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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82년생 김지영' 남녀갈등? 사회평등 통과의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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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평점 테러에도 300만 흥행 가속도…"현실과 동떨어진 구습" VS "미래지향적 가치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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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은 평점 9점의 극찬을, 남성들은 평점 1점의 테러를 던졌다. 영화를 바라보는 극과 극의 시선은 갈등이 화두가 된 지금 사회 흐름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남녀 갈등의 새로운 씨앗인가, 사회평등을 위한 통과의례인가.

영화는 개봉 전부터 무차별 평점 테러에 시달렸지만, 개봉 3주차에 접어든 11일 누적 관객 300만명을 돌파하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영화가 개봉된 후, 갈등 논쟁도 심화했다. 더불어민주당 장종화 청년대변인이 남자도 ‘남자다움’이 요구된 삶을 살았다며 ‘남성도 차별받는다’는 취지의 논평을 내 남녀 갈등을 부추겼고 김나정 아나운서는 “불편하다”는 감상평을 남겼다. 김 아나운서는 특히 “여자가 불평등하고 매사에 부당하고 억울하다고 생각하면 너무 우울할 것 같다”는 설명도 잊지 않았다.

영화를 불편하게 보는 배경(그래서 남녀갈등의 씨앗이 되는)은 크게 두 가지다. 지금 시대와 맞지 않은 3대로 이어지는 여성의 억압과 희생이라는 구습의 가치관과 경쟁력이 떨어지는 남성의 현실적 피해와 고통을 외면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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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김지영(정유미)의 엄마는 오빠들을 위해 ‘좋은 능력’을 포기하고 청계천 미싱 일을 하며 뒷바라지해 온 희생의 상징이다. ‘경단녀’(경력 단절 여성)인 딸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새로운 직장을 얻자, 시어머니에게 전화 걸어 남편(공유)이 육아 휴직할 것이라는 얘기를 알리자, “너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지 않느냐”는 핀잔을 듣는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못살게 구는 캐릭터는 아니지만, 남자는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고 그다음 여자는 가져도 되고 안 가져도 되는 구습에 박힌 본능이 움직인 셈이다. 겉으로 드러내진 않지만, 속내는 여전히 ‘남성 중심’의 사고를 버리지 못한다.

1점 테러의 네티즌들은 “요즘 그런 시대가 아니다”며 “너무 구시대적 관습에 젖어 현실을 해석한다”고 비판한다. 또 영화에서 그리는 남성 캐릭터들이 힘든 내면의 모습보다 위선의 위로로 그려진 부분에 대해서도 현실을 도외시한 장면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작지 않다. 일부 극단적 페미니스트들은 “극 중 남성 캐릭터들을 너무 멋있게 그려 현실과 동떨어진다”는 쓴소리도 던져 남녀 갈등 논쟁을 도마에 올렸다.

반면 영화가 남녀평등, 나아가 사회평등의 통과의례라는 시선을 잘 투영했다는 목소리도 넘친다. 구시대적 가치관을 자주 등장시킨 비판에도 불구하고 영화 자체가 지닌 힘과 호흡, 우리가 돌아봐야 할 미래지향적 태도에 대한 얘기를 제대로 꼬집었다는 것이 호평의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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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김지영의 졸업식 전날 가족끼리 모인 저녁 식사 자리다. 지영이가 지원한 회사에서 연락이 없자, 아버지가 “그냥 시집이나 가라”고 말한다. 엄마가 갑자기 숟가락을 쾅하고 식탁에 내려치며 남편 말에 반기를 든다.

남녀 능력은 동일한 잣대에서 평가되어야 하지만, 시대가 바뀌고 환경이 달라져도 ‘가부장적 속성’은 무의식에서 여전히 꿈틀거린다. 이 무의식은 지영이 버스에서 성추행하는 남자를 피해 아버지를 만난 자리에서도 이어진다. “바위가 굴러오면 피할 생각을 해야지” 가해자의 공격보다 피해자의 방어 논리에 초점을 맞춘 아버지의 발언은 과거보다 줄었어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은연중 내비치고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현실적으로 젠더 문제를 들여다보면 많이 변한 것처럼 얘기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변하지 않은 게 더 많다”며 “무엇보다 ‘나’의 문제로 들어올 때 실감하는 경우가 많고 그런 지점을 영화가 얘기하는 것”이라고 했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비교적 덜 포용적인 소설과 달리, 영화적으로는 ‘기생충’ 버금갈 정도로 모든 캐릭터에 힘을 실은 훌륭한 작품”이라며 “구시대적 장치 사용이라는 비판을 넘어서는 ‘미래지향적 담론’이 온전히 살아 숨 쉰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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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평론가는 “남자는 악, 여자는 선의 구도로 연출하지 않는 미학이 등장인물 곳곳에 포진돼 있다”며 “소설처럼 (현실) 반영을 반영에서 머무르게 하지 않고, 반영에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세월이 흘러도 고전처럼 반복적으로 호출될 수 있는 장점이 많은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소설이 김지영을 중심축으로 놓고 나머지 인물들을 들러리로 내세운 반면, 영화는 김지영과 인물들을 수평적으로 내세워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무게 중심을 잘 유지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시대와 맞지 않는 ‘피해자 여성 코스프레’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역사적으로 여성들이 어떻게 당해왔는가를 인식하면 그 작은 비판들은 우리 사회평등의 통과의례로서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했다.

김지영은 가끔 ‘빙의’해 제 목소리를 내는데, ‘우리 사회가 지금 이렇다’는 상황을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전달한다. 그렇게 내는 목소리가 정답일 것 같은데, 아직 우리는 거울 속 자신에게만 ‘빙의’해 속삭이고 있는 건 아닐까.

김고금평 기자 dann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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