동성 커플 등록이 가능했던 만큼 결혼의 권리 또한 법제상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게이, 레즈비언을 비롯해 성적 소수자들과 진보 단체들은 '늦었지만 당연한 일'이라며 환영했고 가톨릭 종교계와 보수 단체들은 '전통적 가정의 가치를 붕괴시키는 법'이라며 반대했다.

이번에도 비슷한 양상이다. 프랑스 정부는 동성 커플에게 ‘결혼의 권리’가 허용된 만큼 이에 뒤따르는‘출산의 권리’도 법적으로 허용해야 한다는 논리다. 미혼 여성의 경우에도 시점상 지금 당장은 아닐지 몰라도 ‘언젠가 출산을 할 권리’를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프랑스 현행법상으로는 임신 출산에 문제가 있거나 의학적으로 필요한 경우, 예를 들어 암 환자 등에게만 엄격하게 허용하는 난자 냉동 시술을 레즈비언 커플과 미혼 여성에게 허용하고, 의료보험 혜택까지 주는 내용을 개정안에 포함시킨 것도 같은 맥락이다.

소수자를 대상으로‘결혼권 이후의 출산권’확대에 집중해 제도를 개선하는 프랑스와 결혼 제도에 대한 논의 확장 이전에‘가임력과 출산율’에 포커스를 둔 난자 냉동 시술이 유행하는 한국. 현상이 제도를 또는 제도가 현실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사회를 바꿀 동력이 될 수 있을지, 그러한 변화가 반드시 선순환으로 이어질지는 두 나라에서 모두 여전히 물음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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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민효 기자 (gongga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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