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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미술품 양도차익, 과세 강화한다" 소식에… 미술시장 대혼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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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 판매 수익, '기타소득'서 '사업소득'으로 과세강화 검토에 한국화랑協 국회에 탄원서 제출

"사업소득 분류시 40% 세율 적용… 컬렉터 사라지고 미술시장 고사"

경기 침체에 옥션·갤러리도 타격, 기재부 "케이스별로 다르게 적용"

"미술계가 대혼란에 빠지게 됐다."

국내 143개 화랑이 소속된 한국화랑협회가 이달 초 '미술품 양도차익의 사업소득 과세 관련 탄원서'를 국회에 제출한 것으로 23일 확인됐다. 개인의 미술품 판매 수익에 대해 세무 당국이 현행 '기타소득' 대신 '사업소득'으로 과세 강화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다. 협회 측은 "현행은 차익의 4.4%를 과세하지만 '사업소득'으로 분류되면 40% 수준의 세율이 적용된다"며 "시장이 얼어붙으면 미술계 전반에 심각한 파급 효과가 몰려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2013년 미술품 양도세 시행 이후 협회가 이 문제로 탄원서를 낸 건 처음이다.

◇미술시장, 제2의 양도세 쇼크?

미술품 판매에 대한 양도세 적용은 1990년 논의가 시작돼 난관 끝에 6년 전부터 적용됐다. 미술계의 완강한 저항과 시장 위축을 고려해 6000만원 이상의 작고 작가 작품에 한정하고, 기타소득으로 분리과세하는 등의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하지만 최근 기획재정부 측에 '개인 소장가가 미술품을 수차례 경매회사 등에 위탁해 판매했을 경우 소득 구분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법리 해석 요청이 들어왔고, 기획재정부는 공무원 및 세법 관계자 10여 명을 소집해 이를 논의했다. 회의에 참석한 한 전문가는 "회의 결과 '직접 팔든 경매회사에 위탁해 팔든 수차례 팔았다면 판매 사업을 한 것'이라는 국세청의 논리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며 "입법 취지에서 벗어난 결론이기에 논란의 여지는 있다"고 덧붙였다. 기획재정부 측은 "어느 한쪽으로 일괄 적용하기보다 케이스별로 달리 판단해야 한다"며 "미술계가 우려하는 관련 법 개정 계획은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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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화랑들이 밀집한 서울 인사동의 거리 풍경. 1974년 개업 후 2003년 이곳으로 옮겨 재개관한 우림화랑은 지난해부터 지하 1층과 지상 1층 공간을 세 내놓고 기획 전시는 중단한 상태다. 임명석 대표는 “경기 침체로 전시를 열어도 그림이 안 팔리니 작가들에게 미안해 기획전은 접었다”고 했다. 인사동 화랑 숫자는 지난해 164곳에서 올해 144곳으로 줄었다. /김연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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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미술계의 위기감은 상당하다. 국내 최대 경매회사 서울옥션 이옥경 대표는 "컬렉터의 불안감이 커 향후 시장 전망도 좋지 않다"며 "한국 미술 시장은 5000억원도 안 되는 작은 규모인데 옥죄기만 해서는 성장이 어렵다"고 했다.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미술품 양도차익 과세로 걷힌 돈은 2015년 37억3000만원에서 2017년 38억9000만원으로, 2년 새 1억6000만원 증가에 그쳤다.

◇40년 역사 창원표구사도 폐업

미술 시장의 침체 분위기는 여러 지표로 감지된다. 서울옥션은 지난 2분기 8억원 영업 손실, 케이옥션은 3년 연속 상반기 낙찰가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의 '2019년 상반기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 결산에서도 8개 경매사 낙찰 총액은 전년 대비 약 204억원 감소한 826억원 수준이었다. 국내 최고 수준의 화랑 국제갤러리의 지난해 매출은 3년 전과 비교해 약 752억원 하락했다. 서울 인사전통문화보존회에 따르면, 서울 인사동 내 화랑 숫자는 지난해 164개에서 올해 144개로 줄었다. 반면 지난해 세계 미술품 시장은 미국·영국 등의 주도로 전년 대비 6% 성장('The Art Market 2019')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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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열린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2019). 주최 측인 한국화랑협회는 최근 국회에 미술 시장 관련 탄원서를 제출했다. /한국화랑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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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이유는 전반적인 국내 경기 침체다. 미술 작품은 기호품이기에 경기가 나빠지면 가장 먼저 쪼그라들고 회복도 가장 더디기 때문이다. 기업 측의 미술 시장 지원도 감소세다. 한국메세나협회에 따르면, 기업의 미술·전시(169억9800만원) 분야 지원은 전년 대비 4.3% 떨어졌다. 화랑가가 어려워지자 표구사들도 문을 닫는 등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지난 5월, 40년 역사의 서울 계동 창원표구사가 폐업을 결정한 것이 그 예다. 손용학 표구협회장은 "화랑가의 그림 매매가 뜸해지면서 표구도 줄어 2~3년 새 문 닫는 표구사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컬렉터는 시장 중추, 존중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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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시장 침체의 여러 이유로 화랑의 자기 혁신 및 기획 능력 부족, 얇은 미술 애호 저변 등이 거론된다. "컬렉터에 대한 선입견"도 그중 하나다. 서울옥션과 케이옥션 대표를 지낸 김순응 김순응아트컴퍼니 대표는 "조금만 비싼 작품을 샀다 하면 비리와 연결짓고 세무조사 같은 단죄에 착수한다"며 "부자들은 점차 미술 사업에서 손을 떼고 돈이 말라버린 미술 시장은 고사 위기에 몰리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화랑업계는 그간 다수 작품을 구매해 소장·전시했던 삼성미술관 리움의 활동 중단을 시장 침체의 큰 원인으로 꼽고 있다. 해외 유수 아트페어로 나가거나 블록체인을 통한 고가 미술품 공동 구매, 2030 컬렉터를 노린 기획전 등을 통해 화랑계 역시 나름대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본화랑 이승훈 대표는 "젊은 고객이 늘고 미술 저변이 넓어지고는 있으나 전체 시장의 규모를 좌우하는 건 기업 등 '큰손'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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