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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배기 맛 찾아 왔습니다"… 2030 사로잡은 관록의 노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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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맛집 찾아다니는 커플 노포페이스]

대성집·평양집 등 유명한 곳부터 인근 주민만 아는 숨은 노포까지 인스타그램에 정보 공유하며 화제

"자연스럽고, 시간이 느껴지는 곳… 정형화되지 않은 그 매력에 퐁당"

"계란말이!" "짜파구리요." 아는 사람만 안다는 종로의 가게맥줏집(가맥집) '혜성슈퍼'에선 뭘 먹어야 하느냐고 묻자 두 사람이 동시에 외쳤다. 음악 콘텐츠 관련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이진수(28)씨와 의류 디자이너 조항현(30)씨. 두 사람은 소문난 노포(老鋪) 마니아다. 인스타그램에서 요즘 화제인 '노포페이스'를 함께 운영한다. 커플인 두 사람이 데이트하면서 가본 오래된 맛집 정보를 올리고 별 대신 산(山) 모양 아이콘으로 평점을 매긴다. 이들에게 2030세대가 노포를 찾는 이유를 물었다. 이들은 "자기만의 노하우를 갖춘, 그러면서도 시간의 흔적이 느껴지는 가게를 발견할 때 즐겁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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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노포를 소개하는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는 조항현씨·이진수씨가 추천한 남가좌동 '닭내장집'. 초란을 넣고 끓여주는 닭내장탕과 닭발을 맛볼 수 있다. ②함께 식사하는 조항현(오른쪽)씨와 이진수씨. ③연탄 돼지갈비로 유명한 을지로의 '경상도집'. ④'닭내장집' 외관. 녹록하지 않은 내공이 느껴진다. /영상미디어 이신영·김종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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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향수"

세련되고 번쩍거리는 가게가 널렸는데 왜 이들은 굳이 허름한 노포를 찾아다닐까. 조항현씨는 "스무 살 이전까진 지방에서 살았다. 내 예산으로 다닐 수 있는 적당한 식당은 대개 해장국·칼국수·두루치기 집이었다. 이후 새로운 가게도 다녔지만 결국 맘이 향하는 곳은 노포였다"고 했다. 이진수씨도 비슷했다. "어릴 때 시골에 살면서 부모님과 맛집을 자주 다녔다. 대부분이 오래된 국밥집이었다. 자라선 소주를 좋아하게 됐고, 여기에 맞는 안주를 찾다 보니 결국 노포 맛집에 안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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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이 비슷한 두 사람은 2년 전 연인이 됐다. 진수씨는 "을지로 '원조녹두'에서 1차를 하고, 2차로 '필동분식'을 갔던 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마음을 열었다. 급속도로 친해졌다"고 했다.

노포페이스 계정을 만든 건 지난 1월. 제일 먼저 서울 돈암동에 있는 '태조감자국'을 소개했다. '좋다'(1만5000원), '최고다'(1만8000원) 식으로 메뉴가 적힌 것이 귀여웠고, 저렴한 가격, 담백한 국물에 반해 '산 두 개'를 줬다. "할머니가 끓인 것 같은 시큼달달한 김치찌개"가 생각나는 '광화문집'은 산 두 개, "해장하러 갔다가 또 술 마시고 나오게 됐다"는 서울 용두동 '어머니 대성집'은 산 4개를 줬다. 두 사람은 "우리는 칼국수집·국밥집 같은 곳을 더 좋아하지만, 인스타그램에선 분식집 같은 곳이 '좋아요'를 더 많이 받긴 한다"면서 "가끔 친구들을 노포에 데려갔다가 한 소리 들은 적도 있다. 그래도 우린 노포가 좋다"고 했다.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향수라고도 하죠. 일부러 노포처럼 만든 곳과 정말 노포인 곳은 뭐가 달라도 달라요. 자연스럽고, 정형화되지 않은 매력이 있거든요."

◇발견의 기쁨을 나누다

기성세대는 그래도 노포를 찾는 젊은이들의 심리를 더 분석하고 싶어 한다. 두 사람은 "그냥 맛있다"고 했다. 항현씨는 동네 산책을 하다 연희동 '피노키오 치킨'에 갔을 때를 떠올렸다. "야외에 앉아서 먹을 수 있고, 치킨이 정말 맛있었어요(웃음)." 진수씨는 충무로의 '사랑방 칼국수'를 갔을 때 얘기를 했다. "가게에 '월요일은 월래 웃는 날' 같은 글귀가 붙어 있어요. 칼국수도 맛있고요. 이런 곳을 찾기란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가요?"

솔푸드여서 끌리는 것도 있다. 진수씨는 전북 김제에 있는 '원평시골순대'를 '인생 순댓국'으로 꼽았다. "어릴 때 아빠와 먹던 맛이었어요. 서울에선 광화문 '화목순대국'에서 비슷한 맛을 느꼈죠." 두 사람은 "우리가 감히 노포를 평가하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그냥 우리가 함께 느꼈던 행복의 순간을 나누고 싶었어요. 우린 결국 먹고 마시면서 살아가니까요."

[황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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