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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교수에 뺨 맞고, 무기정학…사학비리 맞선 상지대생들의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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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비리 맞선 상지대 학생들 10년

7일 개봉 다큐 '졸업' 박주환 감독

박근혜·문재인 당시 후보 방문도 담아

"데모하다 취직 못 했단 손가락질 상처

한국 사회 좋은 어른 고민하게 됐죠"

중앙일보

다큐멘터리 '졸업'에서 상지대가 정상화된 지난해 다같이 모여 졸업사진을 찍은 박주환 감독(맨 왼쪽)과 총학생회 동문들. [사진 시네마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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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공금횡령‧입시비리 혐의로 1년 6개월의 징역형을 받은 대학 이사장이 10여 년 만에 같은 대학 총장에 취임했다. 자기 아들, 일가친척 등이 채운 재단을 이끌고. 한국 사학비리 대명사가 돼버린 강원도 원주 상지대 김문기 전 총장 재단 실화다.

7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졸업’은 부당 권력에 맞서 학교를 지키기 위해 수업을 거부하고, 무기정학을 맞으며 맨몸으로 싸운 상지대 학생들의 10년을 보여준다. 옛 재단 이사들이 복귀할 거란 소문이 돌던 2009년부터 2015년 비리 재단을 몰아낸 뒤 학교가 정상화되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을 모두 담았다.



사학비리 맞선 학생들의 10년



거창한 구호보단 ‘사람’이 보이는 다큐다. 상식에 호소하는 청춘들의 몸부림이 강하게 남는다. 상지대 행정학과 05학번 박 감독이 총학생회 기록용으로 찍었던 영상을 졸업 후 영화로 완성해 서울독립영화제 최우수 장편상을 받았다.

“영화를 만들겠단 목적보다 친구들과 함께하려고 카메라를 들었는데 개봉까지 할 줄은 몰랐어요.” 개봉 전 종로 인디스페이스 극장에서 만난 그의 말이다. 강원도 토박이로, 지금도 부모님과 원주에 산다는 그다. ‘감독’이란 호칭엔 “아직 어색하다”며 쑥스럽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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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서울 CGV 용산에서 열린 다큐멘터리 '졸업' 언론시사회에서 박주환 감독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 시네마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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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영화는 2010년 상지대 총학생회가 그에게 활동 기록을 부탁하며 시작됐다. 2009년 그가 원주영상미디어센터를 다니며 만들어 지역 방송에 소개된 단편 영상이 계기였다. 그해 상지대 옛 재단 복귀 소문이 들리며 학생‧교수‧교직원들의 농성이 시작되자 이를 10분짜리 다큐로 담은 것.



"용산참사·쌍용차 비극 속에 상지대 봤죠"



그는 정권이 바뀐 이듬해인 2009년 1월 용산 참사, 쌍용차 대량 해고 사태 등 여러 비극의 맥락 속에 상지대 사태가 보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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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김 총장 측 측근들의 복귀가 결정되자 망연자실한 상지대 학생들. 왼쪽 두 번째가 당시 박 감독의 시선을 붙든 동갑 친구 이승현씨다. [사진 시네마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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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듬해 휴학하곤 국토대장정에 나섰지만 결국 학교로 돌아왔다. 2010년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사학분쟁조정위원회가, 퇴출당했던 김 총장 측 측근들의 복귀를 결정한 당시 현장에서 농성 중이던 동갑 이승현씨(당시 예술체육대학 학생회장)의 눈물을 보고서다. “동갑 친구는 울부짖고 있는데 저는 하고 싶은 걸 하고 있다는 미안함, 창피함”에 박 감독은 다시 카메라를 들었다. 이런 활동이 2012년도 총학생회장을 맡는 데까지 이어졌다.



상지대의 뿌리 깊은 사학비리



상지대 사학비리는 뿌리 깊다. 1972년 교육부가 김문기씨 등을 원주대 임시이사로 파견했고 74년 김씨는 원주대 이름을 상지대로 바꾸고 이사장에 취임했다. 지난해 정상화된 상지대 학생들에 의해 직선제로 선출된 정대화(교양과 교수) 총장은 앞서 2017년 출간한 저서 『상지대 민주화 투쟁 40년』에서 “김문기는 유신체제 하에서 권력을 동원해 상지대를 강탈한 자”라며 “그들은 학생들의 등록금을 빼돌려 돈놀이하고, 이에 저항하는 학생들을 간첩으로 몰아간 ‘용공 조작 사건’을 일으켰다”고 적었다. 결국 93년 구속돼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김문기씨는 총장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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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졸업식에서 항의 시위 중인 학생들. 손에 든 천막엔 "상지대 장악한 사학비리 전과자 김문기 총장은 퇴진하라"고 적혀 있다. [사진 시네마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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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변기가 깨져 오물이 새는데도 수리가 안 됐어요. 교체되지 않아 깜빡거리는 형광등 아래 수업했고, 강원도라 겨울에 눈이 많이 오는데도 제설작업도 제대로 안 했죠. 기본적인 학습권을 보장받을 수 없어 8000만 학우와 수업 거부를 통해 권리를 찾으려 노력했죠.” 다큐에도 나온 전종완 2015년도 상지대 총학생회장이 기자간담회 때 들려준 얘기다. “재단에 맞선 교수가 학기 중간 파면당해 수업을 못 들었다”(박주환 감독) “김문기 총장이 복귀하며 학교 예산을 사적인 곳에 이용했다”(박병섭 상지대 법학부 교수)는 얘기도 나온다.



