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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스포츠와 경제학의 만남…1520조원 거대산업을 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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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조선]
천문학적 돈 오가는 산업으로
韓 스포츠 산업 세계 점유율 5%
프로 리그, 해외에서 수익 내야

조선일보

왼쪽부터 올해 우승을 차지한 한국 두산 베어스, 미국 워싱턴 내셔널스, 일본 소프트뱅크 호크스. / 연합뉴스, 각 구단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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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자. 싸우자. 우리의 베어스. 두산의 승리를 위하여!"

10월 23일 오후 6시 30분 서울 송파구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 키움 히어로즈의 한국시리즈(프로야구 결승전) 2차전 현장. 9회 말 경기를 끝내는 안타가 터지자 홈 팀 두산 베어스의 팀 응원가가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두산 팬들이 위치한 1루 쪽 응원단상에서 축포가 터졌고 팬들은 두산 베어스의 홈 유니폼과 같은 색인 흰 풍선을 흔들며 승리를 만끽했다.

매년 약 800만 명이 국내 야구장을 찾는다. 한국시리즈 기간에는 표를 구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날 경기 당일까지 한국시리즈는 22경기 연속 매진 행렬을 기록하는 등 야구팬의 높은 관심을 받았다. 경기 시작 전부터 두산 베어스의 흰색 유니폼과 키움 히어로즈의 버건디색 유니폼을 입은 수많은 팬으로 야구장 일대가 인산인해를 이뤘다.

야구장 내에 있는 두산 베어스 전용 굿즈(상품) 판매점 ‘베어스 하우스’에는 두산과 관련된 다양한 굿즈를 구매하려는 팬으로 긴 줄이 이어졌다. 베어스 하우스에는 유니폼, 가을 점퍼, 모자는 물론 휴대전화 케이스와 마스크팩, 보디워시 등 다양한 구단 관련 상품이 진열돼 있었다.

5회까지 2 대 2로 팽팽하던 경기는 6회에 키움이 3점을 얻으며 5 대 2로 점수 차가 벌어졌다. 경기장 3루 쪽에 있는 키움 팬들은 가수 조용필의 노래 ‘여행을 떠나요’를 함께 부르며 흥을 돋웠다. 하지만 9회 말 두산의 마지막 공격 기회에서 경기가 요동쳤다. 타자들의 연속 출루로 5 대 5 동점 상황이 연출됐다. 경기를 끝내는 두산 박건우 선수의 안타가 나오자 경기장은 순식간에 열광의 도가니가 됐다. 이날 극적인 역전승으로 한국시리즈 2승째를 챙긴 두산은 기세를 몰아 이후 2승을 더해 10월 26일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다.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은 두산과 키움은 공통점이 있다. 두 팀 모두 큰돈을 주고 스타 플레이어를 데려오는 팀이 아니다. 대형 스타에게 의존하지 않고 2부 리그 활성화 등 시스템적인 야구로 승승장구해 결국 결승전에서 만났다. 두산은 2015년부터 5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그러나 그동안 대형 선수들을 계속 놓쳤다. 2018년 민병헌(4년 80억원), 김현수(4년 115억원), 2019년 양의지(4년 125억원) 등은 타 팀으로 이적했다. 두산이 스타 플레이어 유출에도 우승을 거둔 비결은 이른바 ‘화수분 야구’라고 불리는 2군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졌기 때문이다. 재물이 계속 나오는 보물단지를 의미하는 화수분처럼 1군 선수 못지않게 활약해주는 어린 유망주가 구단 내에서 계속 양성되는 시스템이다.

키움은 정규시즌 3위로 한국시리즈까지 올라왔다. ‘돈의 논리’가 지배하는 프로 스포츠 세계에서 상대적으로 적은 돈을 지출하고 한국시리즈까지 올라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는 평가가 나온다. 키움 선수단(43명, 신인 및 외국인 선수 제외)의 총연봉은 56억9400만원으로 10개 구단 중 9위다. 총연봉 1위에 오르고도 정작 순위에서는 최하위에 그친 롯데 자이언츠(101억8300만원)와 비교하면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반면 미국 메이저리그(MLB)에서는 철저히 각본대로 전략을 실행하고 막대한 자금을 투입한 팀이 우승했다. 워싱턴 내셔널스와 휴스턴 애스트로스가 월드시리즈에서 경합을 벌여 10월 31일(한국시각) 워싱턴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워싱턴의 승리는 전략적인 판단이 성과를 거둔 사례다. 워싱턴은 캐나다 구단 몬트리올 엑스포스를 인수해 지난 2005년 창단했다. 워싱턴은 창단 후 6년 동안 5번이나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최하위에 머물렀다. 하지만 이는 워싱턴의 의도된 전략이었다. 노골적인 ‘탱킹(우수 신인 지명을 위해 성적을 포기하는 전략)’을 통해 스티븐 스트라스버그와 브라이스 하퍼라는 투타의 핵심 선수를 얻었다. 워싱턴은 두 선수가 풀타임 빅리거로 활약한 2012년, 창단 8년 만에 처음으로 가을야구에 진출했다. 올해는 최초로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거뒀다. 워싱턴의 ‘원투펀치’ 투수 스트라스버그(연봉 약 448억원)와 맥스 슈어저(약 438억원)는 올해 MLB 최고 연봉 1, 2위에 올라 있다. 워싱턴의 올해 연봉 총액은 약 2305억원(30개 구단 중 5위)으로 휴스턴(약 2200억원·7위)보다 많다.

