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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판 '청일전자 미쓰리'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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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인 TM에 청소기 부품을 납품하던 하청업체 <청일전자>는 만년 하청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체 브랜드 청소기를 개발, 생산하는 데 성공한다. 판로까지 확보해 중국행 화물 컨테이너에 청소기 완제품을 싣는 기쁨을 만끽한다. 그러나 거기까지. 청일전자 오만복 사장은 TM의 생활가전부 구매팀 황지상 차장의 로비 요구를 거절했다는 이유로 한순간에 발주물량 삭감 통보를 받는다. 그동안은 대기업의 모든 요구에 맞춰왔지만 독자 제품 생산 및 수출로 TM의 갑질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착각한 오만복 사장은 TM의 문형석 상무에게 삿대질을 하며 반발한다. 대기업은 을의 반발을 받아들일 관용이 없었다. 청일전자는 이미 중국행 선박을 타고 출항했어야 할 청소기가 전량 주문취소됐다는 통보를 받는다. TM전자가 손을 쓴 탓이었다. 청일전자는 부도위기에 처하고, 그 와중에 회사를 뛰쳐나갔던 사장은 실종된다.’

tvN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청일전자 미쓰리>는 대기업의 각종 횡포에 맞서 살아남으려는 중소기업의 애환을 보여준다.

<청일전자 미쓰리> 속 대기업과 중소기업, 중소기업과 소기업 간의 관계는 ‘드라마’지만 지독하게 현실적이다.

19년간 대기업의 1차 벤더로 플라스틱 부품을 납품해온 A업체의 ㄱ사장은 “너무 적나라해서 누가 내 이야기를 훔쳐보고 시나리오를 쓴 게 아닌가 싶었다”고 했다.

발주물량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중소기업을 다스리는 대기업의 갑질에서부터 각종 상납 요구, 대기업 출신 퇴직 간부들을 중소기업 간부 자리에 앉히도록 하는 강요, ‘협력회사 지원팀’의 주도면밀한 하청업체 감시까지 현재 중소기업이 처한 현실은 눈물겹다. 그런데 이 눈물겨운 현실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모두가 아는데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현실이 중소기업이 처한 현주소다.

때로는 현실이 드라마보다 더 잔인하다. 적어도 드라마 안에는 ‘정의’가 등장한다. 미꾸라지가 ‘꿈틀’하는 클라이맥스도 존재한다. 그런데 현실에는 클라이맥스가 없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맞서면 파산이다. 중소기업이 독자제품을 생산해 대기업과 경쟁한다는 것은 꿈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된 지 오래다. 우수한 강소기업은 대개 대기업의 친·인척이 운영하는 회사다. 정의로운 누군가가 등장해 현실을 바로잡아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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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노동자가 작업하는 모습(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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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보다 더 잔인한 현실

유리가공업 분야에서 독자적 기술을 보유하고 있던 B중소기업은 한때 대형 유통업체 납품을 통해 벌어들이는 연간 매출액만 100억원에 달할 정도로 ‘건전한’ 회사였다. B사는 원래는 대기업의 하청업체가 아니었다. 대기업에서 근무하다 나온 뒤 자기 사업을 시작한 ㄴ사장은 대기업도 갖고 있지 않은 유일한 독자기술’을 보유하고 있었고, 공장은 완제품 생산능력도 있었다. 2011년에는 대기업의 친·인척 기업인 한 1차 벤더 회사의 중개로 B사만의 독자적 생산제품을 대기업에 납품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기술협력 및 납품과 관련된 모든 회의에는 대기업 간부도 참석했다. 1차 벤더가 그들의 거래처 중간에 있었지만 대기업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대기업 측은 B업체가 보유한 기술을 알려달라고 했다. 대기업과의 거래를 확보하면 또 다른 판로가 생길 것으로 기대한 ㄴ사장은 대기업 담당자에게 e메일을 통해 자신들의 기술을 전달했다. 그리고 대기업이 요구하는 형태 그대로 공장 설비를 갖추고, 시설을 가동했다. 여기에 들어간 비용만 현금영수증 기준으로 171억원에 달했다.

