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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서편제 낳은 단성사, 역사관으로 다시 태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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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23일 서울 종로구에서 열린 `단성사 영화 역사관 개관식`을 찾은 임권택 감독이 매일경제와 만나 소회를 밝히고 있다. [김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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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것이 작은 점의 폭발에서 시작했듯, 한국 영화의 기원은 서울 종로구 작은 극장 '단성사'에서 찾아야 한다. 이곳 없이는 전설적인 작품 '서편제'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에 빛나는 '기생충'도 설명할 수 없다. 배우 김혜자는 "단성사는 우리 영화의 탄생지"라고 했다.

1910년 개관해 세월을 우직하게 견딘 단성사가 23일 '영화 역사관'으로 새 옷을 갈아 입는다. 2015년 단성사를 인수한 백성학 영안모자 회장이 한국 영화 100주년에 맞춰 조성하는 기념사업이다.

이날 행사장에는 한국 영화계의 거물 임권택 감독, 이장호 감독, 원로배우 신영균, 김혜자 등 영화계 관계자 30여 명이 자리했다.

단성사가 낳고 키운 한국 영화는 대한민국 문화 산업의 대들보로 자랐지만 단성사는 그동안 시련의 주인공에 가까웠다. 영화 유통이 멀티플렉스 위주로 재편되면서 주인이 바뀐 것만도 여러 차례. 한국 영화의 대부 임권택 감독은 "한국 영화의 어머니이자 시작인 이곳이 경영난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을 때 나 자신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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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성사 영화 역사관`은 영화 관련 자료 8만2400여 점을 모아 개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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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성사는 1919년 10월 27일 민족 최초의 영화 '의리적 구토'를 상영한 극장이다. 후대 영화인들은 첫 상영을 기려 매년 10월 27일을 영화의 날로 제정했다. 단성사 품 속에서 일제강점기 최고 흥행작 나운규의 '아리랑'(1926년), 한국 최초의 무성영화 '춘향전'(1935년)이 줄줄이 탄생했다. 일제 자본에 의해 '대륙극장'으로 창씨개명 당하기도 했고, 6·25 전쟁의 포화를 온전히 견디기도 했다.

"내 영화 '서편제'도 단성사 없이는 빛을 보기 힘들었을 거예요. 이렇게 역사관으로 태어난 게 참 감사해요. 영원히 기억될 수 있잖아요."

임 감독은 단성사 역사관을 터벅터벅 걸으며 애잔한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서편제'로 한국의 미를 전 세계에 알렸던 것이 바로 이 극장"이라면서 "우리 영화의 기원에서 한국 영화 역사가 기록된다는 것이 무척이나 감사하다"고 했다. 수집 자료 8만2400여 점이 모인 역사관을 하나라도 놓치기 싫은 듯 그는 정성스레 눈에 담았다.

노(老)감독이 단성사에 애틋함을 느끼는 이유는 단성사의 토양 아래서 영화감독 임권택의 전설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그는 "내 인생 선물인 '서편제'가 이곳에서 개봉했던 기억을 잊지 못한다"면서 "6개월 이상 상영해 극장 앞에 걸린 영화 포스터를 새로 그려야 했을 정도"라고 추억했다. 1993년 개봉한 임 감독의 역작 '서편제'는 단성사 단일관에서만 100만 관객 이상을 모았다. 그의 전작 '장군의 아들'(1990년 개봉)이 단성사에서만 6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 돌풍을 일으킨 뒤였다.

단성사는 배우들에게도 꿈의 시작이자 배움의 장이었다.

배우 김혜자는 "앤서니 퀸, 줄리에타 마시나가 출연한 이탈리아 영화 '길'(1957년 개봉) 등 걸작 영화들을 단성사에서 보면서 명배우들 연기를 가슴에 새겼다"고 했다. 배우 신영균은 "원로배우인 나보다도 오랜 역사를 가진 단성사와 함께 영화배우로서 살아왔다"고 했다.

영화관으로서 단성사는 그 빛을 다했지만 원로들은 단성사가 역사관으로 영원히 빛나기를 응원했다.

특히 단성사에서 나고 자란 임권택의 소회는 더욱 깊었다. "단성사 위 상가들이 보석을 파는 곳 아닙니까. 건물 지하 2층 단성사에도 보물이 숨겨져 있지요. '대한민국 영화'라는 보물이 말이에요. 그 보물은 영원히 반짝일 겁니다. 한국 영화가 성장할수록 그 빛은 더할 테지요." 새로운 희망이 차올라서였을까. 원로 감독 임권택의 눈이 빛으로 반짝였다.

[강영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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