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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어린이 1명 추가 확진?” 흑사병 괴담 키우는 중국 비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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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아동 병원에 흑사병 환자 추가 발생?

오늘 아침 일찍부터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베이징 중심 중의 중심 시청취(西城區)에 있는 서우두 의과대학 부속 베이징 아동병원에서 흑사병 환자 1명이 더 발견되었고, 해당 아이는 현재 흑사병 확진 환자 2명이 입원해 있는 디탄 병원 전염병 전문 병동으로 이송됐다는 소문이었다. 이 얘기는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를 통해 급속도로 확산했고, 심지어 재생산됐다.

웨이보에 올라온 글을 보자. "아동 병원 지하 1층이 봉쇄됐어요. 아는 안과 의사에게 물었더니 4층도 봉쇄됐대요. 흑사병이래요." "아동병원 2층 계단도 봉쇄됐어요. 3층에도 못 올라가게 해요. 채혈실(피 뽑는 곳)도 봉쇄됐어요. 그 안에서 적외선 소독기를 돌리고 있는 것 같아요. 경비들도 마스크를 두 개씩 착용하고 있는데, 의사는 단 한 명도 안보이네요."

해당 아동병원은 흑사병 환자들이 현재 입원해 있는 디탄 병원은 물론 열흘 동안 입원해 있던 차오양 병원과도 상당히 떨어진 곳이다. 만약 사실이라면 흑사병이 예상보다 훨씬 많이 퍼진 것일 수 있다. 무시무시한 얘기다.

확인을 해봤더니 헛소문이다. KBS 베이징 지국에서도 멀지 않은 곳이라 직접 확인했더니 전혀 사실무근이다. 해당 아동병원에는 폐쇄되거나 봉쇄된 곳을 찾을 수 없었다. 중국의 인터넷 프리랜서 기자도 비슷한 기사를 하나 올렸다. 아동병원에 흑사병 환자의 조짐은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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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웨이보에서 떠도는 헛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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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키우는 중국 당국의 비밀주의

문제는 중국 당국의 비밀주의다. 몽골과 접경하고 있는 네이멍 자치구의 시린궈러맹에 사는 중년 남성이 설치류를 생으로 섭취했다가 흑사병 증세를 보여 병원으로 실려 갔는데, 그가 어떤 경로로 네이멍의 어느 병원에 입원했으며, 얼마나 오랫동안 있다가 베이징 차오양 병원으로 어떤 경로로 이동했는지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간호하던 그의 부인도 감염됐는데, 그 경위조차 자세히 밝히고 있지 않다.

물론 중국 보건 당국과 베이징시 위생 당국에서 나름(?) 발표를 하고는 있다. 잠시 옮겨 본다. "베이징 시 정부는 네이멍 자치구와 흑사병 환자 2명을 진단한 뒤 국가 위생건강위원회 지도로 긴급 공중위생 응급 체제를 가동했습니다. 모두 11명의 전문가를 차출해 의료 구제 전문가팀을 구성, 지도와 상담 작업을 벌이고 있으며, 해당 의료기관은 국가 흑사병 진료 방안 절차에 따라 해당 환자 2명을 적절하게 치료하고 있습니다. 시 정부는 격리치료, 격리구역 관리와 소독, 접촉자 추적 관찰과 예방적 조치를 수행하였습니다." 이게 전부다.

중국질병예방통제센터가 발표한 것은 더 심하다. "흑사병은 예방과 치료가 가능합니다. 베이징은 흑사병 발생 지역이 아니라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마스크 착용 등 개인위생에 신경을 쓰는 것이 좋습니다." 한 마디로 "우리가 잘하고 있으니 크게 걱정할 필요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 베이징 시민들은 전혀 못 믿겠다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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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일도 없었던 듯 정상 운영 중인 차오양 병원 응급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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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에서 열흘 경과 지켜본 뒤 발표...방역도 어설퍼

중국 당국의 발표와 KBS 취재 내용을 종합하면 흑사병 환자들이 베이징 차오양 병원 응급실에 실려 온 것은 지난 3일이다. 더구나 전염력이 매우 강한 폐페스트 환자들이다. 기침을 통해 공기 중 전파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들이 베이징 중심가 병원에서 열흘 동안 입원해 치료를 받았는데, 그동안 누구도 위험을 사전에 경고받지 못했다. 일부 언론에서 차오양 병원이 폐쇄된 것처럼 보도했지만 오보다. 차오양 병원은 계속 정상 운영 중이다.

기자가 직접 차오양 병원을 찾은 것은 환자들이 디탄 병원으로 이송된 다음 날인 어제(13일)였다. 응급실 내부까지 일반인들의 출입이 이뤄지고 있었다.

한 간호사에게 흑사병 환자 소식을 물으며 봉쇄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자 좀 떨어진 곳의 간호사가 끼어들며 말한다. "우리 여기 열흘 내내 근무했지만 지금 아무렇지도 않아요. 괜한 걱정하지 마세요." 짜증 섞인 말투에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슷한 질문을 받았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흑사병은 잠복기가 최장 6일까지다. 기자의 상식으로는 최소 일주일가량은 당시 근무 직원들이나 응급실 자체를 봉쇄하고 추이를 지켜보는 것이 맞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환자들이 떠난 직후 소독을 시행한 것이 전부였다.

황당하기도 하고 좀 무섭기도 해서 서둘러 나오는데 환자 가족인 줄 알았던 한 남성의 점퍼 사이로 카메라 렌즈가 보인다. 응급실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중국 기자들도 궁금했던 것이다. 비록 보도는 못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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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2003년 사스(SARS) 교훈 잊었나?

2002년 11월 중국 남부 광둥성에서 사스(SARS, 중증급성 호흡기 증후군)가 처음 발생했을 때, 중국 정부는 사건을 쉬쉬하는 데 급급했다. 그렇게 수개월이 지나고 사스가 베이징까지 강타했을 때, 중국의 수도 베이징에서 사람들이 고열과 기침으로 앓다가 목숨을 잃는 일이 벌어졌을 때 비로소 중국 정부는 진상을 밝혔다.

당시 후진타오 주석은 "더 이상 사스의 실상을 인민에 오도하지 말라"고 지시했고, 베이징 시장과 위생부장이 사임하고 난 뒤에야 시민들에게 '괴질'의 실체가 공개됐다.

아픈 기억은 오래가는 법이지만 중국의 이번 대응을 보면 또 잊은 듯하다. 어제 오후 중국 정부에서 발표한 흑사병 확진 소식에 우리나라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 1위에 흑사병이란 단어가 올랐지만, 같은 시간 중국 바이두의 검색어 1위는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의 돼지 매몰처분이 1위였다. 바이두 검색어 50위까지 순위 내에 흑사병은 없었다.

언론 통제, 비밀주의가 다시 작동된 것이다. 2003년 중국의 비밀주의는 전염병 초기대응 실패를 초래했고, 결국 중국뿐만 아니라 전 아시아를 위험에 빠뜨렸다. 이번에는 달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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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수 기자 (mandoo@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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