그러나 B사는 대기업에 해당 제품을 단 한 개도 납품하지 못했다. 대기업은 B사의 기술을 받고, 납품단가 정보를 제공받은 뒤 실제 거래는 해외 다른 업체와 했다. B사는 해외 업체와의 단가 비교용으로 쓰이다 버려진 셈이었다. B사는 대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했지만 법원은 B사와 1차 벤더 사이의 일일 뿐 대기업은 관련이 없다고 판단했다. 대기업 담당자는 B사와 흔한 계약서 한 장 쓰지 않았다. ㄴ사장 역시 요구하지 않았다. ‘계약서만 있었어도 재판에서 지지 않았을 것 같다’는 질문에 그는 “(대기업 쪽에서) 서류작업을 하자는 제안을 먼저 하지 않는데 감히 먼저 ‘당신들 못믿으니 계약서 써달라’고 말할 수 있는 중소기업은 없다”며 웃었다. B사는 이 일로 폐업했다.

대기업에 플라스틱 사출제품 납품 1차 벤더 및 2차 벤더 일을 하고 있는 C사의 ㄷ사장은 “하청업체는 대기업과 혈연·지연·학연 중 하나도 없으면 독자적으로 절대 살아남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대기업의 일방적인 단가 후려치기와 연쇄적으로 내려오는 단가 후려치기에 진절머리가 난다고 했다.

“단가 후려치기는 진짜 일방적입니다. ‘우리(대기업)가 요즘 사정이 어려우니 납품가격을 같이 상의해서 조절합시다’라는 말도 절대 없습니다. 그냥 ‘10% 깎아라’고 일방적으로 지시가 내려옵니다. 원래 발주단가도 겨우겨우 이윤이 남는 수준인데 거기에 또다시 10%를 깎으면 그냥 우리들은 알아서 죽으라는 이야기거든요. 그런데 그걸 거부할 수도 없어요. 공장은 어찌됐든 돌아가야 하고, 대기업의 요구를 거절하면 당장 다음부터 발주량이 줄어들어요. 100개를 납품해야 겨우 원금 회수되는 수준인데 갑자기 사전통보도 없이 50개로 줄여버리면 공장을 돌릴수록 손해거든요.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대기업이 내리는 단가대로 납품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청도 살아야 하잖아요. 그러면 거기에 재하청을 내려버립니다. 더 저렴하게 하는 게 가능하니까요. 그러면 하청이 재하청에 또다시 갑질을 합니다. 자기네들이 깎인 만큼 일방적으로 단가를 10% 깎아버리는 거죠. 연쇄적으로 단가 후려치기가 이뤄집니다. 하청은 1차·2차·3차까지도 내려가니까요. 그러다 상황이 최악까지 가면 2차·3차 하청업체가 손 털고 뻗어버리는 거죠. 일상입니다.”

각종 상납과 로비도 ‘관행’처럼 이뤄진다. 드라마 속 노골적인 로비 요구는 현실에서 더 지저분하게 이뤄진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제조업체 대표는 이렇게 털어놓았다.

“룸살롱 마담한테서 전화가 옵니다. ‘사장님 외상값 좀 갚아주세요’라고 해요. 내가 거기서 술을 마신 적이 없는데. 그런데 누가 내 이름 걸고 외상술을 먹었는지 뻔히 알지요. 나한테 사전에 ‘사장님 잘 먹겠습니다’ 전화도 없어요. 그냥 먹고 ‘XX전자 ○사장 앞으로 달아라’ 하고 가는 겁니다. 밀린 외상값이 200만~300만원이 넘어요. 그 돈 계좌이체 해주고 나면 얼마나 사람 자존심이 무너지는지 아십니까.”

