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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박찬수 칼럼] ‘조국 그림자’와 싸우려는 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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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한 입시 제도나 취업 구조를 어떻게 바꿀지, 부와 스펙의 대물림을 막을 제도적 장치가 무엇인지를 놓고 고민해도 모자랄 판국에, ‘표창장 한장으론 부족하다. 세장은 줘야 한다’는 등의 농담을 하며 웃고 즐기는 야당을 보면서 국민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한겨레

박찬수

논설위원실장

조국 법무부 장관 사퇴가 ‘끝’이 아니란 사실은 시간이 지날수록 분명해지고 있다. ‘조국 논란’은 그의 사퇴로 일단락되기보다, 광장과 국회 그리고 검찰에서 첨예한 전선을 형성하며 내년 4월 총선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동력은 끝까지 ‘조국의 그림자’를 부여잡고 싸우겠다는 야당과 보수 언론의 지칠 줄 모르는 집착이다. 죽은 공명은 목각인형을 내세워 산 사마중달과 싸웠다는데, 조국 전 장관도 흙으로 인형 하나 빚어 광화문 한복판에 세워놓아야 할 판이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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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엔 조국 논란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과 다르지 않다고 보는 보수 진영의 도 넘는 비약이 깔려 있다. 지난 주말 광화문 집회에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조국의 사퇴는 진짜 승리가 아니”라며 “광화문 10월 항쟁은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주장했다. 자유한국당 출신의 전직 국회의원은 “조국이나 최순실이나 다를 게 뭐냐는 인식이 보수 진영엔 팽배하다. 이게 보수를 결집하고 분노를 분출시키는 힘이지만, 너무 지나쳐 언제 김이 빠질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굳이 광화문 집회까지 가지 않더라도, 보수 인사들 모임에선 ‘문재인 대통령이 남은 임기를 제대로 마칠 수 있겠느냐’라는 얘기가 진담처럼 손쉽게 나온다. 내년 총선에 조국 전 장관이 출마할 것이라는 ‘예측’도 기정사실처럼 떠돌아다닌다. 최순실 국정 개입의 ‘스모킹 건’인 태블릿피시가 조작된 것이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소수 친박 세력의 자기최면과 별반 다르지 않은 오도된 믿음이 이젠 한국당 주변까지 넘실대고 있다. 그러니 지나친 정치 공세의 늪에 빠져서도 오히려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다는 착각에 사로잡히고 만다.

최근의 정치적 상황이 자유한국당의 숨통을 틔우고 한 줄기 기회의 끈을 드리운 건 분명하다. 하지만 그 기회에 대처하는 방식이 ‘조국 논란’의 본질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게 아니라, 친박 세력이 이끌어온 광화문 집회에 합류해 정부 공격에 몰두하는 건 퇴행적이다. 극우보수 세력에 편승해서 어느 정도 세의 확산을 꾀할 수는 있겠지만, 젊은층의 지지 폭을 넓히지는 못할 것이다.

조국 논란이 정치권에 준 진정한 교훈은, 여당이든 야당이든 젊은이들이 고민하고 아파했던 ‘공정과 정의’ 문제에서 진지하게 해법을 추구하려 노력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권은 다를 것’이라는 기대가 무너졌기에 정부 여당이 받는 타격이 훨씬 크긴 하지만, 그 분노의 과녁에서 자유한국당 역시 비켜서진 못한다.

최근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이 앞다퉈 국회에 낸 ‘국회의원과 고위공직자 자녀 입시 전수조사’ 법안은 정치권이 국민과 젊은층의 바람에 진정으로 부응할 의지가 없다는 걸 보여준다. 총선이 6개월밖에 안 남았는데 1년간 조사를 하자는 내용도 그렇거니와, 자녀 입시보다 취업 특혜를 조사하는 게 훨씬 간명하고 파장도 클 터인데 이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김성태 의원 딸의 케이티(KT) 특혜 채용 의혹에서 보듯, 국회의원 자녀 취업을 둘러싼 뒷말은 의원회관 주변에선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자녀 입시 전수조사’ 법안 제출의 진정성을 믿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22일 자유한국당은 ‘조국 장관 사퇴’에 공을 세운 의원들에게 표창장을 주면서 오랜만의 승리를 자축했다. 불평등한 입시 제도나 취업 구조를 어떻게 바꿀지, 부와 스펙의 대물림을 막을 제도적 장치가 무엇인지를 놓고 고민해도 모자랄 판국에, ‘표창장 한장으론 부족하다. 세장은 줘야 한다’는 등의 농담을 하며 웃고 즐기는 야당을 보면서 국민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조국 장관 가족을 물고뜯어 ‘장관 사퇴’라는 전리품을 얻은 거로는 모자라, 앞으로도 계속 몰아붙여 정치적 이익을 극대화할 생각만 하는 야당에게서 ‘공정과 정의’를 기대하는 건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이 아닐까.

말로만 ‘성찰’하고 행동으로는 보이지 않는 정부 여당에, 철 지난 ‘조국 그림자’만 붙잡고 싸우는 자유한국당만큼 다행스러운 상대는 없을 터이다.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졌다고 해서 자유한국당 지지율이 오를 것이라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지금 자유한국당은 문제의 본질엔 전혀 다가서지 못한 채 너무 일찍 승리의 축배에 취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리멸렬한 야당은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에 진정 축복일까 아니면 재앙일까, 궁금하다.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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