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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82년생 김지영'의 사려 깊은 시선 [무비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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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투데이

영화 82년생 김지영 리뷰 / 사진=영화 82년생 김지영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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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투데이 한예지 기자]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시대의 자화상이다. 당연하게 주어진 사회적 역할과 의무에서 함몰된 개인의 상처를 보듬고 그저 따스한 위로를 건넨다. 이같은 영화의 본질 앞에서 젠더 논쟁은 부질없다. 모두의 공감과 이해를 담은 사려깊은 영화다.

누적 판매 100만 부를 돌파한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82년생 김지영'(감독 김도영·제작 봄바람영화사)은 1982년 태어나 2019년 오늘을 살아가는 김지영(정유미)의 아무도 몰랐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젠더 논쟁 탓에 제작 단계부터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작품이었지만, 영화는 김지영의 삶, 그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그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의 관계 설정들을 그저 담담히 담아낼 뿐이다.

꿈 많던 어린 시절, 자신감과 의욕이 넘치는 직장 생활을 거쳐 결혼 후 한 아이의 엄마이자 아내로 살아가는 평범한 여자 김지영. 사랑스러운 딸, 다정하고 살가운 남편. 지금 삶이 행복하기도 하지만, 알 수 없는 답답함을 느낀다. 노을 지는 풍경을 보며 이유 없이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는 느낌이다. 왜인지는 모르나 괜찮다고, 별거 아니라며 넘긴다. 그런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은 어쩐지 불안하고 애틋하다.

영화의 흐름은 지영의 회상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교차적으로 오간다. 서사는 단순하고 오히려 평범하다. 한 여자가 살아온 과정의 나열이다. 그러나 한국을 살아가는 한 여성의 평범한 서사에는 우리가 인지했던, 혹은 모른 채 지나쳤던 여성으로서 겪은 차별과 아픔이 가득하다.

명절날 시댁에서의 에피소드, 가족의 생계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엄마의 사연, 워킹맘의 고충 등은 당연하게 여겨왔던 여성의 삶과 이에 대한 편견과 한계가 얼마나 부당한 것인지를 드러낸다. 인간으로서 기본권을 침해당하고, 가정에서 사회에서 무수히 많은 권리를 포기해야 하고, 개인의 주체는 사라진다.

그래서 김지영은 감정의 파고가 크다. 가슴이 답답하고 불안하고 자신이 희석된 것 같지만, 또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살아가야만 하기에 이를 크게 드러내지도 못한다. 이같은 심리적 장벽에 가로막혀 자신을 잃어가고 결국 타인의 목소리로 아픔을 토로한다. 그 목소리는 친정 엄마와 할머니를 포함한 이 사회 익명의 여성들을 대변한다. 지영의 갑작스러운 '빙의' 현상이 이질적으로 느껴지기보다 안타까운 연민을 부르는 건 그래서다.

하지만 영화는 여성의 희생과 고통만을 강조하지 않는다. 이 사회를 살아가는 남성들에 대한 이해도 담겨있다. 남성의 직장 생활 고충은 물론 하굣길 버스에서 생긴 일로 겁을 잔뜩 먹은 고등학생 딸이 그토록 걱정돼 한걸음에 달려 나와서도 다정한 말 한마디 못 건네는 무뚝뚝하고 표현 서툰 아버지의 모습부터, 저를 만나 많은 걸 포기해야 했던 아내를 향한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남편, 아픈 누나가 염려돼 퉁명한 듯 속 깊게 챙기는 막내 남동생의 모습까지. 그저 보편적인 인물들을 담담하게 담아낸다. 이는 '82년생 김지영'의 사려 깊은 시선이다.

결국 '82년생 김지영'은 특정적으로 치우친 견해와 관점이 아닌, 이 사회 각자의 역할을 부여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시선과 이해를 두루 담아낸다. 뿌리 깊게 박힌 사회적 정서와 편견을 깨고, 모두의 설득과 공감을 통해 위로와 치유를 전하는 영화다. 그렇기에 지영이 드디어 제 목소리를 찾고 세상을 향해 당당히 일갈하는 신은 해방감과 더불어 뭉클한 감동을 준다. 단순하고 평범한 서사로도 여운은 상당히 깊은 영화다.

특히 세 번째 호흡을 맞춘 정유미와 공유는 세밀한 감정 연기로 완성된 현실 부부의 모습으로 '82년생 김지영'의 방점을 찍는다. 10월 23일 개봉.

[스포츠투데이 한예지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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