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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직장인 퇴근 후 이색 풍경..."나만을 위한 글쓰기로 힐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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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유희경 시인이 진행하는 '나를 위한 글쓰기' 수업이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위트앤시니컬 서점에서 열리고 있다. 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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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오후 7시 서울 혜화동에 위치한 시집 전문서점인 위트앤시니컬. 바쁜 일과를 마친 직장인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여섯명이 모두 도착하자 서점 주인인 유희경 시인은 이상의 시 '거울'을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 /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 (중략)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요마는 / 또꽤닮았소 /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낭독이 끝나자 유희경 시인은 "시를 통해 자신의 내면에 더욱 집중해보라"고 제안했다. 시를 감상하던 이들은 펜을 들고 저마다 생각에 골몰했다. '자신만을 위한 글'을 쓰는 시간이다. 한동안 생각에 잠겼던 이들은 각자 어린 시절 추억과 비밀 등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종이에 눌러 적기 시작했다. 글쓰기가 끝난 뒤에는 종이를 돌려 읽으며 타인의 생각을 엿보는 시간도 열렸다. 다른 사람의 글을 읽은 사람들은 "전혀 모르는 사람의 글이지만 공감이 많이 된다" "이상하게 내가 위로받는 느낌이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유희경 시인은 "종일 타인을 위한 글쓰기를 했던 직장인들이 온전히 자신을 위해 글을 쓰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기획한 프로그램"이라며 "시를 감상하고 스스로 글을 써보는 경험을 통해 자신에게 집중하고 과거를 돌이켜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직장인 임모씨는 "그저 일을 열심히 했을 뿐인데 어느 순간 나를 잃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나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라 생각해서 참여하게 됐다"고 했다. 보험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이모씨는 "나를 표현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데, 긴장하지 않고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싶은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다"고 밝혔다.

이들이 참여하고 있는 것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하 교육진흥원)이 주관하는 '2019 직장인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 프로그램이다. 지난 10월부터 11월까지 시범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이 프로그램은 유희경 시인이 맡은 '자신만을 위한 글쓰기' 외에도 캘리그라피, 엽서 만들기, 미디어아트 등 8개 예술 교육 과정이 포함돼 있다. 서울과 전북 등지에서 열리고 있는데, 예술가의 작업 공간을 찾아가 예술 교육을 받는다는 특징 때문에 '남의 집 프로젝트'라는 이름이 붙었다. 교육진흥원과 협업해 이뤄지는 프로그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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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경 시인이 '나를 위한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예술가의 공간에서 수업이 열리기 때문에 '남의 집 프로젝트'라는 이름이 붙었다. 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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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직장인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총 3~4회에 걸쳐 예술 교육을 받는다. 수업은 한 번에 2~3시간 동안 이뤄지는데, 참가비는 회당 만원. 정원 6명 정도로 지난달 1기가 운영됐고, 11월부터 2기가 새롭게 진행 중이다. 짧은 기간의 경험이지만, 예술가의 공간에서 소그룹 과외를 받듯 예술을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인기가 높다. 현재까지 총 67명이 참여했다.

교육진흥원은 '남의 집 프로젝트' 협업 프로그램 외에도 직장인들을 위한 또 다른 프로그램을 기획해 운영하고 있다. 강원 춘천시, 충남 천안시, 충북 옥천군, 인천 부평구 등 전국 6곳에서 다양한 예술교육 프로그램이 직장인들을 상대로 진행 중이다. ▲바느질을 통해 손의 감각에 집중해보는 '손을 움직여 마음을 엮다' ▲일상의 소리를 기록하고 스피커를 만들어 감상하는 '나의 플레이어', ▲나무를 깎고 덜어내며 일상품을 만들어보는 '나무를 깎고 시간을 쓰다', ▲일상의 숨은 시간을 사진으로 포착해보는 '당신의 시간' 등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총 참여자는 217명이다.

교육진흥원이 이러한 프로그램들을 협업·기획하는 이유는 최근 달라진 사회 트렌드인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에 대한 직장인들의 갈증을 충족하기 위해서다. 교육진흥원 관계자는 "직장인들이 원데이 클래스나 인문학 강좌 등으로 문화·예술에 대한 목마름을 채우는 것에서 나아가 문화·예술 교육을 통해 일상의 활력과 삶의 자율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하고자 본 사업을 기획했다"며 "많은 직장인이 '진정한 삶이 있는 저녁'을 누릴 수 있도록 앞으로 더욱 적극적으로 프로그램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교육 일정과 내용, 장소 등 프로그램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남의 집 프로젝트' 누리집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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