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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김광일의 입] 반환점에 선 文대통령 “다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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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 11월10일이면 문재인 대통령은 5년 임기의 정확한 절반을 채우게 된다. 반환점을 돈다는 뜻이다. 어떤 분들은 벌써 그렇게 됐나, 세월 빠르네, 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반면 어떤 분들은 아직도 2년 6개월이나 남았단 말이냐, 하고 한숨을 내쉬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환점을 도는 문 대통령의 언행에는 확연하게 다급한 표정이 드러나고 있다. 집권당 지지율 하락, 전혀 개선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경제 상황, 호전될 가능성이 안 보이는 남북관계, 대놓고 문 대통령을 무시하는 김정은의 태도 때문에 그렇다. 특히 오늘 아침 김정은은 "금강산 남측 시설을 싹 들어내라"고 지시하면서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 남측시설"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의 말에 안그래도 복잡한 머리가 더 복잡했을 것이다. 민정수석 겸 법무장관을 거친 대통령 최측근 부부의 기소로 이어지는 상황, 대통령 본인의 지지율도 취임 이후 최저점을 갱신하고 있으니 말이다.

다른 나라 같았으면, 대통령이 그토록 전심전력으로 힘을 실어주었던 최측근 인사의 일가족이 벌인 온갖 추문과 의혹과 도중하차라는 엄청난 정권 스캔들 앞에 정권 사람들은 얼굴을 들지 못했을 것 같다. 그러나 역시 문 대통령은 다르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 혹시나 하는 기대를 저버리고, 역시나 하는 반응을 불러온다. 문 대통령은 엊그제 국민들께, 그리고 입법부에게 전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인 국회시정 연설에서 체면이고 염치고 옆으로 밀쳐놓고 그냥 정면 돌파를 하기로 결심한 모습을 보였다. 문 대통령은 "공정을 위한 개혁을 더욱 강력히 추진하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국민의 뜻이 하나로 수렴하는 부분은 검찰 개혁이 시급하다는 점"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개혁을 멈추지 않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검찰 내부의 비리에 대해 검찰이 스스로 엄정한 문책을 하지 않을 경우 우리에게 (공수처 외에) 어떤 대안이 있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개혁’이란 포장지만 두르면 뭐가 됐든 국민에게 환영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지금 우리나라는 ‘검찰 개혁’이 가장 시급한 과제인가. 기업인들이 검찰 때문에 투자를 망설이고 있나.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1% 대로 주저앉고 있는 게 검찰 때문인가. 김정은이 핵보유와 탄도미사일 도발을 멈추지 않고 있는 것도 검찰 때문인가. 대부분의 국민들께서 일상생활이 팍팍하다고 느끼시는 것이 오로지 검찰 때문인가. 우선순위를 따졌을 때 검찰 개혁이 대통령의 1순위인가. ‘규제 개혁’ ‘정책 기조 개혁’ ‘안보 라인 개혁’ ‘외교 개혁’ ‘청와대 인사개혁’ 같은 것이 지금 대통령에게는 몇 십 배 더 중요하지 않은가.

문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지난 두 달 그토록 나라를 옥죄였던 ‘조국 사태’에 대한 인사 실패를 사과하기는커녕 단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문 대통령은 ‘공정(公正)’이란 단어를 무려 27차례나 사용했다. 문 대통령은 대학을 나오고 사법시험에 합격한 사람이다. ‘조국 반성’ 없이 ‘공정’을 외친다는 것이 앞뒤로 논리가 닿지 않는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는 것일까. ‘공정’이란 영어로 하면 ‘페어니스(fairness)’, 스포츠에서 하는 말로는 ‘페어플레이’가 그것일 것이다. 문 정권 들어서서 가장 추악한 ‘불공정 표본’처럼 만천하에 드러난 사람이 바로 조국 씨이고, 그 사람만은 안 된다고 윤석열 검찰총장까지 그토록 만류했건만, 조국 씨를 끝내 법무장관에 임명한 사람은 바로 문 대통령이 아닌가. 그런데도 조국 사태를 전혀 언급하지 않고, 반대로 ‘공정’을 27번이나 외친다는 것이 얼마나 비상식적이고 비논리적인지 대통령 자신은 모른다는 말인가.

문 대통령이 ‘공수처 이외에 대안이 있냐’고 물었다기에 한마디 하겠다. 만약 문 정권 초기에 공수처를 만들었고, 그 뒤에 ‘조국 사태’가 터졌다면 어떡할 뻔 했는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겠다"는 ‘윤석열의 검찰’에게 모든 수사 내용을 공수처로 이관하라고 지시하고,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은 공수처 처장과 수사검사들이 한 달쯤 우물쭈물한 뒤에 ‘혐의 없음’이라고 결론 내리지 않았을까. 그러지 않았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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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유튜브 ‘김광일의 입’, 상단 화면을 눌러 감상하십시오.

[김광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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