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8 (목)

'내맘대로' '팔팔'… 명품부터 길거리 패션까지, 한글을 입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조선일보 100년 기획 - 말모이 100년, 다시 쓰는 우리말 사전]

[8] 한글에 손짓하는 세계 패션

샤넬·제냐·프린 등 세계 명품, 한글의 장식미를 의상에 구현

"에너지 넘치는 창의적인 문자, 기하학적 무늬도 존재감 넘쳐… K팝의 쿨한 매력과 꼭 닮았죠"

"한글은 에너지 넘치는 서울을 닮았다. 전통과 현대가 흥미롭게 섞인 서울 젊은이들의 태도, 재능, 예술적 자유, 문화적 움직임, 이 모든 쿨한 것이 한글을 통해 창의적으로 재해석된다."(에르메네질도 제냐의 디자이너 알레산드로 사르토리)

"나는 한글을 사랑한다. 한글을 쓰는 방식도 좋아한다. 일종의 큐비즘 같다."(샤넬 총괄 디자이너였던 카를 라거펠트)

프랑스의 샤넬, 이탈리아의 제냐, 영국의 프린, 미국의 오프닝 세리머니…. 세계적 패션 브랜드가 한글에 손짓하고 있다. 한글을 패턴과 디자인 요소로 이용해 의상에 구현한다. 한국에 매장을 열 때 특별판으로 내놓은 적은 있지만, 전 세계에 발표하는 의상에 한글을 메인 주제로 올린 건 최근이다.

이탈리아 고급 남성 브랜드 에르메네질도 제냐가 대표적이다. 이번 시즌 전 세계 매장 가을 겨울 상품으로 '에르메네질도 제냐'를 한글로 프린트한 점퍼와 니트를 선보였다. 전 세계 매장에 설치될 화보에도 한글 의상을 입은 모델을 선택했다. 제냐 본사 관계자는 "기하학적 무늬가 독특한 존재감을 발현하는 장식적 측면이 눈에 띄어 한글을 사용하게 됐다"면서 "K팝, K뷰티의 영감도 크게 받았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서울에서 영감 받은 '제냐 XXX 캡슐 컬렉션'을 선보인 디자이너 사르토리는 당시 "조형미 뛰어난 한글에서 '스트리트 패션 선진국'인 한국의 진보적 에너지를 엿볼 수 있다"고 했다. 미국 스트리트 브랜드 '안티소셜소셜클럽'도 한글 사랑으로 유명하다. 지난 7월 발표한 신제품에 한글로 '팔팔'이라 적은 티셔츠가 포함됐다. 인스타그램에선 팬들끼리 토론이 벌어졌다. '한국어로 88입니다' '기운차다는 뜻도 있어요'…. 소셜미디어를 타고 한글이 빠르게 퍼진다.

조선일보

①'99%is'를 입은 팝스타 퍼렐 윌리엄스. ②'에르메네질도 제냐'란 한글이 적힌 제냐 2019가을겨울 니트. ③안티소셜소셜클럽의 '팔팔' 티셔츠. ④뉴욕 패션위크에서 한글 패션을 선보인 이세 2019가을겨울. ⑤라거펠트의 한글 손 글씨. ⑥아디다스 70주년 기념으로 아디다스가 최진무 디자이너에게 의뢰해 지난 한글날에 선보인 신발. 한국 한정판이지만 해외에서 특히 인기다. ⑦뉴욕 브랜드 '오프닝 세레모니' 점퍼. ⑧영국 디자이너 프린이 2018년 선보인 '긴장하라' 가방. /퍼렐 윌리엄스 트위터·에르메네질도 제냐·안티소셜소셜클럽·이세·칼 라거펠트 트위터·아디다스·오프닝 세레모니·프린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패션계에선 2015년 서울에서 열린 '샤넬 크루즈쇼'를 기점으로 한글의 영향력이 더욱 강해진 것으로 평가한다. 그 도시에 영감을 받아 디자인하는 '크루즈쇼'에서 샤넬의 카를 라거펠트는 특유의 트위드 재킷을 선보이면서 '한국' '서울' '코코' '샤넬'이란 글자를 직조해 새겨 넣었다. 이듬해 자신의 이름을 단 브랜드 '칼 라거펠트'의 서울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면서는 '나는 한국을 사랑합니다'란 문장을 자필로 적어 소셜미디어에 올리고, 매장을 꾸몄다.

벨기에 디자이너 라프 시몬스는 '한글'을 대중에게 알리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2018년 봄 여름 제품에 한글로 '아메리카'가 적힌 티셔츠를 공개하더니, 쇼 모델에겐 '경천곶감농장'이란 단어가 적힌 모자를 씌웠다. 이스트팩과 협업한 '백팩 컬렉션'에는 '자연이 빚은 상주 곶감'과 '상도 농협'이라 적힌 PVC 원단을 이용했고, 아디다스와 협업한 운동화에도 '상주곶감'이 적힌 원단을 이용했다. 업계는 "디자이너가 자신의 창의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한글을 원단 패턴으로 활용한 것"이라고 평했다. 영국 브랜드 프린의 부부 디자이너 저스틴 손턴과 테아 브레가지는 제주 해녀를 소재로 한 다큐를 본 뒤 2018년 해녀에게서 영감 받은 의상을 내놓으면서 '긴장하라'는 한글이 적힌 가방을 선보여 호평 받았다.

해외에서 인정받는 한국계 디자이너가 많아진 것도 패션계 한글의 위상을 높였다. 한국계 미국인 디자이너 캐럴 림이 공동 디자이너인 뉴욕 브랜드 '오프닝 세레모니'와 뉴욕 출신 디자이너 김인태·김인규의 '이세' 등이 대표적. 오프닝 세리머니가 2017년 선보인 '코리아 바시티 재킷'(Varsity Jacket·대학이나 운동팀이 입는 재킷)은 '오프닝 세레모니'를 한글로 새기고 태극기 무궁화 등을 넣어 화제가 됐다. 국내 스트리트 브랜드 '99%is'의 바조우 디자이너가 선보인 '내맘대로' 의상은 세계적 팝스타 퍼렐 윌리엄스와 BTS 지민이 공연 의상으로, 또 최근 '치킨누들수프'로 빌보드를 장식한 BTS 제이홉이 뮤직비디오에서 입으며 한글의 멋을 세계에 알렸다. 이세 디자이너는 "한글 고유의 미학적 감성을 좋아하는 외국 팬이 크게 늘고 있어 패션계에서 한글 권력은 더욱 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보윤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