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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칼럼]아베의 '덴노헤이카 반자이(천황폐하 만세)' 삼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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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수 칼럼]

CBS노컷뉴스 구성수 논설위원

노컷뉴스

도쿄 왕궁 영빈관 마쓰노마(松の間)에서 열린 제126대 나루히토(德仁·59) 일왕 즉위식.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사진=일본 정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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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위를 축하하며 덴노헤이카 반자이'(천황폐하 만세, 天皇陛下 萬歲) 반자이 반자이"

22일 도쿄 고쿄(皇居) 내 접견실인 마쓰노마(松の間)에서 열린 나루히토 일왕의 즉위의식(即位礼正殿の儀)에서 아베 일본 총리의 만세 삼창이다.

이날 즉위의식은 지난 5월 1일 일본왕실에서 내려오는 보물인 청동검 등 이른 바 삼종신기(三種の神器)를 넘겨받고 왕위를 계승한 나루히토 일왕의 즉위를 대내외에 선언하는 의식이다.

아베 총리의 만세 삼창은 1.3m 높이의 단상에 마련된 옥좌(다카미쿠라, 高御座)에 앉아 즉위를 선언한 일왕을 올려다보며 두 손 들고 한 것이다.

마쓰노마에 함께 있던 3부 요인 등 국내 참석자들도 아베의 선창에 따라 만세 삼창을 했다.

입헌군주국에서 3부 요인이 왕을 향해 만세를 외치는 것을 문제 삼을 수는 없다.

그 나라의 문화와 전통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메이지(明治)유신 이후 '천황'을 신적인 존재로 떠받들면서 군국주의 깃발 아래 주변국을 침략하고 식민지배해 왔던 일본은 다르다.

당시 일본군은 '덴노헤이카 반자이(天皇陛下 萬歲)'를 외치며 주변국을 약탈하고 침략했다.

침략이나 식민지배를 당했던 나라의 국민들은 '덴노헤이카 반자이'를 일본의 독특한 문화 정도로 치부하면서 넘어갈 수는 없다.

더욱이 정부를 대표하는 총리가 3부 요인과 함께 즉위를 대내외에 선언하는 '천황' 앞에서 한 것은 과거 군국주의, 제국주의 일본의 아픈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물론 현재의 일본은 군국주의 시대 일본과는 다르다.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평화헌법에 의해 전쟁을 할 수 없는 나라가 돼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군사력을 보유할 수 없도록 돼있다.

일왕도 계속 '천황'이라는 이름을 고수하고 있지만 통치자로서 정치행위를 할 수 없고 '국민통합의 상징' 역할만을 수행한다.

일왕가도 이를 잘 알고 있다.

이전 아키히토에 이어 나루히토도 대외 메시지에서 항상 강조하는 것은 '세계 평화'다.

이날 즉위 선언과 함께 밝힌 오코토바(お言葉, 말씀)에서도 "국민의 행복과 세계의 평화를 항상 바라고 국민에게 다가서면서 헌법에 따라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서 임무를 다할 것을 맹세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일본을 실제로 이끌고 있는 우경화된 정치세력이다.

그 선두에 아베총리가 있다.

아베 정권은 지난 2012년 취임 이후 장기집권을 하면서 보수화, 우경화로 치닫고 있다.

최종적으로는 평화헌법을 고쳐 다시 군사력을 보유하고 행사할 수 있는, 전쟁을 할 수 있는 '정상국가'로 탈바꿈하는 것이 목표다.

우리나라와의 과거사를 둘러싼 갈등도 이 과정에서 불거지면서 증폭되고 있다.

아베총리는 이날 축사에서 "사람들이 아름답게 마음을 맞대는 가운데 문화가 생기고 자라는 시대를 완성하기 위해 최선을 노력을 다해 가겠다"고 밝혔다.

새 연호 '레이와(令和, 아름다운 조화)'의 뜻풀이를 담은 것으로 보이지만 그동안 새 시대와 개헌을 연결짓는 논리를 설파해 온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아베 총리는 최근 "레이와 시대에 일본이 어떤 국가를 목표로 해야 할 것인가, 그 이상을 논의해야 할 장소야말로 헌법심사회"라며 개헌 논의를 촉구한 바 있다.

이들 우경화 정치세력에게 천황제는 자신들의 개헌 목표를 위한 이용물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대정봉환(大政奉還)으로 쇼군(将軍)이 통치권을 '천황'에게 반납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명목상에 지나지 않았던 것과 같다.

군국주의자들은 천황제를 내세우면서 주변국에 대한 침략을 자행했고 '천황'은 얼굴마담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국민통합의 상징' 역할만을 하는 지금의 천황은 더욱 그렇다.

이날 아베의 만세삼창 역시 왕에 대한 진심어린 축하를 했다기보다는 이런 천황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겠다는 노림수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아베의 '덴노헤이카 반자이'에 전율을 느끼는 이유이다.

천년 이상 유지해왔다는 천황제는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일본의 독특한 문화, 전통임에 틀림없다.

그것이 세계인에게 자랑할 수 있는 아름다운 문화유산이 되기 위해서는 더 이상 정치에 의해 이용되고 악용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오랜 전통 속에 치러지면서 많은 이야기를 가진 일왕의 즉위의식이 그 자체로 이웃나라 국민들로부터 진심으로 박수받고 축하받을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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