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헬기 8대 투입 2시간 작전… ‘시리아 철군 비판’ 피할 호재
이슬람국가(IS)의 최고 지도자인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 A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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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 최고 지도자인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48)가 미군 공격에 의해 26일(현지시간) 시리아 북부 이들립 은신처에서 사망했다. 2014년 6월 스스로를 칼리파(신정 일치 지도자)로 칭하고 IS를 선포한지 5년 4개월만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7일 오전 백악관에서 중대 발표 형식의 회견을 열고 “지난 밤 미국은 전 세계에서 테러 지도자 1순위를 심판했다. 아부바르크 알바그다디는 사망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특수부대가 시리아 북부 이들립 지역의 알바그다디 은신처를 공격했다”며 “쫓기던 알바그다디는 인근 터널 끝에서 입고 있던 자살폭탄 조끼를 터뜨렸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는 개처럼, 겁쟁이처럼 죽었다”고 강조하며, “생체 정보 검사 결과 사망한 사람은 알바그다디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 마크 밀리 합참의장 등과 함께 상황실에서 작전 상황을 모두 지켜봤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와 미 주요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알바그다디 소재지에 대한 믿을만한 정보를 최근 확보한 미군은 델타포스 등 정예 특수부대를 투입해 26일 자정 무렵 헬리콥터 8대를 투입해 이들립 은신처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다. IS 세력의 반격이 있었으나 곧바로 진압됐다. 작전은 2시간가량 진행됐으며, 작전 중 숨지거나 부상을 입은 미군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알바그다디가 은신처에서 터널로 들어가면서 11명을 데려갔고, 이 가운데 아이 3명을 붙잡은 채 ‘자폭’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알바그다디는 울면서, 두려워하며 죽었다”며 “그를 따르는 자들이 더 이상 그를 추종하지 못하도록 (작전) 영상을 공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CNN에 따르면 이들립 주민들은 이날 자정이 지나 인근에서 요란한 헬리콥터와 비행기 소리를 들었다. 한 주민은 “헬리콥터들이 날아갔고, 매우 멀리서 기관총 소리가 들렸다. 한 시간 정도 폭발 소리가 이어졌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와 알바그다디 공격작전 정보를 공유했다고 밝힌 터키 정부 관계자는 “알바그다디는 미군의 작전 개시 48시간 전 이들립에 도착했다”고 로이터 통신에 전했다. 이란과 이라크 정부 역시 알바그다디 사망 첩보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국방부가 작전에 앞서 주변국들에 두루 정보공유를 한 것으로 보인다. 이라크 국영방송은 27일 알바그다디 폭격 장면을 TV를 통해 방영했다. 영상에는 섬광이 번쩍이는 모습, 이들립 주민들로 보이는 이들이 움푹 파인 자갈밭과 피 묻은 옷가지를 살피는 장면이 담겼다.
알바그다디는 2014년 6월 이라크와 시리아 요충지를 기반으로 IS를 선포하고 스스로 ‘칼리프(정치ㆍ종교 최고 지도자)로 참칭한 인물이자, 전 세계 곳곳에 자행된 IS의 대형 테러를 지휘해온 수괴다. 미국 등 서방 정보당국은 수년 간 그의 소재를 추적해왔으나 ‘보이지 않는 셰이크(지도자란 의미의 아랍어)’로 불리며 잠행해왔다. 미국 등 국제사회의 격퇴전으로 IS의 힘이 빠지고 있던 시기 사망설이 꾸준히 제기됐으나 지난해 8월 육성 녹음 파일을 공개해 건재함을 과시했다. 국제사회의 IS 격퇴 작전을 이끌어온 미국이 올해 3월 ‘IS 패망’을 선언한 직후인 4월에도 자신이 직접 출연한 동영상을 공개해 IS 재건 의지를 드러냈다. 미국은 알바그다디에게 알카에다의 옛 우두머리 오사마 빈라덴과 같은 2,500만 달러(약 290억원)의 현상금을 걸어 놓고 있었다.
예언자 무함마드의 계승자를 자처했던 알바그다디는 1971년 이라크 중부 사마라 지역에서 가난한 성직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학창시절 그는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무장단체 수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차분하고 평범한 성격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1996년 바그다드 이슬람대학에 진학한 뒤 코란을 연구하는 성직자로 일했으나,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반미 성향을 키워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무장단체에 가입해 활동하기 시작한 그는 IS 전신인 ‘이라크 이슬람 국가(ISI)’의 고위직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시리아 내전 당시 힘의 공백이 발생하자, 이라크뿐 아니라 시리아 주요 지역까지 장악하며 세를 과시했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으로선 시리아 철군 결정 뒤 미국을 향해 쏟아진 비판을 다소 피해갈 구실을 챙겼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6일 트럼프 대통령이 시리아 북동부 군사작전에 대한 불개입을 선언하자, 미국은 크게 두 가지 이유로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았다. 하나는 시리아 철군으로 미국의 IS 격퇴전 동맹군이었던 쿠르드족에 대한 터키의 공격을 사실상 묵인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힘의 공백으로 IS가 세력을 다시 키울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이다. 미군이 알바그다디를 사실상 사살함에 따라 두 번째 비판에 대해선 ‘미군이 IS 수괴를 없앴다’고 반박할 방어 기제를 챙긴 셈이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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