노골적인 상납과 로비는 관행

하청업체 관리에 목돈이 든다고 말한 뒤 전화를 끊는 대기업 하청업체 담당자에게는 개인계좌로 몇천만 원을 보내는 게 업계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관행이다. 실제 5000만원에서 8000만원까지 담당자 개인계좌에 비자금을 건넸던 중소업체 대표는 “그 대신 다음번에 발주물량이 넉넉하게 들어온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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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드라마 <청일전자 미쓰리>의 한 장면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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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은 꿈같은 일일까. 적어도 중소기업 대표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다. 애초에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 신뢰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국내 굴지의 대형 선박회사에서 근무하다 사업체를 차린 ㄹ사장은 창업한 지 7개월 만에 4억원의 빚을 지고 폐업했다. 대기업에서 25년간 주요 핵심기술 분야에 종사했기 때문에 그 나름의 독자적인 기술도 있었다. 문제는 납품단가 후려치기였다.

“납품단가가 현실적으로 너무 안 맞았습니다. 선박에 들어가는 제품들은 검사기준이 엄청 까다롭습니다. 기준에 아주 약간만 미치지 못해도 납품이 안 됩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현실적인) 단가는 맞춰줘야 하는데 이쪽 업계가 계속 상황이 안 좋다보니 원청에서도 후려칠 수 있는 데까지 후려쳐서 발주를 넣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발주는 받아야겠는데 그 돈은 죽어도 못맞추니까 그냥 2차·3차 벤더에다가 재하청에 재재하청을 넣어버렸지요. 그러다 재하청에서 ‘에이씨 나는 이렇게는 못맞춥니다’ 하면서 들고 날아버린 겁니다. 부랴부랴 우리가 손해보고 납품물량을 맞추는데 다들 힘들다고 도망가고…. 그러다 7개월 만에 망했습니다.”

ㄹ사장과 함께 대기업을 나와 다른 사업체를 차린 직장 동료는 ㄹ사장과 비슷한 상황에 처했다가 결국 ○○대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ㄹ사장은 “당시 선박탑제팀 5군데 업체가 다 망했다”며 “내 회사 차려 운영해보겠다고 하다가 주변에 아는 사람만 2~3명이 죽었다”고 했다. ㄹ사장은 현재 공장 부지를 임차해 영세 수리조선업을 하고 있다. 그는 “그래도 이건 대기업과 거래하는 게 아니라 선주(船主)와 직접 거래를 하기 때문에 원청업체와의 스트레스는 없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은 매번 대기업 앞에서 ‘을’이어야 할까. 중소기업은 독자적으로 살아남을 수 없을까.

경향신문은 인터뷰한 중소기업체 대표들에게 동일한 질문을 던져봤지만 모두기 한목소리로 “웃기는 소리”라고 했다. 제조분야도 밝히지 말아달라고 한 중소기업 대표는 중소기업의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전자가 엄청 우수한 중소기업으로 보이죠? △△전기가 엄청 잘나가는 강소기업으로 보이죠? 웃기지 말라고 그러세요. 거기 전부 ○○의 친·인척 기업입니다. 누구의 고모 회사고, 누구의 사촌 회사고 그런 식이에요. 우리나라 대기업은 학연·지연·혈연 없이 독자적으로 생존해보려는 중소기업을 어떤 식으로든 죽이든 자기네들 하청으로 넣어버립니다. 우리나라 강소기업은 막말로 대기업의 친·인척 기업이에요. 친·인척이 운영하는 중소기업은 자체 기술개발을 하든 독자적 판로를 찾든 안 건드리거든요. 그러니 기술개발이 가능하고, 강소기업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겁니다.”

만약 정부가 주도적으로 중소기업에 연구·개발(R&D) 자금을 제공하고 관리·감독한다면 혈연·학연·지연도 없는 중소기업도 독자적인 기술을 개발해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플라스틱 사출품 납품 하청업을 해온 A업체 ㄱ대표는 “그랬다가는 망한다”고 했다. ㄱ대표는 “나는 <청일전자 미쓰리>를 보다가 이마를 탁 쳤던 게 TM(대기업)의 ‘협력회사 지원팀’이라는 부서가 나올 때였다”고 말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도 ‘협력회사 지원팀’이 있거든요. 거기 직원들이 뭐 하는 사람인 줄 아십니까. 하청업체가 딴짓 못하게 감시하는 사람들입니다. 말이야 원청과 하청 사이의 관계를 원활하게 하기 위한 부서라고 하는데 그거 절대 아니에요. 하청업체가 자기네 1차 벤더 역할 외에 다른 원청업체의 물량을 받아서 작업을 하려고 하면 그걸 어떻게 알고 발주물량을 확 줄여버립니다. 그냥 오로지 자기네 부품만 생산하라 이거죠. 나는 R&D 쪽에도 투자를 해봤어요. 우리 회사만의 제품을 만들고 싶어서요. 그랬더니 바로 담당자가 ‘사장님, 그렇게 독자제품 만들고 싶으시면 우리 거 (발주)받지 말고 연구나 하세요’라고 웃으며 전화를 합디다.”

