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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아버지" 학살 현장서 눈물로 통곡한 팔순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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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17일 홍성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유해 이전 안치식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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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유족회와 시민단체로 구성된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희생자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은 지난 2015년 11월 15일 민간인 학살 매장지인 홍성군 광천 폐광산(홍성군 광천읍 담산리 산 92번지 일대)에서 시굴 조사에 착수했다. 이후 민간인 학살 매장지임이 확인되면서 이듬해인 2016년 2월과 3월 본격적인 발굴에 들어갔다. 이때 모두 24구의 유해와 유품이 수습되었으며, 같은 해 5월 국민보도연맹 희생자 추모비가 있는 현재의 용봉산 봉안당에 임시로 유해와 유품을 안치했다. ⓒ 신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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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폭력으로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의 한을 풀어야 합니다."

한국전쟁 전후 이유도 모른 채 한 폐광산에서 학살된 민간인 희생자들의 유해가 세종시 '추모의 집'으로 옮겨 안치됐다. 국민보도연맹사건 홍성군유족회(아래 홍성군유족회)와 (사)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희생자 충청남도 유족회는 17일 오전 9시 용봉산 봉안당에서 '한국전쟁기 홍성 민간인 학살 희생자 3차 발굴 유해·유품 이전 안치식'을 가졌다.

앞서, 전국유족회와 시민단체로 구성된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희생자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은 지난 2015년 11월 15일 민간인 학살 매장지인 홍성군 광천 폐광산(홍성군 광천읍 담산리 산 92번지 일대)에서 시굴 조사에 착수했다.

이후 민간인 학살 매장지임이 확인되면서 이듬해인 2016년 2월과 3월 본격적인 발굴에 들어갔다. 이때 모두 24구의 유해와 유품이 수습되었으며, 같은 해 5월 국민보도연맹 희생자 추모비가 있는 현재의 용봉산 봉안당에 임시로 유해와 유품을 안치했다.

하지만 용봉산 봉안당은 컨테이너로 제작되어 발굴된 유해 보존에 극히 열악한 환경이었다. 뿐만 아니라 산불위험과 방범시설이 되어 있지 않아 의도적 파손과 도난 등에 무방비 상태로 보존대책이 시급한 상황이었다. 이에 홍성군유족회가 나서 관리환경이 양호하고 안전한 세종시 '추모의 집(납골당)'으로 유해와 유품을 안치하게 된 것이다.

이날 이전 안치식이 열린 홍성 용봉산 봉안당에는 억울하게 죽어간 희생자들이 흘리는 눈물인 듯 아침부터 세찬 비가 내렸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시작된 이전 안치식은 민간인 희생자에 대한 추모 제례, 유해·유품의 이전 순으로 진행되었다. 이후에는 광천 유해발굴지와 생존시 거주지를 순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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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 안치식을 마친 홍성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희생자 유해와 유품들이 세종시 '추모의 집'으로 떠나기 위해 운구차에 모셔지고 있다. ⓒ 신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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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성 용봉산 봉안당에 임시 안치되어 있던 24구의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의 유해와 유품이 유족들에 의해 운구되고 있다. ⓒ 신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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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 이전 안치식을 마친 24구의 유해와 유품은? 만장을 앞세운 차량을 선두로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당시 학살 현장인 광천 담산리를 거쳐 세종시 ‘추모의 집’에 안치됐다. ⓒ 신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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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1시간 40분 동안 열린 이전 안치식에서는 희생자들의 넋을 추모하고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을 바라는 홍성문화연대의 '진혼무'가 이어졌다.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 제례와 '진혼무'가 이어지자 이 자리에 참석한 유족들 사이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 유족은 "원통하다"라며 연신 눈물을 흘렸다.

유해.유품 경찰 호위받으며 학살 현장 방문 후 '추모의 집' 안치

이날 이전 안치식에 대해 충남유족회 김용일 사무국장은 "(이유도 모른 채) 국가폭력으로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예를 갖추는 것"이라면서 "희생자들에 대한 산 자들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윤리적 책무를 다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진실규명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고향을 떠나가야 하는 원혼들이 얼마나 억울하시겠냐"며 "유족들의 한을 풀기 위해서라도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이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홍성군 유족회는 광천읍 담산리 폐광산에 발굴된 유해와 유족에 대해 지난해 4월, 7월 DNA 감식을 위한 시료를 채취했다(관련기사 : 홍성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유해 발굴 2년 만에 DNA 감식).

홍성군 유족회에 따르면 이 결과 유족 2명에 대한 DNA가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70여 년 만에 두 명의 가족을 찾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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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 이전 안치식이 열린 홍성 용봉산 봉안당에는 억울하게 죽어간 희생자들이 흘리는 눈물인 듯 아침부터 세찬 비가 내렸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시작된 이전 안치식은 민간인 희생자에 대한 추모 제례, 유해·유품의 이전 순으로 진행되었으며, 광천 유해발굴지와 생존시 거주지 순례가 있었다. 이전 안치식을 마친 운구차가 세종시 '추모의 집'으로 향하고, 뒤를 이어 유족을 태운 버스가 따르고 있다. ⓒ 신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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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매장지인 홍성군 광천 폐광산(홍성군 광천읍 담산리 산 92번지 일대)에서 2016년 2월과 3월 본격적인 발굴에 들어갔다. 17일 이전 안치식을 마친 유족들이 현장을 찾았다. ⓒ 신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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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땅에 묻히지 못하고 임시 안치되는 아버지에 대한 죄스러움 때문일까. 학살 현장을 찾은 유족들은 '아버지'를 목놓아 불렀으며 팔순의 아들은 눈물을 흘리며 통곡했다. ⓒ 신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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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이전 안치식을 마친 24구의 유해와 유품은 만장을 앞세운 차량을 선두로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당시 학살 현장인 광천 담산리를 거쳐 세종시 '추모의 집'에 안치됐다.

특히, 고향 땅에 묻히지 못하고 임시 안치되는 아버지에 대한 죄스러움 때문일까, 학살 현장을 찾은 유족들은 '아버지'를 목놓아 불렀다. 백발의 아들은 눈물을 흘리며 통곡했다.

이날 안치식이 끝나고 유족을 대표해 김 사무국장은 "당시 국가폭력의 가해자인 경찰과 피해자인 유족들 사이에 용서와 화해를 이끄는 조그만 시작이 되었다"라면서, 유해발굴과 유전자감식 그리고 유해 이전 안치에 도움을 준 홍성군, 행정안전부, 경찰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한편, 이날 안치된 유해는 국가적 추모공원이 대전 산내 골령골 민간인 희생지에 조성되면 영구 안치(안장)될 예정이다. 다음은 유족들이 학살 현장을 찾아 아버지를 부르는 모습이다.


신영근 기자(ggokdaz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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