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8 (목)

민식이, 태호ㆍ유찬이…‘아이들법’ 쌓였지만 국회는 외면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정치하는 엄마들’ 조사 결과 의원 10명 중 3명만 “통과시키겠다”

“어린이 생명안전 법안 정기국회 내 통과 필요”
한국일보

지난달 21일 국회 정문 앞에서 '정치하는엄마들' 주최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하준이와 태호, 윤호, 민식이 엄마 아빠 등 참가자들이 어린이 생명안전 관련 법안들을 정기국회에서 처리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민식이법, 태호ㆍ유찬이법, 하준이법, 한음이법, 해인이법.’

모두 안전사고로 사망한 아이들의 생명에 빚진 법의 이름이다. 20대 국회에서 앞다퉈 발의됐으나 단 한 건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딱 한 달이 남은 20대 국회 정기국회를 앞두고 국회의원 전원에게 “이 법안들을 반드시 처리할 것을 약속해달라”는 동의서를 보낸 결과는 참담했다. 총 296명 의원 중 단 31%(92명)의 국회의원만이 ‘동의’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는 국회의 의결정족수(출석 의원의 50%)에도 턱없이 모자란 숫자다.

12일 시민단체 ‘정치하는 엄마들’에 따르면 지난달 21일부터 25일까지 태호와 해인 부모와 함께 해당 동의서를 국회의원들에게 일일이 전달했지만 이 같은 결과를 받았다. 국회의 거대 양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전체 의원 128명 중 63명(당내 동의율 49%)이, 자유한국당은 109명 중 단 7명(6%)만이 여기에 동의했다. 가장 동의율이 높은 정당은 전체 의원 6명 전원이 찬성한 정의당(100%)과 민중당(전체 의원수 1명 중 1명 동의ㆍ100%)이었고, 민주평화당은 5명 중 3명(60%)이 동의하면서 그 뒤를 이었다. 바른미래당은 27명 가운데 4명(15%)이 동의하는 데 그쳤다.

정치하는 엄마들 측은 “그 동안 국회에서 ‘아이들법’이 왜 통과되지 않고 묻혀 있었는지 너무나 확실해졌다”며 “어린이 생명 안전에 대한 정치권의 무관심과 안일함의 끝을 보여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일보

이정미(맨 왼쪽) 정의당 의원이 지난달 21일 국회 정문 앞에서 어린이생명안전법안 통과 촉구 기자회견을 마친 뒤 발걸음을 떼지 못한 채 눈물을 흘리는 하준이와 태호, 민식이 엄마 아빠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도대체 어떤 법안이기에 국회에서 외면 받은 걸까. 제한속도 시속 30㎞의 스쿨존(어린이보호구역)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민식이 같은 아이가 다시는 없도록 이곳에서 사고를 낼 경우 처벌 수위를 높이는 ‘민식이법’(도로교통법 개정안을). 인천 송도 축구교실 차량 사고가 발생한 뒤 어린이 통학차량 신고 대상을 넓혀 안전을 강화하자고 한 ‘태호ㆍ유찬이법’(도로교통법ㆍ체육시설법 개정안). 주차장 안전 관리자의 책임을 강화한 '하준이법'(주차장법 개정안). 어린이 통학버스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도록 하는 ‘한음이법’(도로교통법 개정안). 사고를 당한 어린이의 응급조치를 의무화한 ‘해인이법’(어린이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안)이 그 내용이다.

태호 엄마 이소현씨는 “자식을 살려달라는 것도 아니고 남은 아이들을 최소한의 장치로 보호하자는 취지”라며 “절대 무리한 요구들이 아니다. 자식 잃은 부모들이 이렇게 발 벗고 나서지 않아도 마땅히 마련되어 있었어야 할 기본사항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준 엄마 고유미씨도 "돈 안 되고 표 안 되는 어린이 안전 같은 건 관심도 없는 국회에 피해자 가족 역시 진절머리가 난다"면서 “울며 이 길을 가는 것은 남은 내 아이들과 내 이웃의 아이들 때문”이라고 전했다.

20대 국회 마지막 정기국회 회기는 12월 10일 끝난다. 이대로 20대 국회 임기가 종료되면 법안은 자동폐기 된다. 정치하는 엄마들 측은 “누구보다 빛나던 아이들을 잃은 엄마ㆍ아빠들이 살아있는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어렵게 내어준 이름들”이라며 “국회가 하루라도 빨리 법안들을 통과시켜 더 이상 대한민국의 어리고 여린 사람들이 피해 입지 않도록 해달라”고 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