잘나가는 강소기업은 대기업 친·인척

A사는 대기업과의 하청관계가 ‘일방적으로’ 끊기고 현재 독자적인 제품을 생산한다. 기존 업체는 폐업했다. 작게 다시 시작하는 중이다. ㄱ대표는 “돈은 못벌어도 더러운 꼴 안 봐서 속이 다 시원하다”고 했다. ㄱ대표가 개발한 기술은 최근 국제특허까지 취득해 조달청 납품제품으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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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2019 대한민국 중소기업인 대회’에 참석해 기념촬영하고 있다./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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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대기업이 주는 발주로 먹고살아가야만 하는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발주 없이도 먹고살 수 있어야 하는 구조가 돼야 중소기업이 살 수 있다. 그런데 그 틀을 깨는 것은 매우 어렵고 힘들다. 플라스틱 사출 1·2차 벤더 C업체 ㄷ사장은 “진짜 대기업들이 지저분하다. 일본만 해도 발주량을 1년 단위로 제공하기 때문에 하청업체들이 계획을 세울 수 있고 상호협력이 가능한데, 우리는 대기업이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발주를 하다보니 발주량의 편차가 너무 크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은 전체 기업의 99.9%를 차지한다. 여기에 종사하는 노동자가 전체 기업 종사자의 88% 안팎(2017년 기준 82%)에 달한다. 그런데 이 99.9%가 벌어들이는 매출액은 전체 기업 매출액의 42.8%에 불과하다. 0.1%의 대기업이 전체 매출액의 57.2%를 벌어들이는 셈이다. 중소기업이 내는 매출액의 상당수 역시 대기업에서 만들어준 것이다. 때문에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중소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대기업의 하청을 자청하고 들어가야 한다. 이런 악순환 구조 속에서 대한민국 중소기업의 독자생존은 너무 먼 나라 이야기가 된다.

중소기업 사장들은 대기업이 발주계획을 일방적으로 정하는 구조만 개선돼도 중소기업이 기술개발 및 독자제품 생산 등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도 그나마 ‘독자생존’ 의지가 있는 중소기업에 한해서다. A업체 ㄱ대표는 “부끄럽게도 처음부터 대기업에 ‘빨대를 꽂고 싶어서’ 하청업체를 운영하는 사람도 태반”이라고 했다. ㄱ대표는 “대기업이 아무리 갑질하고 이런저런 더러운 꼴을 해도 어찌됐든 거기에 맞춰주면 발주량을 좋게 주고, 그나마 대금도 밀리지 않고 주기 때문에 대기업 하청을 선호하는 업체들도 많다”고 했다. 중소기업을 대기업의 하청업체에서 벗어나 독자생존할 수 있게 하자는 구호가 정작 모든 중소기업 운영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 중소기업과 소기업 간의 관계, 그 안에서 벌어지는 각종 갑질은 하나의 도식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대기업이 일방적으로 ‘나쁜 악당’이 되는 구조도 아니다. 일부 하청업체들은 “2차 벤더에 재하청을 주는 하청업체가 더 나쁜 X들인 경우도 많다”고 했다. 그래도 이제는 중소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는 ‘진짜’ 해결책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지난 50년간 중소기업을 살리기 위한 정부의 각종 노력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어딘가에서는 공장이 문을 닫고, 노동자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있다. 현실판 <청일전자>는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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