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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범죄로 딸 잃은 부모, 보상 대신 장애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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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방윤영 기자] [편집자주] 사상 최악의 미제사건 '화성 연쇄살인사건' 이춘재, '제주 전남편 살인사건' 고유정, '한강 토막 시신 살인 사건' 장대호 등 강력범죄 가해자에 대한 처벌 목소리가 어느때보다 높은 가운데, 늘 뉴스 뒤편에 외면당한 사람들이 있다.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다. 흉악범에 삶을 송두리째 뺏긴 이들이지만 범죄자 못지 않게 그늘로 숨어드는 사정을 머니투데이가 조명해 본다.

[범죄 피해, 그 이후/上]소문 시달리고 보복 두려워하고…또 다른 피해 입는 가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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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이지혜 디자인 기자


#. 14년 전 딸을 잃은 한 가정은 그야말로 풍비박산이 났다. 타살이 분명한데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2005년 '관악구 20대 여성 사망 미제사건'의 피해자 가족이다. 아버지는 술만 마셨고 어머니는 딸을 보내지 못해 매일 울었다. 두 부모는 병원을 오간 끝에 결국 장애 판정까지 받았다.

매년 발생하는 범죄 피해자 40명 가운데 1명꼴로 범죄피해자 지원제도의 도움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력범죄에 삶을 뺏긴 피해자 혹은 피해자 가족의 고통이 외면당하는 중에, 피해자들은 다른 이의 편견과 가해자의 보복을 피해 스스로 몸을 숨긴다고 한다.

22일 경찰청 범죄피해자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범죄 피해자는 158만명이다. 이 가운데 전국범죄피해자지원연합회의 지원을 받은 피해자 수는 4만명 수준이다. 범죄피해 39.5명당 1명만 지원을 받는다는 얘기다.

살인·강도·강간 등 강력범죄로만 따져봐도 매년 피해자는 30만명 이상 꾸준히 발생하고 있지만 지원을 받는 피해자는 10명 중 1명꼴이다. 피해자 본인과 가족들은 사건 이후에도 숨어지내며 더욱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낸다.

'관악구 20대 여성 사망사건' 피해자 어머니 김영선씨(가명)는 "나만 보면 딸 생각이 나는지 우는 통에 남편은 둘째 아들 집에, 나는 셋째 아들과 살고 있다"고 했다. 관악구 토박이였던 이들 부부는 2년 만에 전셋집 보증금을 모두 날렸다. 남은 1000만원으로 60만원짜리 지하셋방을 얻어 이사했지만 그마저도 함께 살지 못한다고 한다.

김씨도 몸이 망가져 장애판정을 받았다. 대인기피증도 생겼다. 김씨는 "사고 이후에는 내가 '딸 죽인 부모'가 된 것 같아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못 나갔다"며 "사람 마주치기가 싫어 일을 나갈 때는 새벽 시간에 걸어 다녔다"고 밝혔다. 이어 "자식 먼저 앞세운 부모들, 안 죽어지니 그냥 사는 것뿐"이라며 "껍데기만 남았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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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최헌정 디자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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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죽은 집'이라는 소문에 시달리거나 그 소문이 두려워 남몰래 이사하는 경우는 허다하다. 강간, 강도 등 진범이 잡혀 처벌받더라도 가해자가 출소 후 보복할까 두려움에 시달린다고 한다.

2017년 서울 잠실에서 일어난 '묻지마 살인' 사건으로 아내를 먼저 떠나 보낸 한 가정도 사건 발생 직후 살던 동네를 떴다. 홀로 남은 아버지는 무엇보다 초등학생 자녀가 걱정이었다. 그는 아이가 다니는 학교 근처에 가지도 않는다. 누군가 자신을 알아보고 자식에게 소문이 날까 걱정이 돼서다. 등하굣길은 친척이 챙겨주고 있다.

5년 전 조현병을 앓고 있던 오빠에게 아버지를 잃은 여동생은 출소를 몇 달 앞둔 오빠가 두렵다고 한다. 겨우 되찾은 일상을 뺏길 것 같아 무섭다는 이유다.

여동생 이선정씨(가명)는 "살던 집이나 동네를 찾아가 수소문하거나 직장에 찾아오지 않을까 두렵다"며 "주민등록등본 열람 제한 신청을 하는 등 조치를 해봤지만 가족이니까 알려고 하면 어떻게든 알지 않을까 싶다"고 토로했다.

김홍열 서울동부피해자지원센터 사무처장은 "피해자가 하루에 5~6명, 한 달에 200명이 찾을 정도"라며 "반면 예산은 늘지 않고 있어 모든 피해자를 지원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방윤영 기자 by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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