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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화성 아니라, 초등생이라 제외···경찰 3번 놓친 이춘재 범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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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피의자 이춘재(56)는 1986년부터 1991년까지 화성 연쇄살인 사건 10건은 물론 4건의 살인을 더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피해자는 초등생부터 70대 여성까지 나이를 가리지 않았고, 범행은 자신의 생활권 일대에서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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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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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재도 경찰 용의 선상에 오르긴 했다. 당시 경찰은 3차례나 이춘재를 조사했는데 번번이 수사망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1994년 1월 처제 살인 사건까지 무려 15명이 희생됐다.



지역 다르고, 시신 없어 별건으로 수사



이춘재가 화성 연쇄살인 사건 이외에 추가로 자백한 사건은 1987년 12월 수원 여고생 살인사건과 1989년 7월 화성 초등생 실종사건, 1991년 1월 청주 방직공장 여직원 살인사건, 1991년 3월 청주 주부 살인사건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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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재가 자백한 14건의 연쇄살인 사건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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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여고생 살인 사건의 경우 6차 화성 사건이 발생한 지 7개월 뒤인 1988년 1월 4일 수원시 화서역 인근 논에서 여고생(당시 18세)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확인됐다. 1987년 12월 24일 외출한 뒤 실종된 이 여고생은 착용하고 있던 옷가지로 결박되고 재갈이 물려있는 등 이춘재 특유의 범행 인증(시그니처·Signature) 수법이 확인됐다.

그러나 이 사건은 화성 연쇄살인이 아닌 개별 사건으로 취급됐다. 수원에서 발생한 사건이라 관할이 다르고 이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10대가 고문으로 뇌사에 빠져 사망하는 등 문제가 생기면서 수사도 지지부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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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소자 신분카드에 부착된 이춘재.[JTBC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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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초등생 실종 사건은 같은 화성에서 발생했는데도 화성 연쇄살인 사건과 연결되지 못했다. 억울한 옥살이 논란이 일고 있는 8차 화성 사건(1988년 9월) 발생 10개월 이후인 1989년 7월 7일 화성군 태안읍에서 초등생(당시 8세)이 실종된 사건이다. 태안읍은 10건의 화성 연쇄살인 사건 중 7건이 발생한 곳이었다. 5개월 뒤 초등생의 치마와 책가방이 한 야산에서 발견됐고 이듬해 11월 이곳에서 30m 떨어진 곳에서 9차 화성 살인 사건 피해자가 나왔다. 유가족이 "화성 연쇄 살인의 연장에서 수사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당시 경찰은 시신이 나오지 않았고 실종자가 초등생이라는 이유로 연결짓지 않았다.

청주 사건도 그랬다. 1991년 1월 청주시 흥덕구의 한 택지지구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방직공장 여직원(당시 16세)은 속옷으로 양손이 묶이는 등 이춘재의 시그니처가 발견됐다. 이춘재는 처제 살인 사건도 피해자의 옷가지를 이용해 범행을 저질렀다. 그러나 지역이 다르다는 이유 등으로 연관 짓지 못했다.

8차 화성 살인과 1991년 3월 청주시 남주동에서 발생한 부녀자 살인 사건은 집 안에서 발생했다는 이유로 모방범죄, 별개 사건으로 분류됐다. 그러나 이춘재는 이들 사건도 자신의 소행이라고 시인했다.



국과수 결과도 오류, 수감돼 조사 피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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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연쇄살인사건 7차 사건 당시 용의자 몽타주 수배전단.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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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사건이 끊이질 않자 경찰은 연인원 205만여 명의 수사력을 투입해 2만여 명을 조사하고 4만여 명의 지문을 대조하는 등 기록적인 수사망을 폈다. 화성 토박이인 이춘재도 수사망에 올랐다.

이춘재는 6차 사건과 8차 사건 발생 당시, 1990년대 초 조사를 받았다. 8차 사건 당시엔 2차례 음모를 뽑히는 등 대면조사도 받았다.

이번엔 과학 수사가 문제였다. 8차 화성 사건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음모를 조사한 결과 용의자는 B형이었다. 반면 이춘재의 혈액형은 O형이다. 이춘재는 혈액형이 다르고 음모의 형태도 용의자와 다르다는 이유로 수사망에서 제외됐다. 이후 9차, 10차 사건의 용의자도 B형으로 나왔다.

하지만 국과수가 재조사를 한 결과 9차 사건의 용의자의 혈액형도 O형이었다. 당시 시료의 양이 적은 데다 오염돼 오류가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국과수 감정 결과를 맹신했던 과거 경찰은 'B형'에 집중했다. 이후 8차 화성 사건에 연루돼 20여년 간 옥고를 치른 윤모(52)씨 등 20여명에 가까운 억울한 B형 용의자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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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연쇄 살인사건 수사본부가 차려졌던 화성경찰서 태안지서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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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재는 화성 초등생 실종 당시에도 조사 대상이 됐다. 그러나 초등생 실종 2개월 만인 1989년 9월 수원시의 한 가정집에 흉기를 들고 침입해 강도예비 등 혐의로 수감되면서 경찰 수사를 피할 수 있었다. 이춘재가 수감된 기간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은 더는 발생하지 않았다. 이춘재는 2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1990년 4월 석방됐는데 7개월 뒤 9차 화성 사건이 발생했다. 1991년 이후로는 굴삭기 기사 등으로 일하면서 화성과 청주 공사 현장을 오가며 10차 화성 살인과 청주에서 2건의 살인을 더 저질렀다.

경찰 관계자는 "이춘재가 자백한 범죄들의 공소시효는 모두 끝났지만, 화성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끝까지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최모란·최종권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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