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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뇌부자들 상담소] 악플과 정신적 동일시 / 오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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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오동훈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며칠 전 한 유명 연예인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최근까지 방송에 출연했을 뿐만 아니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서 대중과 활발히 소통해오던 그녀였기에 사람들의 충격은 클 수밖에 없었다. 지난 한주간 진료실에서 만난 많은 환자들이 그녀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항상 당당하게 행동했던 겉모습과 달리 정작 속은 곪아가고 있었던 것 같다며 슬픔을 표하거나, 왜 가까운 사람들에게 알리고 도움을 받지 못했는지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깊은 우울증을 앓고 있던 어느 환자는 그녀같이 반짝이던 사람도 죽는데, 자신 같은 사람은 살 가치가 없다며 한참을 울었다. 나 역시 고인을 지켜보던 한 사람으로서 이 자리를 빌려 애도의 뜻을 전한다.

그녀는 괴롭다는 심경을 담은 메모를 남기고 떠났다. 평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않고 소신대로 행동하는 모습 덕분에 많은 팬들로부터 지지를 받았지만 동시에 그 이상의 비난에 직면해야 했다. 대다수는 ‘악플’이라는 이름의 날카로운 화살이었다. 베일 아래 가려져 몇명인지조차 알 수 없는 사람들을 상대로 그녀는 홀로 선 채 맨몸으로 맞서야 했다. 쉴 새 없이 날아드는 화살들로 인해 마음의 보호막이 찢어지고 화살이 하나둘 심장에 꽂히게 되자 고통의 크기는 점점 커졌을 것이다. 더는 견디기도, 상황을 바꾸기도 어렵다는 절망감에 확신이 더해진 순간 모든 것을 끝내기 위한 선택을 하게 된 것이 아닐까.

정신과학에서는 ‘정신화’(mentalization)라는 개념이 자주 언급되곤 한다. 나와 타인이 서로 다른 생각과 감정을 가질 수 있음을 인지하고, 이를 상대방의 행동에 적용해 그 의도를 추론할 수 있는 능력이다. 언뜻 듣기엔 누구에게나 있는 당연한 능력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정신화 능력이 발달하지 못한 사람들은 타인의 마음 상태에 초점을 두지 못하고 자신의 마음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타인의 행동을 바라볼 때 그 의도를 헤아리는 대신 자신의 생각이 진실이라고 믿고 결론 내리는 것이다. 이것을 ‘정신적 동일시’(psychic equivalence)라고 부른다. 자신의 생각이라는 내적 세계와 타인의 의도라는 외부 세계를 동일시한다는 의미다.

나는 그녀에게 악플의 화살을 겨눴던 수많은 사람들이 정신적 동일시 상태에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녀가 올린 사진 하나, 내뱉은 말 한마디를 두고 ‘관심을 끌기 위한 것’이라고 너무도 쉽게 단정짓지 않았던가. 그들에게 진실이란 이미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기에 그녀의 진짜 의도가 무엇인지는 궁금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더욱 무서운 건, 그들이 자신의 행동이 상대에게 어떠한 상처를 주었는지 알아차릴 만한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행동을 정당한 비판이었다고 합리화하거나 그녀의 마지막을 ‘나약함’이라는 단어로 호도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던 분들이 면담 말미에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다. 주변 시선이 두려워 드러내놓고 슬퍼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에스엔에스 계정에 그녀를 추모하는 글을 올렸던 한 환자는 “관종이다”라는 뒷담화를 들었다고 했다. 또 다른 환자는 “부모가 죽었을 때보다 더 슬퍼한다”며 비아냥거리는 말을 듣기도 했다. 당사자는 별 뜻 없이 한 이야기였다며 억울해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 내뱉은 말 한마디가 화살이 되어 상대의 가슴에 박혔다면, 그것이 반짝이던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 한 악플과 무엇이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나의 마음속 진실이 상대의 마음을 알고 난 후엔 사실이 아닌 억측이 될 수도 있다. 상대에 대해 어떤 판단을 하려 할 때, 자신이 정신적 동일시 상태에 있지는 않은지 살펴봐야 한다. 나의 관점이 아닌 상대의 관점에 서서 생각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자. ‘걘 이상해’라는 단정이 ‘그 사람은 어떤 마음으로 그랬을까?’라는 의문문으로, 나아가 ‘그럴 수 있었겠다’는 공감으로 변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은 타인에게 겨누던 화살을 그를 향해 내미는 따뜻한 손길로 바꾸어 준다. 그리고 당신의 변화가 어쩌면 절벽 끝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한 사람을 안전한 곳으로 끌어올려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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