일본 프로야구는 자금력과 신인 육성책이 결합한 소프트뱅크 호크스가 일본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소프트뱅크는 최근 6시즌 중 5번 일본시리즈를 제패하는 기염을 토했다. 소프트뱅크는 한신 타이거스나 요미우리 자이언츠처럼 스타 선수가 많은 유서 깊은 명문 구단은 아니다. 소프트뱅크는 2군은 물론 3군까지 운용하면서 선수를 육성한다. 선수 선발과 육성 시스템 면에서 단연 일본 프로야구 톱이며 최근 성적이 성과를 증명하고 있다. 소프트뱅크 호크스는 모기업 소프트뱅크 회장이자 구단주인 손정의 회장이 적극적으로 자본을 지원하는 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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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3일 오후 한국시리즈 2차전이 열린 서울 송파구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 김두원 인턴기자
◇프로리그와 함께 성장하는 스포츠 산업

한·미·일 가을야구는 서로 다른 이유로 승패가 갈렸다. 한국은 신인 육성책, 미국은 자본력을 바탕으로 한 스타 선수 영입과 변칙 전략, 일본은 자본력이 결합된 신인 육성책이 승리의 이유였다. 하지만 한·미·일 프로야구 모두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점차 산업화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포브스코리아’에 따르면 한국 프로야구단의 경제적 가치는 1조4000억원으로 평가된다. 미국 MLB는 연 매출액이 12조원에 달한다. 미국 프로풋볼리그(NFL)에 이은 세계 두 번째 규모다. 일본 프로리그의 모기업은 신문사나 철도 회사 등이 많다. 하지만 최근에는 소프트뱅크 등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팀을 키우고 있다.

다른 프로리그도 점차 거대해지고 있다. 매출액 기준 세계 최대 프로리그인 NFL 수퍼볼 경기의 1초당 광고비는 2억원이다. 미국 프로농구(NBA)의 전설 마이클 조던은 은퇴 후에도 자산 가치가 1조8000억원에 달한다. 전 세계 부호들은 영국프리미어리그(EPL) 구단에 눈독을 들인다. 수익성이 아닌 우승 트로피가 그들의 목표다.

‘이코노미조선’은 이번 커버스토리를 통해 ‘스포노믹스(스포츠와 경제학의 합성어)’의 의미와 다양한 사례를 살펴봤다. 1950년대에 등장한 스포노믹스는 프로리그의 등장과 함께 발전하고 있다. 또 해외 진출 방안 등 국내 스포츠 산업 발전을 위한 전문가 제언도 담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올해 초 발간한 ‘2017스포츠산업백서’에 따르면 세계 스포츠 산업 규모는 약 1519조원이었다. 한국은 약 75조원으로 점유율이 4.9% 수준에 불과한 상태다.

가을야구는 이제 막 끝났다. 그러나 프로농구와 프로배구 등 겨울 스포츠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다.

◇plus point

FA제도 탄생 배경된 스포노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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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은 FA제도를 도입하는 데 기여했다. 사진은 내년 FA 자격을 갖추게 되는 미국 LA 다저스의 류현진 선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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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 몬스터’ 류현진(LA 다저스·32)이 내년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는다. 미국 메이저리그 홈페이지 MLB.com의 LA 다저스 담당 켄 거닉 기자는 10월 30일(현지시각) 독자와 질의응답 코너에 "류현진이 5년간 1억달러(약 1163억원) 이상의 계약을 원한다면 LA 다저스에 남지 않을 것이다"라며 "홈 팀 디스카운트는 없을 전망"이라고 밝혔다. 홈 팀 디스카운트란 원소속 팀과 재계약을 위해 선수가 자발적으로 몸값을 낮추는 것을 뜻한다.

류현진은 올 시즌 29경기에 등판해 182.2이닝을 소화하고 14승 5패를 거뒀다. 탈삼진은 163개에 불과했지만 평균자책점은 2.32로 메이저리그 전체 1위다. 어깨 부상이라는 약점에도 최고의 성적을 내며 의구심을 해소했다. 내년에 만 33세이지만 ‘FA 대박’을 노리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췄다는 평가가 나온다.

류현진이 대박을 노릴 수 있는 건 경제학의 힘이기도 하다. FA제도 탄생 배경이 스포노믹스(스포츠와 경제학의 합성어)의 출발과 함께하기 때문이다. 사이먼 로텐버그(1916~2004) 미국 시카고대 경제학과 교수는 1956년 ‘정치경제학저널(JPE)’에 ‘야구 선수의 노동시장(The baseball players’s labor market)’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은 스포노믹스의 시초로 꼽힌다. 로텐버그 교수는 이 논문에서 프로야구 구단주를 수요독점자(monopsony)라는 경제 용어로 지칭했다. 구단주가 일방적으로 독점적 지위를 누린다는 뜻이다.