전현직 대통령도 후보 시절 방문



다큐엔 총학생회 구성원들이 투쟁 중 잇따라 무기정학을 받고 김 총장 사퇴 요구 방문 중 교수에 뺨을 맞거나, 절망감에 투신마저 고민하는 극한상황도 담겼다.

“집회를 이어가며 저더러 ‘쟤 봐라, 데모만 해서 취업도 못하고 저러고 산다’ 같은 말들이 큰 상처였죠.” 박 감독이 돌이켰다. 요즘엔 취업준비‧고시공부를 위한 ‘통로’처럼 인식되곤 하는 대학이다. 그는 “영화를 본 대학생 관객들이 어떻게 저렇게 학교를 사랑할 수 있느냐고 놀라던데 저한테 중요한 건 학교가 아니었다. 내 후배들, 같이 투쟁한 사람들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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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비리에 맞선 투쟁 중 무기정학을 받았던 (오른쪽부터) 윤명식 2014년도 상지대 총학생회장과 김승룡 2015년도 부총학생회장은 학교 정상화 후 지난해 학위 수료식에서 '우리 대학 민주화 유공 졸업생' 특별 수상을 했다. [사진 시네마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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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약 없던 투쟁은 2015년 교육부의 김 총장 해임 요구를 시작으로 촛불정국을 전후해 일단락된다. 영화엔 후보 시절 상지대를 찾은 박근혜 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도 나온다. 박 감독은 “상지대보다 더 천문학적 금액의 비리 사학들이 여전히 있는데도 상지대가 ‘대명사’처럼 알려진 건 거기 있는 사람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싸웠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었다면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았을 것”이라 강조했다.



상지대 10년, 한국 사회 10년



지난해 3월까지 햇수로 10년, 510회차 촬영. 6TB 용량에 달하는 영상들을 편집하며 그는 “우리가 지나온 10년이 어떻게 보이세요? 질문하고 싶었다”며 “상지대뿐 아니라 세월호‧촛불 등을 거쳐온 한국 사회 10년이기도 하다”고 했다. “‘졸업’을 왜 (투쟁) 중간에 영화로 만들지 않았을까, 생각하면 해피엔딩으로 만들고 싶어서였다”면서 “처음엔 ‘나의 학교’였던 제목을 바꾼 것도 내가 보았던 10년의 현장 기록들을 그냥 남겨두는 것보다 세상에 내보일 때 나도 비로소 다른 길로 나아가는 진정한 의미의 ‘졸업’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라고 했다.

“영화가 제 인생에 큰 영향을 줬어요. 초‧중‧고‧대학교 나와 군대 다녀와서 취업하고 결혼하는, 정해진 삶의 루트가 있을 거란 편견이 총학 활동하며 깨졌어요. 친구‧후배들과 같이 분노하고 함께 있어 줘야 할 것 같으니까, 생각지 않고 졸업하고도 계속 학교에서 이렇게 살았잖아요. 남들과 다르지만 제 나름의 삶의 방식이라 생각하거든요.”



미성숙한 어른들 보며 좋은 어른 꿈꿔



“사회적 지위, 인정을 받고도 책임지지 않는 미성숙한 어른들”을 보며 “한국사회에 (좋은) 어른이 있나? 어른이 뭘까?” 생각했다는 그는 “적어도 자기 말과 행동을 책임지는 좋은 어른”을 꿈꾸게 됐다. 어쩌면 서독제 상금 일부를 상지대 후배들에 기부한 이유다.

원주에서 결혼식‧잡지 사진과 영상을 찍으며 최근엔 강원도 탄광 지역 여성들에 관한 책에 실을 사진을 의뢰받아 작업 중이다. 차기 다큐도 촬영하고 있다. “지역 청년 이슈에 관심이 많아서 저랑 같이 원주에서 작은 독립영화관을 만들고 싶어 하는 친구 이야기를 찍고 있어요. 저한테는 몇 안 되는 동료죠. 지역에 젊은 사람이 정말 없거든요. 주변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하는 방식이 저한테는 맞는 것 같아요. 이제 1년 넘게 찍었지만, (전작은) 10년도 찍었는걸요. 세상은 계획대로 되는 게 없는 거니까요(웃음).”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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