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19 (화)

“인도 빠진 RCEP은 종이호랑이”…중 입김 확대 우려 목소리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관세감축에 초점 둬 개방수준 낮아

외신 “스테이플러로 기존 FTA 묶은 격”

중국은 무역보다 ‘일대일로’ 생각만

견제 역할 기대한 인도 불참에

아세안 정치경제 판도 되레 혼란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4일 타이 방콕에서 중국·일본·한국·오스트레일리아(호주)·뉴질랜드와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10개국) 등 15개 나라 정상들은 “협상 개시 7년 만에 이뤄낸 위대한 타결, 세계 최대 자유무역 블록의 탄생과 승리”라고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알셉) 타결을 선언했다. 하지만 인도가 빠진 알셉은 ‘종이호랑이’에 불과하고, 이미 발효 중인 여러 역내 자유무역협정(FTA)을 단지 한데 묶어 철하는 ‘스테이플러’에 그친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전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아세안 지역은 미국·중국·인도가 서로 각축하며 상대국을 견제·상쇄해왔는데, 이런 균형 축이 도널드 트럼프 체제 아래서 점차 무너지고 있어 알셉 타결에도 ‘정치·경제적 혼돈’을 연출하고 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중국이 주도해온 다자간 무역협정인 알셉 협상에 오랫동안 참여했으나 정작 이번 타결 선언에는 동참하지 않았다. 관세양허(감축) 시장개방으로 중국산 값싼 공산품과 호주산 농산물이 자국 시장에 물밀듯 흘러들 것으로 우려하면서 타결을 주저해왔다. 인도는 대중국 교역에서 연간 530억달러(약 62조원·2018~19년. 매년 4월 회계연도 시작)에 이르는 막대한 무역적자를 내고 있다. 인도의 전체 무역적자에서 3분의 1에 이른다. 양국 사이의 이런 경제적 긴장은 그동안 ‘험난한 알셉 협상’의 주요 요인이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최근 “중국에서 볼 때 인도는 사실상 알셉 타결을 망치려는 태도를 보여왔고, 그러지 않아도 7년 동안 협상 속도가 느린 터에 인도는 ‘알셉 트럭’ 뒤편에 매달린 20피트짜리 무거운 대형 컨테이너 같은 격이었다”고 평가했다. 중국이 인도 관련 ‘미해결 쟁점들’은 미뤄둔 채 얕은 물에서 수월하게 헤엄치며 일단 타결을 선언해버린 형국인 셈이다. 레누카 마하데반 교수(퀸즐랜드대) 연구팀에 따르면, 인도가 빠진 시나리오에서 중국의 ‘알셉 효과’는 2030년까지 국내총생산(GDP) 0.08% 증가에 불과하다.

사실 알셉의 시장 개방화 수준은 낮다. 미국의 탈퇴 이후 일본·호주·캐나다 등 11개 나라의 참여로 2018년 12월에 발효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시피티피피)이 서비스·노동·지식재산권·경쟁·투자정책을 포함하는 훨씬 포괄적인 범위를 다루는 것과 달리 알셉은 주로 협정 참여국의 점진적인 공산품 관세감축과 원산지 규정 통합에 초점을 맞춘다. 표면적인 규모는 ‘세계 인구의 절반, 세계 총생산의 3분의 1’을 포괄하지만 애초부터 그다지 야심찬 협정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특히 인도의 공산품 평균 수입관세율(5.78%·2017년)은 알셉 협상 16개 나라 중에 가장 높다. 반면에 인도·한국·중국을 제외하면 알셉에 참여하는 아세안 국가끼리의 기존 양자협정 상대국 평균 관세율은 이미 제로 수준에 가까이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도 “알셉이 ‘시피티피피에 대응하는 아시아지역의 거대한 매머드 무역협정’이라고 선전하지만 인도가 빠진 알셉은 상징적 의미만 클 뿐인 종이호랑이에 가까워지고 있다. 실질적·추가적인 자유무역 증진 효과나 참여국의 성장률을 높이는 효과는 제한적이고, 기존에 이 지역에 존재해온 복잡다단한 자유무역협정 네트워크를 모아 한데 묶는 ‘스테이플러’에 불과하다”고 혹평했다.

지난 몇년 동안 미국·중국·인도는 아세안을 무대로 만화경 같은 변화무쌍한 각축을 벌였다. 트럼프 행정부는 알셉 지역과의 무역 규모가 연간 1조9천억달러에 이르는데도 무역통상보다는 군사안보 측면을 더 중시하는 쪽으로 동남아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아세안으로선 역내 중국 경제파워 견제를 미국에 더는 의존하기 어려워진 셈이다. 트럼프는 다자주의를 거부한 채 제멋대로 개별 무역상대국과 협상에 나서 차례로 때려눕히고 있다. 싱가포르의 동남아연구소 선임연구원 캐시 리는 “무역환경 급변에 동요하는 아세안 각국은 트럼프의 무역보복 타깃이 될까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알셉을 통해 자국 상품을 더 많이 수출하려는 목적보다는 21세기 육상·해상 실크로드 경제 벨트로 불리는 ‘일대일로’를 아세안으로 확장하려 했다. 영국의 시장조사기관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분석가 앨릭스 홈스는 “아세안 전략을 둘러싼 미국의 행동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는 추세”라며 “중국이 이 틈을 타 영향력을 늘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중국의 막강한 정치경제 궤도에 지배당할까 봐 우려한 동남아 국가들은 인도가 알셉에 참여하면 중국 영향력이 어느 정도 상쇄될 것으로 기대해왔다. 그런 점에서 인도 이탈은 지역의 정치경제 판도에 혼돈을 불러오고 있다. 방콕의 한 외교전문가는 <아에프페>(AFP) 통신에 “알셉은 인도가 포함될 때만 큰 전략적 가치를 갖는다. 인도가 빠진 상태에선 세력균형을 잡기 어렵다”고 말했다. 중국 견제 심리가 특히 강한 호주 쪽은 “어떻게든 인도를 협정에 꼭 끌어들여야 한다”고 독려하고 있다.

15개 나라가 미-중 무역분쟁 여파로 공통 당면한 경제성장률 둔화에 대응하고자 ‘타결’을 다급하게 선언했으나, ‘내년 최종 서명’을 목표로 하는 알셉에 인도가 ‘참여’로 돌아설지가 알셉의 향후 장래와 영향력을 가를 공산이 크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작다. 인도 신문 <이코노믹 타임스>는 “인도 재무부는 인도가 기존에 맺은 다른 무역협정들까지 너무 많은 것을 상대방한테 양보하고 있는지 따져보며 재검토하는 중”이라고 보도했고, 한 인도 통상정책가는 “인도는 작은 폭의 관세감축을 무릅쓰는 것조차 감당하기 힘든 경제”라고 말했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동영상 뉴스 ‘영상+’
▶한겨레 정기구독▶[생방송] 한겨레 라이브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