1956년 당시에는 메이저리그에 FA제도가 없었다. 당시 선수들은 계약서상 ‘보류조항’에 묶여 오직 한 구단과만 계약했다. ‘보류조항’은 1879년 메이저리그에 도입됐다. 비시즌 일정 기간 내에 계약에 합의하지 못하면 구단은 전년도와 같은 조건으로 1년 계약을 갱신할 권리를 가진다는 내용이다. 이 권리는 다음 연도, 그다음 연도에도 계속된다. 이 조항으로 구단은 선수에 대한 영구독점계약교섭권(보류권)을 갖게 됐다.

로텐버그는 보류권을 구단이 누리는 지대(rent)로 해석했다. 지대란 특정 권리를 갖고 있다는 사실에서 발생하는 보상이다. 구단주가 지대를 누리는 만큼 선수는 손해를 본다. 로텐버그는 이에 대해 ‘수요 독점적 착취(monopsonistic exploitation)’라고 지적했다. 그는 "보류권 아래에서 선수 자원의 분배는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로텐버그의 논문 이후 후속 연구가 뒤따랐다. 결국 메이저리그 노사는 1977년 시즌을 앞두고 FA제도 도입에 합의했다.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6년간 뛴 선수는 보류권에서 벗어나 모든 구단과 자유롭게 협상할 수 있다.

스포노믹스는 21세기 들어서 활성화하고 있다. 2000년 미국에서 ‘스포츠 경제학회’가 창립돼 정기적으로 ‘저널 오브 스포츠이코노믹스(JSE)’가 발간되고 있다. 스포츠에서 경제학의 역할이 큰 이유는 무엇일까. 모든 경제 문제는 재화의 희소성 때문에 발생한다. 경제학은 한정된 재화를 가장 효율적으로 분배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리고 스포츠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이 바로 희소성이다. 스포츠 경기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과도 같다.

2002년 월드컵에서 안정환이 터뜨린 헤딩골의 감동을 그대로 재현하는 건 불가능하다. 재방송을 본다고 해도 승부의 결과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감동은 확연히 적어진다. 이처럼 스포츠는 같은 감동이 반복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스포츠의 희소성이자 사람들이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다.

‘스포츠 경제학’ 저자 임상일 대전대 경제학과 교수는 "프로 스포츠가 활성화할수록 경제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영역이 증가하는 추세"라며 "스포츠 산업은 경제학 이론을 테스트하고 적용하기 좋은 실험실과 같다"고 했다. 예를 들어 프로구단을 일반 기업처럼 이윤 극대화 주체로 설명할 수 있다. 어느 선수를 스카우트할 것인가, 계약금과 연봉을 얼마로 정할 것인가 등은 경제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문제다. 선수는 팀 선택, 계약금과 연봉 협상 등에서 경제적 결정을 한다.

◇‘경제학 원론’에 등장하는 NBA 스타

과거 미국프로농구리그(NBA)에서 3점슛이 대유행하게 된 데는 로버트 D. 톨리존(1942~2016) 미 워포드대 경제학과 교수의 연구가 큰 역할을 했다. 그는 3점슛이 다른 슛보다 정확도가 떨어지더라도 전체 경기나 시즌에 걸쳐서 보면 3점슛을 더 많이 던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 그레고리 맨큐의 ‘경제학 원론’에서 NBA 스타 르브론 제임스의 사진이 9쪽에 나오는데,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1729~90)의 초상화는 15쪽에 나오는 것도 흥미로운 사례다.

또 경제학자는 종종 스포츠의 다른 측면에서 연구 동기를 얻기도 한다. 인종 및 성별에 따른 노동 시장에서의 차별 같은 경제학의 근본적인 질문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메이저리그에서 홈런왕 행크 에런(1934~) 같은 비(非)백인 선수 차별에 대한 연구는 직장 내 인종 차별에 대한 많은 연구를 이끌었다. 선수 연봉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영국 프리미어리그는 승자 독식 시장에 대한 분석을 끌어냈다.

현대 경제학의 주요 분야 중 하나인 게임 이론도 빼놓을 수 없다. 게임 이론은 1994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존 내시(1928~2015) 미 프린스턴대 수학과 교수가 창시했다. 한 사람의 행위가 다른 사람의 행위에 미치는 상호의존적, 전략적 상황에서 의사 결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연구한 이론이다. 게임 이론은 주어진 환경에서 승리를 위해 경쟁하는 스포츠팀이 선택한 행동에 쉽게 적용할 수 있다. 승부차기를 앞둔 축구 공격수와 골키퍼 사이에는 상호작용이 존재한다. 어느 쪽으로 차느냐 또는 막느냐가 승부를 좌우한다. 게임 이론에서는 이러한 경우를 전략적 상황이라고 칭한다. 스포츠는 다름 아닌 전략적 상황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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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관 이코노미조선 차장, 김두원 이코노미조선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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