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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쉽지 않은 `합의 이혼`…브렉시트 결국 세번째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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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운데)가 22일(현지시간) 런던 의회에서 브렉시트 합의안을 둘러싼 하원 토론을 팔짱을 낀 채 지켜보고 있다. [AP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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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31일 유럽연합(EU)과 아름다운 결별을 장담했던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의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예정된 브렉시트 시한인 31일까지 브렉시트 관련 법안 통과가 불가능해지면서 또다시 미뤄야 할 처지에 놓인 탓이다. 일각에서는 31일이 핼러윈 데이임을 빗대어 '핼러윈의 악몽'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영국 하원은 22일(현지시간) EU 탈퇴협정 법안을 사흘 내로 신속 처리하는 내용을 담은 '계획안(programme motion)'을 찬성 308표, 반대 322표로 14표 차 부결했다고 BBC방송이 보도했다.

영국 하원에서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는 몇 주가 걸리는 것이 관례다. 이 때문에 존슨 내각은 브렉시트 예정일까지 열흘도 채 남지 않은 점을 고려해 EU 탈퇴협정 법안 통과 절차를 사흘로 줄이는 내용의 '계획안'을 추진했다.

이날 출발은 좋았다. 앞서 하원이 EU 탈퇴협정 법안을 찬성 329표, 반대 299표로 30표 차로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브렉시트 관련 법안이 의회에서 승인된 첫 사례이자 존슨 총리가 의회에서 거둔 첫 승리라고 CNN이 전했다. 110쪽의 본문과 124쪽의 설명서로 이뤄진 EU 탈퇴협정 법안은 영국과 EU 간 합의한 탈퇴협정을 이행하기 위해 영국 내부적으로 필요한 각종 법안을 뜻한다. 하지만 브렉시트를 현실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계획안'이 하원에서 최종 부결되면서 존슨 총리는 또다시 의회에 무릎을 꿇었다. BBC에 따르면 의원들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는 이 법안을 졸속으로 처리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 반대표를 던졌다.

'계획안' 통과가 무산되자 존슨 총리는 곧바로 EU 탈퇴협정 법안 상정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그는 영국의 '브렉시트 3개월 추가 연기' 요청에 어떻게 대응할지 EU가 결정해야 한다면서 EU에 공을 넘겼다. 존슨 총리는 투표 결과가 나온 직후 "매우 실망했다"며 "(영국이) 더 큰 불확실성에 직면하게 됐다"고 비판했다.

존슨 총리는 지난 19일 EU와의 새 브렉시트 합의안에 대한 승인 투표가 영국 의회에서 보류되자 31일로 예정된 브렉시트의 3개월 추가 연기를 요청하는 서한을 마지못해 EU에 발송했다. 지난달 제정된 EU 탈퇴법(벤 액트)에 따르면 19일까지 정부가 EU와의 브렉시트 합의안이나 노딜 브렉시트에 대한 의회 승인을 얻지 못하면 존슨 총리가 EU에 브렉시트를 2020년 1월 31일까지 3개월 추가 연기하도록 요청하는 서한을 보내야 한다.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존슨 총리가 EU 탈퇴협정 법안 비준 절차를 중단하기로 했다"며 "노딜 브렉시트를 피하기 위해 27개 회원국이 영국의 연기 요청을 받아들일 것을 서면으로 제안할 것"이라고 밝혔다. 로이터통신은 "추가 연기가 불가피해졌다"고 전했다.

다만 프랑스가 브렉시트 추가 연기 기간을 단기간으로 한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AFP통신이 전했다. 승인 연기 요청을 받아들이기 위해선 EU 회원국의 만장일치 동의가 필요하다. 이번에도 연기되면 세 번째다. 영국은 브렉시트를 지난 3월 31일에서 4월 12일로, 또다시 10월 31일로 두 차례 연기했다.

영국의 조기총선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존슨 총리는 이날 법안 토론 과정에서 하원이 '계획안'을 부결하면 법안 자체를 취소하고 조기총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일간 가디언은 "EU가 장기적으로 시한을 연기하고자 한다면 존슨 총리는 선거를 추진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NYT)도 "1월 31일까지 브렉시트를 연기한다면 총선을 위한 충분한 시간이 마련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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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역시 존슨 총리 계획대로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지난 9월 존슨 총리는 조기총선 실시 동의안을 하원에 두 차례 제출했지만 모두 거부당했다. 또 총선에서 존슨 총리의 보수당이 과반을 확보할 수 있을지도 예측하기 어렵다.

이처럼 브렉시트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영국 기업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가디언이 영국산업연맹(CBI) 조사 결과를 인용해 보도했다. 이날 올해 3분기 파산한 영국 기업이 전 분기 대비 35% 증가했다고 가디언이 전했다. 이는 6년 만에 가장 많이 늘어난 수준이다. 가디언에 따르면 CBI 고위 관계자는 "(기업의) 건물·기계·기술에 대한 투자 의지가 금융위기 이후 가장 부진하다"며 "기업이 공장 개편이나 교육훈련에 투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날 파운드화 가치는 전 거래일보다 0.67% 하락한 파운드당 1.2873달러를 기록했다. 그러나 EU가 노딜 브렉시트를 방지하기 위해 기한을 추가 연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폭락 상황은 연출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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